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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 (월)

국가 권력의 오남용… 인간의 위선과 가식… 우리 사회의 ‘민낯’ 꼬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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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타인의 삶’·‘대학살의 신’

어른들 진흙탕 싸움 ‘대학살의 신’

애들 싸움이 부모 싸움으로 비화

끊임없이 편가르는 사회상 투영

속사포 대화… 객석선 웃음 ‘빵빵’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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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소재와 배경, 설정, 분위기 등 어느 것 하나 닮은 게 없지만 인간의 본성, 나아가 오늘날 사회상의 그늘을 되짚게 하는 빼어난 연극 두 편이 눈에 띈다. 타인의 삶을 감시하다 자신의 삶이 180도 바뀌는 사람, 자식들 싸움을 잘 풀어보려다 오히려 대판 싸우게 되는 부모들 이야기를 다룬 연극 ‘타인의 삶’과 ‘대학살의 신’이다. 동명 영화로도 유명한 두 작품은 탄탄한 대본과 깔끔하면서도 치밀한 연출, 연기력 좋은 배우들 간 절묘한 호흡이 어우러져 관객들이 무대에서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한다.

◆‘타인의 삶’

2006년 개봉한 동명의 독일 영화를 연기파 배우 손상규가 각색·연출을 맡아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유플러스 스테이지) 무대에 올렸다. 냉전 시대 악명 높았던 동독 국가보안부(슈타지) 비밀경찰의 감시 활동을 다룬 영화는 독일·영국·미국 등 전 세계 각종 영화제에서 주요 상을 휩쓸 정도로 개봉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국내에는 2007년 개봉 후 최근 재상영돼 연극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도 했다.

연극 줄거리는 영화와 비슷하다. 동·서독을 가른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5년 전인 1984년. 반체제 인사와 반국가 세력을 상대로 한 슈타지 최정예 심문·감시 요원 비즐러(윤나무·이동휘)는 상부로부터 사상이 의심스러운 유명 극작가 드라이만(정승길·김준한)을 감시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국가와 조직에 충실한 원칙주의자 비즐러는 그의 집 곳곳에 도청 장치를 설치한 뒤 대화·통화 내용을 죄다 엿듣고 기록해 보고한다. 드라이만이 동거녀인 인기 배우 크리스타(최서희)와 사랑을 나누는 상황도 놓치지 않는다. 그러던 중 문화예술계 권력자인 햄프 장관이 크리스타를 차지하려는 음흉한 공작에 자신이 이용된 것을 알고 신념이 흔들린다. 급기야 감시 대상자들의 삶에 점차 감화돼 조직까지 배신하고 드라이만을 적극 돕다 좌천되는데…. 이야기는 동·서독 통일 후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드라이만이 비즐러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은 책을 펴내며 끝난다.

손상규 연출은 “정체성 자체가 달라지지 않아도 어떤 사람이 변화한다는 건 굉장히 큰일”이라며 “(이 작품은) 다른 사람의 삶이 각자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영향 미치는지에 관한 얘기”라고 말했다. 영화를 무대로 옮기는 건 힘든 작업인데도 연극 ‘타인의 삶’은 극적 긴장감과 인물 간 구도, 주제 의식 등 어느 것 하나 성기지 않는다. 영화 속 다양한 인물을 맡은 조연 배우 김정호·이호철·박성민의 자연스러운 1인 다역 연기도 볼 만하다. 연극에 처음 도전한 이동휘와 김준한 연기는 안정적이다.

작품 속 시대 배경인 1984년은 통제·감시 사회를 예견했던 조지 오웰(1903∼1950)의 소설 ‘1984’를 연상시킨다. 그만큼 슈타지와 햄프 장관으로 상징되는 국가 권력이 오남용될 때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도 잘 보여준다. 지금은 그물망처럼 촘촘한 폐쇄회로(CC)TV와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 기기에 기록된 각종 활동 이력,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해 마음만 먹으면 감시 통제가 훨씬 수월한 시대란 점에서 상상만 해도 오싹하지 않은가. 공연은 19일까지.

세계일보

타인의 삶을 감시하다 자신의 삶이 바뀌는 비밀경찰을 소재로 한 연극 ‘타인의 삶’과 자식들 싸움을 잘 풀어보려다 오히려 대판 싸우게 된 부모들 이야기를 다룬 ‘대학살의 신’은 인간의 본성, 나아가 오늘날 사회상의 그늘을 되짚게 하는 빼어난 작품이다. 연극 ‘타인의 삶’(위쪽 사진)과 ‘대학살의 신’ 공연의 한 장면. 프로젝트그룹일다·신시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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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살의 신’

제목만 보고 잔인한 학살극으로 지레짐작해 멀리하면 섭섭해할 블랙코미디(현실적이거나 잔혹한 상황에 통렬한 풍자가 담긴 희극)이다.

세계적인 프랑스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65)의 작품으로 2008년과 2009년 각각 영국 웨스트엔드와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라 최고 권위의 올리비에상과 토니상을 수상하는 등 대중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거장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2011년 조디 포스터와 케이트 윈즐릿 등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과 함께 영화화하기도 했다.

11살 두 소년이 싸우다 한 아이의 앞니 두 개가 부러지고, 가해자 부모인 ‘알랭’(민영기·조영규)과 ‘아네뜨’(임강희)가 사과하러 피해자 부모인 ‘미셸’(김상경·이희준)과 ‘베로니끄’(신동미·정연) 집에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각각 변호사(알랭)와 자산관리사(아네뜨), 작가(베로니끄), 사업가(미셸)로 중산층인 이들은 ‘좋게좋게’ 합의를 보려 하지만 대화할수록 감정싸움으로 치닫는다. 고상하고 예의 바른 척할 뿐 진심으로 상대 입장을 배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잘난 척과 자기주장만 고집하는 유치한 말꼬리 잡기식 논쟁이 이어지며 서로의 가식과 위선이 드러난다. 애들 싸움보다 더 유치한 어른들 싸움은 두 부부에서 각 부부, 남편들과 아내들로 편을 바꿔가며 진흙탕 싸움으로 치닫는다. 나와 우리 편만 옳다 하고 상대를 적대시해 끊임없이 다투는 사회상이 겹친다. 김태훈 연출은 “네 인물이 자신의 욕망 때문에 이기적이고 다른 이들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누구를 죽이지 않더라도 욕심과 탐욕으로 다른 이들의 것을 뺏고 짓밟는 것도 큰 의미에서 학살이라고 보면 우리 주변에서도 학살은 계속되고 있는 것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누구나 일상에서 경험할 만한 상황인 데다 공연 내내 척척 맞는 호흡으로 속사포 같은 대화를 하며 실감 나게 열연하는 배우들 덕에 객석에선 웃음이 빵빵 터진다. 말맛도 기막히다. 내년 1월5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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