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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 (월)

윤석열식 ‘국면 전환용’ 북풍, 결국 12·3내란까지 갔다 [정욱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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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0월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국군의날 기념 시가행진 행사에서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이야기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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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부터 내려온 미국 속담에 “개의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Wag the dog)”라는 말이 있다. 권좌가 불안해진 정치 지도자가 국민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고의적으로 국가안보상의 위기를 조장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널리 쓰이지 않았던 이 표현은 1993년엔 소설책으로, 1997년엔 영화로 나오면서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사자성어로는 ‘주객전도(主客顚倒)’와 흡사한 뜻을 품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어떨까? 온 국민과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12·3 내란 사태’는 후술키로 하고, 먼저 윤석열의 위기와 대북 강경책 사이의 상관관계부터 살펴보자.



공교롭게도 정권, 보다 구체적으로는 대통령 부부가 궁지에 몰릴 때마다 ‘불필요한’ 대북 강경책이 기승을 부려왔다. 윤석열 정부는 2023년 7월에 발생한 ‘채 상병 사망 사건’으로 궁지에 몰려왔다. 특히 2024년 6월 들어 대통령실이나 국방부 차원을 넘어 대통령이 직접 개입한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바로 이 시기에 정부는 9·19 남북 군사합의 전체의 효력을 정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조선(북한)의 오물 살포, 위성항법장치(GPS) 전파 교란, 단거리 발사체 시험발사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조선의 이러한 행태는 마땅히 규탄하고 중단을 요구해야 하지만, 이것이 군사 합의 완전 파기의 필연적인 이유라고 보긴 어렵다. 당시 조선이 한국의 대북 전단 살포 중단이라는 조건을 달아 오물 살포 잠정 중단을 선언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군사 합의 파기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대북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부추기는 모습을 보였다. 판을 키우기로 작심한 것이다.



실제로 판이 커졌다. 대북 단체가 전단 살포를 재개하자 조선도 오물 풍선을 다시 날려 보내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정부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면 재개했다. 이와 더불어 6월 26일에는 7년 만에 “서북도서 해상사격 훈련”을 실시했다. ‘한반도의 화약고’로 불려온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이라는 예민한 지역에서, 조선의 노동당 전원회의를 앞둔 예민한 시기에 실시된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훈련 역시 시기적으론 채 상병 사건과 만났다. 이 훈련을 주관한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은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사령관도 겸직하고 있었는데, 그는 ‘대통령 격노설’의 복판에 있는 인물이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의 직접 개입 정황뿐만 아니라 김건희 여사의 연루설도 나오고 있었다.



명태균 사건이 본격화된 10월 들어서도 석연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발단은 조선 외무성이 11일 “한국은 지난 3일과 9일에 이어 10일에도” 무인기를 평양에 침투시켜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는 주장에서 비롯됐다. 이에 대해 당시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국정감사장에선 “그런 적이 없다”며 부인했다가 1시간 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확인해 줄 수 없다”며 말을 바꿨다. 조선이 자체 조사를 거쳐 한국군이 백령도에서 무인기를 보낸 것이라고 주장해도, 윤 정부는 “확인해줄 수 없다”는 같은 말만 반복했다.



한국군에 의해서든, 민간단체에 의해서든 무인기 대북 침투는 정전협정과 유엔사 규정을 위반하는 것이다. 유엔사의 조사 사항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국가정보원은 깜짝 놀랄 발표를 했다. 10월 18일에 나온 국정원의 발표 요지는 조선이 1만 2000명 규모의 특수부대를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기로 결정하고 1500명의 선발대를 10월 8∼13일에 걸쳐 러시아 함정을 이용해 러시아 극동 지역에 보냈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서방의 군사 지원 확대가 절실했던 우크라이나도 조선의 대규모 파병설을 제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미국과 나토는 국정원의 발표 이후 6일 동안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에 따라 국정원이 사실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발표한 의도에 관심이 쏠렸다. 국정원 발표 하루 전날에 나토 국방장관 회의에 참석했던 김선호 국방부 차관이 우크라이나가 제기한 조선의 파병설에 대해 “현재까지는 민간인력 지원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추적 중”이라고 밝혔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런데 국정원은 윤석열이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개최된 직후 ‘북한군 참전 확인’ 보도자료를 냈다. 제목부터 ‘파병’이 아니라 ‘참전’이었다. 정부가 하루 만에 정보 판단을 확연히 달리한 셈이다. 그런데 미국 국방부는 12월 3일에도 조선군의 참전(교전)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국정원의 발표는 검찰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김건희 여사를 불기소 처분키로 한 다음 날에 나왔다. 이를 통해 윤석열 정권은 두 가지 효과를 봤다. 하나는 무인기 소동에 관한 유엔사 조사가 흐지부지되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상당수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 조선의 참전설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이후로도 윤 정부는 국면을 전환할 호재를 만난 냥, 연일 강경 입장을 쏟아냈다. 조선의 파병이 한국 안보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단정하고는 북러 군사협력의 단계에 대응해 살상무기 제공, 참관단이나 전황분석팀 파병, 조선군 포로 발생시 국정원의 포로 심문 등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판을 키우기로 작심한 윤 정권은 남북 대립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되고 있는 국민의 호소조차 외면했다. 많은 주민들은 시도 때도 없어 울려대는 대남 쓰레기 풍선 살포 문자 메시지에 진절머리를 낸다. 접경 지역 주민들은 밤낮없이 들려오는 기묘하고 괴이한 소리에 일상의 평화를 잃었다. 표현을 할 수는 없겠지만 오물 풍선을 수거하러 다니고 괴음을 들어야 하는 군인들의 고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접경 지역의 주민의 울분과 군인의 말 못 할 고충을 대북 심리전의 ‘부수적 피해’ 정도로 취급했다. 냉정하게 보면 풍선 살포도, 확성기 방송도 한국이 먼저 시작했다. 이러한 행위는 정전협정과 유엔사의 규정뿐만 아니라 국제 규범도 위반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윤 정부는 막무가내이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의 대북 강경책은 ‘국면 전환’ 시도와 궤를 같이 해왔다. 그리고 12월 3일 밤에 ‘금지선’을 넘어섰다. 야당의 정부 관료 탄핵 소추와 감액 예산안 추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한다는 것도 계엄 선포의 사유로 들었다. 그는 ‘종북세력과 반국가세력을 척결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김건희 보호용’이라는 의심을 지울 순 없다. 12월 10일에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이탈표가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또 계엄 선포는 국면 전환용 카드가 고갈되면서 윤석열이 성급히 꺼내든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윤 정부의 일련의 대북 강경책이 초래할 위험은 “북한의 무력도발”에 있었다. 과거에 조선은 한국의 전단 살포나 확성기 방송에 “조준 사격”을 위협하거나 실제로 감행한 적이 있었다. 또 올해 초에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불법성”을 부각하며 해상국경선을 포함한 영토 조항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만약 조선이 이런 조치를 취하면 서해는 일촉즉발의 상태에 놓였을 것이다.



또 이들 문제로 인해 남북간에 무력충돌이 발생했다면, 윤석열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라고 주장하면서 계엄을 선포하려고 했을 것이다. 최근 나오고 있는 얘기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더불어민주당이 군으로부터 김용현 전 국방장관이 평양 무인기 침투와 “조선의 오물 풍선에 경고 사격 후 원점을 타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진실은 조사와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겠지만, 김용현이 조선의 무력공격을 유도해 이를 계엄의 빌미로 삼고자했다는 의혹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조선은 대북 전단과 확성기 방송에 총포를 동원한 무력대응이 아니라 오물 풍선과 괴음 방송으로 응수해왔다. 헌법을 개정했다고 하면서도 서해 해상국경선을 포함한 영토 조항의 신설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평양 무인기 침투에도 맞대응을 자제했다. 왜 그랬을까? 단초는 7월 8일에 나온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최악의 집권위기에 몰려온 윤석열과 그 패당은 정세격화의 공간에서 ‘비상탈출’을 시도하고 있다”며, “끊임없이 안보불안을 조성하고 전쟁분위기를 고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 것이다.



윤 정부가 부여잡은 카드는 또 있었다. 앞서 소개한 조선의 참전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여의치 않게 되었다. 조선군의 참전이 확인되면 살상무기 지원 등에 나설 수 있다고 서둘러 발표했다가 도널드 트럼프 당선 후에는 신중한 자세로 돌아섰다. 특히 11월 24일 마이크 왈츠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가 트럼프는 “확전과 그것이 갈 방향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며, “한국은 개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한 직후에 윤 정부의 신중 모드는 더욱 강해졌다. 11월 말에 무기 지원을 기대하면서 방한한 우크라이나 특사단에게 무기 지원 대신에 사회 분야 용도로 쓰일 1억 달러 지원을 약속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만약 미국 대선에서 우크라이나의 승전을 돕겠다고 했던 카멀라 해리스가 당선되었다면, 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웃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윤 정부가 대한민국의 “주적”이라고 부른 조선의 무력도발 자제가, 미국 역사상 가장 반민주적인 지도자로 일컬어지는 트럼프의 귀환이, 전시작전권을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한미동맹의 현실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실’을 제어한 셈이기 때문이다. 또 “북한 리스크”나 “북한급변사태”가 한국 민주주의·경제·안보의 최대 위협인 것처럼 소비되어왔지만, 정작 최대 리스크는 ‘윤석열’이었고 급변사태는 조선이 아니라 한국에서 발생했다. 한국을 망하게 할 뻔한 존재가 조선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과 그 일당이었다는 경험이 주는 교훈은 자명하다. 남북관계의 안정과 한반도 평화의 증진, 그리고 툭하면 ‘북풍’을 유도하려는 나쁜 관습을 타파하는 것이 복합·다중에 처한 한국의 현실을 바꾸는 데에 중대한 과제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시민의 힘으로 전화위복의 계기는 만들어졌다. 많은 이들은 내란 사태가 있기 전까진 윤석열의 퇴진·탄핵·임기 단축 모두 어려울 것이라며 “견디자”는 말들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국면이 바뀌고 있다. 한반도 문제를 놓고 보면 이번 사태는 박근혜 탄핵과 트럼프의 등장, 그리고 김정은의 폭주가 맞물린 2017년을 떠오르게 한다. 7년이 지난 오늘날 김정은은 달라졌고 강해졌다. 트럼프는 한층 강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들을 상대할 한국의 정부를 제대로 세우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해진 것이다. 민주평화진영은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발판삼아 한반도 평화를 향한 거보를 내딛을 준비를 해야 한다. 민주주의 위기와 전쟁 위기의 악순환을 끊고, 민주주의 발전과 평화 정착의 선순환을 만들어내야 한다. 훗날 ‘서울의 밤’이 전화위복으로 기록될 수 있도록 말이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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