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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수)

이슈 미술의 세계

문장으로 붓질해 낸 세 여자의 입체 초상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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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거트루드 스타인 지음, 이성옥 옮김, 큐큐(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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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예술의 대모격인 거투르드 스타인(1874~1946)의 조각상(1923). 워싱턴 D.C.에 위치한 스미스소니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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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생을 보편타당하게 기술하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전기나 역사 진술에는 언제나 폭력과 대상화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문학은 언제나 인물의 삶을 가능한 한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일에 몰두해 왔다. 그 과정의 획기적인 전환점에 놓여 있는 작품이 20세기 초 ‘모더니스트들의 영적 어머니’로 불린 거트루드 스타인의 첫 소설 ‘세 명의 삶’이다.



소설은 독일 남부에서 이주해 미국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성실한 애나와 흑백 혼혈 여성으로 진정한 사랑과 지혜를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방황하는 멜란차, 그리고 독일 이민자로 미국에서 하녀 생활을 하다가 자기 뜻과 상관없이 결혼과 출산을 이어가는 무기력한 레나의 ‘평범한’ 삶을 진술한다. 이때 스타인이 주목한 인물은 이주 노동자 여성, 유색인 여성, 여성을 “인생의 유일한 사랑”으로 여기는 비혼의 중년여성 등 인종, 계급, 가부장제, 젠더 등 모든 측면에서 이른바 ‘비정상군’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절대로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을 묘사하는 방식 역시 평범하지 않다. 스타인은 기존의 전통 서사에 기대거나 과거에서 현재로 흘러가는 선형적 구조를 따르지 않고 하나의 위치, 하나의 각도에서 고정된 진술도 허락하지 않는다. 가령 2부 ‘멜란차’는 멜란차라는 여성의 초상을 완성하기 위해 그가 사랑하고 교제했던 제인, 로즈, 제프, 젬 등 무수한 주변 인물들의 진술에 의지해야 하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난 독자에게 주어지는 멜란차의 초상은 결코 완성형이 아니다. 인물의 입체도를 평면에 구현해 놓은 피카소의 초상화처럼 독자는 스타인이 쥐여준 신뢰할 수 없는 문장들을 가지고 각자의 멜란차를 그려보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스타인의 지독하게 반복적인 문장은 초상화에 가해지는 하나의 붓질이 되고 독자는 이 무수한 붓질 가운데 일부를 취사선택해 나름의 회화를 수행하는 동반자로 초대된다.



1부 ‘착한 애나’에서 애나는 “고되고 걱정 많은 삶을 살았다”라는 반복된 문장으로 기술되지만, 소설 안에서 애나는 상인들을 휘어잡고, 집주인인 “머틸다 아가씨, 심부름꾼 아이, 길 잃은 개들, 고양이들까지 끊임없이 일을 시키고, 야단치고, 툴툴거리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독자는 작가가 애나 앞에 배치한 여러 개의 수식어 가운데 과연 어떤 것을 신뢰해야 할지 확신할 수 없다. 애나는 착한가? 고된가? 통제광인가? 남에게 이용만 당하는가?



“삶은 수수께끼 같았고 미묘했으며, 부정과 막연한 불신, 어지러운 환멸로 점철되어 있었다”라는 2부 멜란차의 진술은 스스로 묘파해야 할 인물을 앞에 둔 작가의 한탄으로도, 독서 후 자신만의 초상을 완성해야 할 독자의 난감함으로도 읽힌다. 그러나 인물을 평면 위에 입체적으로 묘사해 보겠다는 불가능한 목표를 위해 스타인이 자신만의 문장을 붓 삼아 든 순간 이미 혁신과 전복은 시작되었다. 백십 년 전의 일이다.



이주혜 소설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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