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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 (수)

87년 체제의 파국…응원봉이 내는 길 [조형근의 낮은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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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14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인 시민들 손에 쥐어진 응원봉이 반짝이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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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근 | 사회학자



나는 1987년 6월항쟁에 참여하지 못했다. 나름 부끄러운 사연이 있었다. 5월 초의 노동절 시위로 구속됐다가 6월항쟁 직전에 막 석방된 터였다. 학교에선 정학됐고 하릴없이 어머니 손에 이끌려 부산 고향집으로 내려가 집안의 서점 일을 도우며 지냈다. 버스 타고 시내 보수동의 서적 도매상 거리를 오가는 것도 일과였다. 하필 시위가 심한 곳이었다. 무거운 책 짐 양손에 들고 시위대와 전경 사이를 최루탄 맞으며 다녔다. 부모님이 들었을 책 짐의 무게와 전경대 너머 내가 있어야 할 자리 사이에서 눈물이 흘렀다. 어느 날 시위대가 집 앞을 지날 때 어머니 손을 뿌리치고 달려나갔다. 거리를 가득 메운 군중, 경적을 울리던 선두의 택시 행렬, 펄럭이며 대열을 이끌던 거대한 태극기. 내게 6월항쟁이 거대한 태극기의 이미지로 남아 있는 이유다.



2024년 12월, 전국 곳곳의 윤석열 탄핵 집회에서 우리가 본 것은 거대한 태극기가 아니라 온갖 기발한 문구가 아로새겨진 수많은 작은 깃발, 제각기 반짝이는 아이돌 응원봉이었다. 그리고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렸다. 1987년의 우리는 민주주의를 쟁취했고, 2024년의 우리는 그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그 37년 동안 한국 사회는 태극기와 아이돌 응원봉의 거리만큼 달라졌다. 변하지 않은 것은 군부와의 타협으로 만들어진 1987년의 정치체제뿐이다.



12월14일, 여의도 탄핵 집회 후 귀가한 동네 사람들이 뒤풀이를 열었다. 서로 위로하고 응원하며 시끌벅적했다. 한 이웃은 계엄이 선포되던 날 뉴스를 보자마자 차를 몰고 여의도로 달려갔다. 광주의 고등학생이었지만 항쟁 때 싸우지 못한 것이 평생 마음의 짐이 됐다는 그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가장 먼저 국회 앞에 당도했다. 처음 200여명이던 시민이 곧 수천명으로 불어났다. 그이들이 민주주의를 지켰다. 우리는 경의의 박수를 쳤다.



고등학교 2학년 딸과 함께 집회에 나간 이웃은 딸의 말을 전했다. “내 인생에 대통령 탄핵만 두번째야.” 모두 웃음이 터졌다. 2016~2017년 박근혜 탄핵 촛불 집회 때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집회에 나갔던 어린이, 청소년이 이제 청소년, 청년이 되어 동무와 함께 응원봉을 흔들며 민주주의를 외쳤다. 민주주의를 몸으로 체득한 세대다. 두려워하지도, 비장해지지도 않으면서 발랄하게 할 말을, 할 일을 다 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켰지만 민주주의 자체는 완전무결하지 않다. 늘 고치고 때로 갱신해야 한다. 12월12일, 부산대 사회학과 학생들과 가진 온라인 시국토론회에서 나온 청년 세대의 의견이 신선하고 문제적이었다. 학부생 한솔씨의 발언이 특히 그랬다. 민주당 권리당원으로서 적극 활동하고 있다는 그는 집회 현장에서 “젊은이들, 여성, 퀴어, 장애인이 의견을 말할 때 민주당이 탄핵부터 시켜야 한다며 이들의 다양성을 묻어버리는 모습을 보았”고, “집회에 참여하는 게 참 좋지만 우리가 여기서 정말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2024년의 탄핵 집회에 가장 많이 참여한 이들은 한솔씨 같은 20대 여성이었다. 기성세대가 곧잘 미숙하다며 폄하하는 이들이다. 외국인도 제법 있었다. 나도 첫번째 집회 때는 외국인 친구와 함께했다. 성소수자의 깃발은 어디서나 무지개 빛깔로 나부꼈다. 장애인은 물론이다. 국회의사당 앞은 원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오랜 집회 장소였다. 그들의 싸움은 이 체제의 오류와 한계를 앞장서서 폭로하던 도화선이었다. 사실 더 많은 사람이 있었다고 말해야 한다. 위태롭고 불안정한 생계에 묶여 싸우지 못한 이들이 많았다. 싸울 이유가 가장 절실한 이들은 바로 그 이유 탓에 싸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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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노병옥


6월항쟁 때는 ‘시민’이 주체가 됐다. 넥타이 맨 중산층 남성 시민이 투쟁의 상징이 됐다. 군부와의 갈등도 타협도, 모두 이 중산층 시민이 갈망하던 ‘형식적’ 민주화를 둘러싸고 진행됐다. 0.1%만 이겨도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 거대 양당의 영구적 과두정이 보장되는 87체제가 이렇게 제도화됐다. 온갖 불평등과 차별의 해소는 이 체제의 과제가 아니었다. 2024년 12월에 등장한 이들은 더 이상 중산층 남성 시민으로 축소되지 않는다. 아니, 이들이야말로 이른바 87체제에서 경시되거나 배제되어온 이들, 미숙하거나 자격 없다고 간주된 이들, 차별과 불평등으로 고통받아온 이들이다.



20대 여성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진보적이고 사회적으로 가장 활동적이며 문화적으로 가장 개방적인 집단이다. 왜 선거 때 잠시 액세서리로 쓰이고 버려져야 하는가? 지난 6월의 배터리 공장 아리셀 화재 참사로 18명의 이주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한국 사회는 이들의 노동으로 유지되고 있다. 왜 이들이 생명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싸울 권리를 가져선 안 되는가? 왜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목숨 끊는 이들이 생기는가? 윤석열은 물론이지만 문재인 정권도 끝내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면했음을 기억하자. 장애인 예산 비중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의 3분의 1 수준이다. 평생 집에, 시설에 갇혀 살라고 강요하는 선진국은 기괴하다. 공공부문과 대기업의 소수 정규직을 제외한 일하는 사람 대다수가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으로 위태로운 삶에 내몰려 있다. 능력이 부족하면 차별받는 게 마땅하다며 모욕하는 세상을 참기 어렵다. 민주주의가 이들의 존엄과 효능감을 높이는 데 계속 실패한다면 그때 닥칠 위기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윤석열은 헌법재판소에서 반드시 탄핵될 것이다. 그 일당도 철저히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함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제 ‘정상’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들린다. 민주주의를 위해 ‘단일대오’로 뭉치자는 목소리도 들린다. 역사를 후퇴시키려는 반동 앞에서 우리는 늘 단일대오로 뭉쳤다. 미래를 향해서라면? 단일대오는 또 다른 억압일 뿐이다. 넥타이 맨 중산층 남성 시민이 군부와 타협해 만든 1987년의 정치 질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크게 삐걱거렸다. 이제 윤석열의 비상계엄으로 파국을 맞았다. 그 질서 아래서 들리지 않던 목소리들이 스스로 외치기 시작했다. 펄럭이던 태극기 대신 반짝이는 아이돌 응원봉이 말하는 바는 이런 것이다. 우리에겐 돌아갈 정상 상태가 없다. 이제 새로 길을 내며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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