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일대에서 한 시민이 윤 대통령 탄핵 가결 소식을 알리는 동아일보 호외를 읽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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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일 오후 5시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습니다. 불과 8년 만에 다시 대통령 탄핵이 되풀이되다니 비극입니다. 이번 탄핵은 우리 정치권의 많은 것을 과거로 퇴행시킨 듯합니다. 국민의힘은 3년여 전 어렵사리 건넜던 ‘탄핵의 강’을 되돌아갔고, 더불어민주당은 ‘조국의 강’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입니다.
● ‘탄핵의 강’ 되돌아간 與
윤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재적의원 300명 전원이 표결에 참석한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 통과됐습니다. 범야권 192석이 전원 탄핵에 찬성했다고 전제하면 국민의힘 내에서 최소 12표, 최대 23표의 이탈 표가 나온 셈입니다.
국민의힘은 이날 본회의 직전까지 장시간 의원총회를 이어간 끝에 ‘표결엔 참여하되, 당론으로 탄핵에 반대한다’라는 결론을 냈죠. 당론으로 반대하라 했는데도, 총 204표의 찬성이 나왔으니 최소 12명의 국민의힘 의원이 적극적으로 이탈한 것이고, 기권 3표와 무효 8표를 더하면 23명이 당론을 거부한 겁니다. 한 민주당 의원은 기권 및 무효표에 대해 “총을 심장에는 차마 못 쏘고, 다리에 쏜 것”이라고 평가하더군요.
나경원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 일인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 굳은 표정으로 입장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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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소추안 가결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은 완전히 탄핵의 강을 역행한 듯한 모습입니다. 이날 본회의에 앞서 중진 의원들은 민심을 역행하는 발언을 쏟아냈더군요.
“거리의 외침에 빠르게 응답하는 것만이 성숙한 민주주의일까? 과연 그 외침이 국민 모두의 생각일까? (중략) 적어도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의 직무를 국회의원들이 탄핵소추를 통해 정지하려고 한다면 절차를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 (나경원 의원·5선)
“2016년도에 나 살겠다고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해서 내 집을 불태웠던 게 결국 어떤 나라를 불러왔습니까.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대한민국의 가치와 근간이 송두리째 무너져버리지 않았습니까?” (윤상현 의원·5선)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이 14일 오후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투표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윤 의원은 표결에 앞서 “탄핵에 반대한다”라는 입장을 냈다. 왼쪽은 같은 당 김예지 의원.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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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탄핵 가결을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가 보수 진영 지지층으로부터 ‘배신자’라고 비판받았던 의원들도 줄줄이 해명에 나섰죠.
“본회의 표결에 들어간다 했지 찬반을 공개로 밝힌 일이 없는데. (중략) 이재명에게 고스란히 나라 넘겨주는 선택은 절대 없을 겁니다.” (배현진 의원·재선)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이 14일 오후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투표를 마친 뒤 이동하는 모습. 배 의원은 표결을 하루 앞두고 “이재명에게 고스란히 나라 넘겨주는 선택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썼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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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동훈계이자 당내 ‘소장파’를 자처하며 가장 먼저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을 제안했던 초선 의원도 본회의 직전 이렇게 썼더군요.
법적으로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지만, 자기 지역구 민심을 의식해 반대하겠다니, 이게 무슨 궤변인가요.
탄핵안 가결 직후 열린 의총에서 한 의원은 물통을 집어던지는가 하면, 누군가는 울고불고 했다죠. 한 명씩 일어나 찬반 여부를 밝히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합니다. 다음날 이들의 SNS에는 ‘쥐새끼’, ‘배신자’ 등 서로를 겨냥한 노골적인 비난도 쏟아졌습니다. 대구 달서갑의 유영하 의원은 “쥐새끼마냥 아무 말 없이 당론을 따를 것처럼 해놓고 그렇게 뒤통수치면 영원히 감춰질 줄 알았나”라고, 경북 포항남울릉의 이상휘 의원은 “신념과 소신으로 위장한 채 동지와 당을 외면하고 범죄자에게 희열을 안긴 그런 이기주의자와는 함께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혼란과 분열 그 자체입니다.
국민의힘은 2021년 6월 이준석 의원을 당 대표로 뽑으면서 어렵사리 탄핵의 강을 건넜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의원은 당시 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보수의 심장부인 대구·경북 합동 연설에 나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은 정당했다” “탄핵의 강을 건너야 한다”고 외쳤죠. 당시로선 ‘폭탄 발언’이었는데 그 뒤로 오히려 대구·경북 지역에서 그의 지지율이 크게 올라갔습니다. 이 의원도 “대구 시민들이 (탄핵 발언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발언 이후 오히려 지지세가 모이는 것 같아 보수의 중심이던 대구가 보수 개혁의 선봉에 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 ‘조국의 강’으로 또 돌아가는 野
조국 전 의원이 12일 오후 국회에서 자신의 대법원판결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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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이 탄핵의 강을 되돌아갔다면, 더불어민주당은 ‘조국의 늪’에 또 빠진 듯한 모습입니다.
조국 전 의원은 12월 12일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돼 곧장 의원직을 상실했습니다. 조 전 의원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사문서위조 및 행사, 업무방해, 허위·위조 공문서 작성·행사 등)와 딸 조민 씨의 장학금 부정 수수 혐의 등으로 2019년 12월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 재직 당시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관한 특별감찰반의 감찰을 무마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도 일부 유죄가 인정됐습니다.
동아일보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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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났는데도 야권에선 조 전 의원을 옹호하는 발언이 쏟아졌습니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는 이날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탄핵 완성을 위해 파란 불꽃이 됐다”며 “윤석열 쿠데타의 최대의 피해자였던 조국 대표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은 매우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습니다.
조국혁신당이야 당장 당의 간판을 잃게 됐으니 그렇다 쳐도, 민주당까지 즉각 엄호하고 나선 건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민주당은 이날 박경미 대변인 명의의 공식 입장을 내고 “조국 대표의 실형 확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라며 “검찰권 남용에 희생되면서도 ‘법과 원칙을 지키는 시민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며 판결을 수용한 조국 대표에 대해 깊은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누가 보면 조 전 의원이 굉장히 억울하게 감옥에 가는 줄 알겠습니다.
영원한 조국 지킴이 문재인 전 대통령도 조 전 의원에게 위로 전화를 했다죠.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는 이 소식을 전하면서 “조 전 의원뿐 아니라 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 등 이전 정부 인사들에 대해 검찰이 전방위적으로 무작위 수사를 한 것은 검찰권의 남용”이라고 했습니다.
12월 6일 오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내란 동조 국민의힘 규탄 및 탄핵소추안 가결 촉구’를 위한 공동 기자회견‘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 당시 조국혁신당 대표(앞줄 왼쪽 세 번째부터)가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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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전 의원(뒷줄 오른쪽 두 번째)이 대법원 판결 전인 12월 1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뒷줄 가운데) 등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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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조 전 의원이 수감되기도 전부터 사면·복권을 언급해 논란이 됐습니다. 박 의원은 13일 KBS 라디오에서 “정치 환경이 조 전 대표가 2년을 살게는 안 만들 것”이라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반드시 사면·복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조국) 본인도 딱 판결에 승복했다”며 “얼마나 깨끗하냐. 아무 저항 없이 역시 조국답다 그렇게 높이 평가한다”고도 했죠. 원래 대부분의 사람은 저항 없이 판결에 승복합니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의리가 아주 강해서 저런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표가 필요할 때면 내가 먼저 조국의 강을 건넜다고 서로 앞다퉈 얘기해 온 사람들이 민주당 사람들이니까요.
민주당은 2020년 총선, 그리고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번번이 ‘조국 손절’을 외쳐왔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2019년 10월 민주당은 “검찰 개혁이란 대의에 집중하다 보니 국민, 특히 청년들이 느꼈을 불공정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좌절감을 깊이 있게 헤아리지 못했다”고 대국민 사과를 했고, 대선을 앞둔 2021년 11월 이재명 당시 후보는 “집권 세력의 일부로서 작은 티끌조차도 책임져야 하는 건 당연하다”, “똑같은 책임도 권한이 있을 때는 더 크게 지는 것”이라고 사과한 바 있습니다. 그래 놓고 또 3년여 만에 다시 조국의 강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겁니다.
정치가 발전은커녕 퇴행만 거듭하는 씁쓸한 연말입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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