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14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의원총회장에서 나와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당대표직 사퇴 의사가 없다’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6일 오전 10시30분 사퇴 기자회견을 하기로 돌연 마음을 바꿨다. 14일 국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가결 뒤 친윤석열계로부터 가해진 ‘조직적 사퇴 압박’에 사실상 백기를 든 것이다.
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14일 저녁 국민의힘은 혼비백산이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본회의 직후 비상의원총회를 위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에 모였고, 문이 닫히자마자 안에선 고성이 들려왔다. 일부 의원들은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당대표 들어오라고 해” “부끄러운 줄 알라”고 소리쳤다.
한 대표는 의총이 시작된 지 1시간50분여 만인 이날 저녁 6시50분쯤 의총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 대표는 비공개 의총에서 “오늘 결과에 마음 무거우실 줄 안다. 하지만 저는 탄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탄핵이 불가피하다는 건 여기 의원들도 다 알지 않느냐”는 한 대표의 발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의원석에서 고함이 쏟아졌다. 일부 의원들은 “왜 대표가 당론을 안 따르냐”고 소리쳤고,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 수행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동훈 대표의 직무 수행도 불가능하다. 이 자리에서 당장 대표직을 그만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한 대표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그는 “비상계엄을 내가 했나? 나는 (계엄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사실관계와 별개로 이 말은 그 자체로 친윤계 의원들의 분노를 더 키웠다.
의총장을 빠져나온 한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직무를 수행하겠다. 집권 여당 대표로서 국민과 함께 잘못을 바로잡고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했다. 대표직 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측근들에게는 “탄핵에 반대하면 ‘계엄 옹호당’ 되는 것 아니냐”고 답답함을 토로했고, ‘권성동 권한대행 체제’가 언급되는 것에 대해선 “내가 사퇴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가능하냐”고 분통을 터뜨렸다고 한다.
하지만 7월 전당대회 때부터 함께했던 ‘친한동훈계’ 장동혁·진종오 의원이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서 분위기는 급변했다. 14일 저녁 의총장에선 권성동 원내대표의 제안으로 한동훈 지도부의 거취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고, 의원 93명 가운데 73명이 지도부 총사퇴에 찬성했다. 당 소속 광역단체장들도 가세했다. 김태흠 충남지사는 15일 페이스북에 “제발, 찌질하게 굴지 말고 즉각 사퇴해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계속 버티면 추함만 더할 뿐 끌려나가게 될 것”이라고 페이스북에 썼다.
한 대표는 15일 오전 서범수·한지아 의원 등 참모들과 상의를 거쳐 대표직 사퇴로 기울었다. 당 지도부에 속한 친한계 인사는 “대표가 자리를 지킨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친윤과 싸우는 모습밖에 더 보이겠나. 대표가 마음을 비우는 모습을 보이고 2선으로 후퇴해 국민을 상대로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했다. 일각에선 당헌당규상 비상대책위원장 지명권이 당대표에게 있다며 ‘버틸 것’을 주문했지만 “비대위원장 임명 권한을 가지고 싸우기 시작하면 더 보기 안 좋아진다”고 만류했다고 한다. 또 다른 당 지도부 관계자도 “비대위원장 임명 권한을 두고 친윤계가 압도적 다수인 전국위원회와 다툼을 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조언하자, 한 대표도 동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대표가 사퇴할 것이란 소식이 전해지자, 국민의힘 전국위원회 의장인 이헌승 의원은 이날 저녁 페이스북을 통해 “전국위원회 의장으로서 비상대책위원회 설치를 위한 절차를 지체 없이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 들어 5번째 비대위를 꾸리게 됐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당내 계파 갈등이 커지는 상황이라 마땅한 비대위원장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4·10 총선 참패 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물러나고 새 비대위를 꾸리는 과정에서도 위원장 후보군의 상당수가 제안을 고사했고, 황우여 전 의원이 직을 수락함으로써 비대위원장 구인난도 비로소 해소됐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실시간 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