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당국자 “윤 대통령 심한 오판”…일 ‘반윤 여론 불똥 튈라’ 우려
지난 12월 4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마트 신문 가판대에 이날자 1면 기사와 사진으로 한국 계엄 사태를 다룬 월스트리트저널(WSJ·왼쪽부터), 워싱턴포스트(WP), 뉴욕타임스(NYT) 등이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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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월 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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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탄핵 표결 무산 소식을 지난 12월 8일 1면 기사로 전한 일본 신문들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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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한국의 동맹이 수십 년 만에 최대 시험에 직면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으킨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지난 12월 3일(현지시간) 내놓은 평가다. CNN 방송은 윤 대통령을 “‘아메리칸 파이’ 노래를 부른 보수주의자”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의 ‘골프 외교’를 준비하고 있다지만, 과잉 행동으로 입지가 위태롭게 됐다”고 했다. 일본 외무성의 한 간부는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무산 다음 날인 지난 12월 8일 “(한·일) 정상과 각료의 상호 왕래 등 관계 개선 노력이 진행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전망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 1월 3일 저녁 10시 23분 긴급담화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외신은 탄핵소추안 상정, 투표 불성립으로 인한 탄핵안 폐기까지 각 단계를 1면 머리기사 등으로 전하며 관심을 집중했다. 주요 20개국(G20)에 속하는 나라에서 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한 것으로 봐야 하는지 등 주제도 분석 대상이었지만,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지역 외교·안전보장 질서에 어떤 후폭풍이 몰아칠지는 특히 민감한 현안으로 다뤄졌다.
북·중·러에 맞서 한·미·일 삼각안보체제를 구축해 온 미국과 일본 정부·언론의 관심이 컸다. 다만 양국이 한국의 탄핵 정국을 맞아 제시한 한·미관계와 한·일관계 위기론의 근거와 논리는 결이 조금 달랐다. 미국은 한국이 민주주의 정치 체제라는 동맹의 명분에 초점을 맞췄다면, 일본은 한국 내 실무선의 급변과 국내 정치권력의 향배에 더 집중했다.
■미국, ‘민주주의 동맹’ 위기감
“민주주의는 한·미동맹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지난 12월 3일 비상계엄 해제 직후 백악관 미국 국가안보회의(NSC)가 내놓은 “우리는 윤 대통령이 그의 우려스러운 계엄 선포를 철회하고 대한민국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를 존중한 것에 안도한다”는 성명은 미국이 생각하는 한·미관계의 핵심을 드러낸다.
뉴욕타임스는 ‘민주주의 대 독재’ 구도로 외교 정책을 펴면서 북·중·러에 대항해 한국과 군사협력을 강화해 온 조 바이든 정부가 “힘든 선택”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처음 주최하는 등 전 세계적 민주주의 촉진을 최우선 순위로 여겨왔기 때문에 한국의 계엄령이 더욱더 뼈아플 것이라고 짚었다. 바이든 정부는 임기 초부터 ‘민주주의 연대’를 내세우며 한국, 일본과의 양자 동맹 및 한·미·일 협력 강화에 공을 들여왔다.
미 정부·의회에서 비판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 12월 4일 워싱턴에서 열린 아스펜전략포럼에서 “윤 대통령이 심한 오판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 당국자가 동맹국 정상의 행동을 공개 논평하며 ‘오판’과 같은 부정 어감이 강한 표현을 쓴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사전 통보가 없었던 것도 미국이 당혹감을 표하는 요인이다. NSC는 계엄령 선포 몇 시간 만에 짧은 성명을 내고 “미국은 이 발표를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아프리카 앙골라를 방문 중이었다.
미국외교협회(CFR)에는 “한·미동맹의 ‘린치핀’(핵심축)이자 계엄령에 간접적으로 연루될 수도 있는 2만8000여명의 미군이 (한국에) 주둔 중임에도 주한미군에 알리지 않았다”는 비판 글이 게시됐다. 당혹감을 넘어 돌발적 계엄 선포가 안보상 위험을 초래할 수 있었다는 불만이 감지되는 대목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월 4일 사설에서 “한국 내 혼란 징후는 북한 독재자 김정은의 무모한 군사 행동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짚었다.
■일본, 반윤석열 여론 ‘불똥’ 튈까
일본은 윤 대통령의 탄핵 정국 전후로 한·일관계가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양국 관계 개선을 추진해 온 윤 대통령 및 현 정부 인사들의 공백으로 논의 정체가 초래될 거란 인식이 일단 보인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한 측근은 윤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가 두 차례 정상회담 동안 “모처럼 분위기가 좋았다”며 “(양자 간 정상회담은) 이 상황에서는 힘들다. 한 달 뒤에 윤석열 정권이 있을지도 알 수 없다”고 아사히신문에 말했다. 이시바 총리는 내년 초 방한해 윤 대통령과 회담하는 방안을 조율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언론은 이시바 총리가 방한 계획을 중단하고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방문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보도했다. 연내 방한 예정이던 나카타니 겐 방위상도 ‘상대방’인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사퇴하자 일정을 미뤘다.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도 이달 중순 예정된 방한을 취소했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 역시 일본 출장을 취소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반발이 ‘반일’ 여론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과거 (한국에선) 지지율이 부진하면 대통령이 ‘반일’로 선회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독도 방문’을 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 사례를 거론했다.
닛케이는 “(향후) 한국 야당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일본에 강경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고도 전망했다. 민주당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노동자, 일본군 ‘위안부’ 등 역사 문제부터 경제·영토·군사 갈등 사안 대부분에서 강성 기조였다는 데 주목한 분석이다.
산케이신문은 사설에서 야당 주도로 만들어진 탄핵소추안에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정책을 고집하며 일본에 경도된 인사를 정부 주요 직위에 임명하는 등의 정책을 펼쳤다” 등이 포함된 것을 주목했다. 공영방송 NHK가 지난 12월 6~8일 1224명 대상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66%는 비상계엄 사태가 한·일관계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다고 답했다.
이시바 총리는 지난 12월 10일 “어떤 정권에서든 한·일관계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 역시 지난 12월 9일 “우리와 대한민국의 관계는 철통 같다”고 했다. 기존 방한 계획을 보류한 뒤 찾은 일본에서 오스틴 장관이 한 말이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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