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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 (월)

“시한부 갓난아기가 이렇게 잘 컸구나”...국내 첫 생체 간이식 주인공, 어엿한 사회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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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이지원 씨, 건강한 어른으로
1994년 첫 수술 성공한 서울아산병원
7392명에게 새인생 선물…세계최다 기록


매일경제

국내 첫 생체 간이식 주인공인 이지원 씨(가운데)가 당시 집도의였던 이승규 교수(왼쪽)와 주치의인 김경모 교수와 함께 30주년을 기념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제공=서울아산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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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2월 8일, 의료진이 숨을 죽이며 혈류를 개통한 순간, 아기 뱃속에 이식된 창백한 간이 붉게 물들었다. 아기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무사히 간으로 흘러든 것이다. 국내 첫 생체 간이식이 성공한 순간이었다.

30년 전 이 날 서울아산병원은 선천성 담도 폐쇄증으로 간이 딱딱하게 굳어가던 생후 9개월 아기에게 아버지의 간 4분의 1을 이식하며 새 역사를 썼다.

동물실험을 마친 뒤 수십 번의 시뮬레이션을 거치며 첫 환자를 기다리던 의료진, 오직 아기를 살리겠다는 마음만으로 의료진의 도전에 응하고 아기에게 간을 내어준 부모. 모두의 간절한 노력으로 생명을 얻은 시한부 아기는 올해 건강하게 서른 살을 맞이했다.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는 국내 첫 생체 간이식 주인공인 이지원 씨(30)가 첫 돌을 맞기 전 서울아산병원에서 아버지의 간 일부를 이식받은 후 현재 어엿한 사회인이 됐다고 16일 밝혔다.

이 씨의 소아 생체 간이식 성공을 계기로 서울아산병원은 지금까지 7392명(성인 7032명, 소아 360명)에게 생체 간이식으로 새 삶을 선사해왔다. 이는 세계 최다 기록이다.

간 이식후 관리 잘하면
평생 건강하게 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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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생체 간이식 주인공인 이지원 씨(가운데)가 당시 집도의였던 이승규 교수(왼쪽)와 주치의인 김경모 교수와 함께 과거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공=서울아산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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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의 주치의 김경모 서울아산병원 소아소화기영양과 교수는 “지난 30년의 시간은 의료진의 헌신과 노력의 결실일 뿐 아니라 의료진을 신뢰하며 잘 따라와 준 이식 환자들과 가족들의 끊임없는 노력의 성과”라며 “국내 첫 생체 간이식을 받은 아기가 기적처럼 유치원에 입학하고 이후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며 이제는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성인으로 성장한 것은 이식 의료의 성공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이식 후 관리를 철저히 한다면 30년을 넘어 평생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며 “이식 환자들의 성공적인 삶은 앞으로 이식을 받을 아이들과 가족에게 큰 희망을 주는 귀중한 증거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살아있는 사람의 간 일부를 이식하는 생체 간이식은 환자 입장에선 뇌사자 장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돼 병세가 악화되는 상황을 예방할 수 있다. 또 뇌사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간 손상 가능성도 고려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뇌사자 간이식에 비해 수술이 매우 까다롭고 합병증 발생 위험이 커 생존율을 담보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서울아산병원은 말기 간질환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간이식의 85%를 생체 간이식으로 시행해왔다. 최근 5년간 시행한 생체 간이식 건수만 연평균 400례에 달한다.

고난도 생체 간이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서울아산병원의 전체 간이식 생존율은 1년 98%, 3년 90%, 10년 89%로 매우 높다.

간이식 역사가 오래된 미국 피츠버그 메디컬센터와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학 메디컬센터의 간이식 1년 생존율이 평균 92%라는 점을 고려하면 우수한 성적이다.

간이식 85%를 생체 간이식으로
최근 5년간 연평균 400례 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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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생체 간이식 주인공인 이지원 씨(아랫줄 가운데)와 그의 부모님이 당시 집도의였던 이승규 교수(뒷줄 왼쪽), 주치의인 김경모 교수와 함께 30주년을 기념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제공=서울아산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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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시행한 소아 생체 간이식 생존율은 거의 100%에 가깝다.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생체 간이식을 받은 소아 환자 93명의 생존율을 분석한 결과 1년 100%, 5년 98.6%로 나타났다.

이는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소아 환자 113명의 생체 간이식 생존율(1년 92.9%, 5년 92.0%)보다 향상된 수치다.

높은 생존율을 기록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수술 전후의 고도화된 협진과 집중관리 시스템이 꼽힌다. 서울아산병원은 간이식·간담도외과와 소아외과, 소아소화기영양과, 마취통증의학과, 중환자실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유기적으로 협진하면서 발생 가능한 합병증에 대해 수술 전 미리 계획을 세우고 수술 후에는 환자 상태를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특히 소아환자의 경우 성장단계에 있기 때문에 간이식에서 접하는 일반적인 문제 외에도 영양실조 문제, 발달지연 문제, 감염 노출 문제, 사춘기 문제 등의 어려움이 있다. 소아에 대해 잘 아는 소아과 전문의의 개입이 절실한 이유다.

이에 서울아산병원은 이식 전에 이같은 문제를 최대한 해결하고 이식 후에는 소아중환자실에서 맞춤형 관리를 집중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환자가 사회로 복귀한 후에도 지속적인 관리를 실시해 이식 후 생존율을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소아소화기영양과 의사가 포함된 다학제 팀의 협진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서구에 비해 뇌사자 장기기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서울아산병원은 더 많은 환자를 살리고자 새로운 수술법을 제시해왔다.

이승규 간이식·간담도외과 석좌교수가 1998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변형 우엽 간이식은 현재 전 세계 간이식센터에서 표준 수술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변형 우엽 간이식은 이식되는 우엽 간에 새로운 중간정맥을 만들어 우엽 간 전체 구역의 피가 중간정맥을 통해 잘 배출되도록 하는 수술법이다.

새로운 수술법 도입해 성공률 95%로
2대 1 간이식으로 638명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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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5월 주치의인 김경모 교수(왼쪽 두 번째) 등 의료진이 생후 15개월이던 이지원 씨의 퇴원을 축하해주고 있다. 제공=서울아산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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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수술법 덕분에 1990년대 연간 30례였던 생체 간이식이 2000년대 들어 100례를 넘겼고 수술 성공률도 70%에서 95%로 개선됐다.

이 교수가 2000년 3월 세계 최초로 시행한 2대 1 생체 간이식은 간 기증자와 수혜자의 범위를 넓히는 데 기여했다.

2대 1 간이식이란 기증자 2명으로부터 간 일부를 받아 수혜자 1명에게 이식하는 것이다. 이로써 한 사람의 생체 기증으로는 부족한 경우에도 간이식이 가능해졌다. 그동안 638명의 환자들이 이 수술법으로 새 삶을 얻었다.

수혜자와 기증자의 혈액형이 다른 ‘ABO 혈액형 부적합 생체 간이식’ 역시 서울아산병원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시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1042명의 환자가 혈액형 부적합 간이식을 받았다. 수술 성적은 혈액형 적합 간이식과 대등한 수준이다.

서울아산병원은 간 기증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지속하고 있다. 복강경과 최소 절개술을 이용한 기증자 간 절제술은 기증자들의 회복 기간을 단축시키고 흉터를 최소화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생체 간이식을 기증한 사람 가운데 사망하거나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이 교수는 “1994년 생후 9개월 아기를 살린 생체 간이식은 우리의 간이식 여정에 의미 있는 이정표가 됐고 이를 계기로 7000명이 넘는 말기 간질환 환자들에게 생체 간이식으로 새 생명을 선사할 수 있었다”며 “이러한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건 절체절명의 환자를 살리기 위해 간이식팀 의료진이 뭉친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료진의 도전정신과 열정뿐 아니라 환자들의 눈부신 생명력도 크게 기여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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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당시 유치원생이던 이지원 씨가 집도의였던 이승규 교수와 함께 공원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제공=서울아산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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