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한 4일 새벽 군 병력이 국회에서 철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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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군사독재 칼날이 시퍼렇던 시절 (나와 동명이인이라고 주장하던) 검사 출신인 한 민권변호사*가 말했다.
“널 장사 삼 년 했으면 미역 장사 삼 년 하라고 했어요.”
“널 장사해 잘 먹고살려고, 사람들이 연달아 많이 죽기를 바라고 비는 것이어서, 말하자면 악업(惡業)을 짓는 일이니까 미역 장사 삼 년은 하여야 그 선업(善業)으로 이미 지은 악업을 갚는 것이라고. 미역 장사는 얼른 많이 태어나거라 하고 바라는 좋은 업을 짓는 것이니까요.”
그는 자기가 검사 노릇 삼 년 동안, 먼지 털듯 억지 죄를 씌워 처벌하는 악업을 많이 지었으므로 민권변호사를 삼 년 이상은 해야만, 의로운 가난한 자를 위해 무료 변론을 자주 해야만 기왕 지은 악업을 갚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어느 사이엔지, 검사질만 하다가 거대한 기업체 같은 로펌으로 가서 큰 사건을 맡아 돈을 잘 벌거나, 정치권 안으로 들어와서 국회의원이 되거나, 장관 따위로 임명되어, 권력을 틀어쥐고 떵떵거리는 자들이 부지기수이다.
올바르게 살지 않은 아내와 장모를 권력으로 감싸주고 살아온 대통령은 검사 시절 자신은 ‘살아 있는 권력에 충성하지 않고 공정과 정의에 충성하는 사람’이라고 잘 포장해 전 정권 진보 정치인들의 비호를 받으며 검찰총장까지 하던 자이다. 죄지은 기업주들을 불러놓고, 폭탄주를 즐겨 마시고, 죄인만 다루던 그 솜씨로 정치를 하다가 드디어는 전두환처럼 전제 군주 노릇을 하려고 계엄령을 내렸다가 ‘내란 수괴’로 폭삭 망하게 되었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국정에서 손 떼게 한 뒤 당분간 총리와 여당 대표가 국정을 맡아 운용해나가겠다는 내용의 공동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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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3일 밤 자다가 핸드폰 열어보니, 뜬금없는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고 해서 가짜 뉴스인가 했는데, 텔레비전을 켜니 완전군장한 군인들을 맨손 맨몸으로 막는 시민들의 모습, 군용차량 앞에 줄지어 앉아 있는 시민의 모습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미쳤네, 미쳤어” 하고 소리치며 일어났다. 안방에서 티브이를 보던 아내가 “여보, 난리 났어요” 하고 소리쳤다. 나는 넋을 잃고 티브이를 보았다.
“저게 성공하면 우리 딸 스웨덴 스톡홀름에 상 받으러 못 가게 할 터인데?”
미련스럽고 겁 많은 아비인 나는 이 생각부터 했고 나는 부끄러워졌다.
나는 5·18 광주 민중항쟁 때 미친 듯한 악마 특전사 군인들과 비교해가며 티브이를 지켜보았다. 군인들은 언론사 기자와 카메라맨들을 단속하지 않고 있었다.
어떤 무장 군인은 국회의원들이 본청 안으로 들어가도록 못 이기는 척 길을 열어주고, 국회의원들이 담을 넘어 국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모르는 체하고, 겉으로 보기에 참 허술한 계엄령이다 싶었다.
그것은 시민들의 저항 때문이었을까. 현장에 출동한 무장 군인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진 까닭일까. 항명이라는 말만 듣지 않을 수 있도록 적당히 막는 척만 하는 듯싶었다. 그렇게 보는 내 시각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이러구러 국회의장이 “비상계엄은 해제되었음을 선포합니다” 하고 나서 “군인들은 본대로 복귀하십시오” 하고 말했다.
만일 1980년 5월의 특전사 군인들 같았으면 국회의사당 앞은 피바다가 되었을 터이다. 가로막는 시민들과 기자들을 칼로 찌르고 총을 쏘고, 방망이로 치고…. 그러나 이번의 군인들은 1980년 5월 광주의 군인들하고는 많은 점에서 달랐다.
이번 계엄령은 실패로 끝났다. 설 똑똑한 모자라는 대통령은 이튿날 국회의 계엄령 해제 결의로 인하여, 출동한 부대를 원대로 복귀시켰다고 말한 다음 “엄포만 한 번 놓으려고 내린 계엄령이었노라”는 투의 뻔뻔한 거짓말을 하는 개그맨 짓거리를 연출했다. 행정안전부 장관은 덩달아서 “진짜로 계엄령을 내렸으면 군인들이 그렇게 허술하게 했겠느냐” 하고 말했다.
그 결과 한국은 국제적으로 웃음거리가 되고,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환율은 폭등하고, 경제 상황, 관광업은 급격히 나빠졌다. 외국 어느 나라 대통령이나 총리가 탄핵받아 감옥에 갈 우리 대통령과 상대하려 할까.
‘내란 수괴’이므로 탄핵을 받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 당’(국민의힘) 뒤로 숨으면서,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바지저고리 여당 대표와 국무총리에게 모든 권력을 일임하겠다고 말했고, 정국은 반헌법적인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은 야당의 탄핵 투표에 단체로 참여하지 않았고, 탄핵은 무산되었고, 나라 살림은 반헌법적인 쪽으로 흘러갔고 분노한 시민들은 촛불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국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있던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사당 앞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김건희 특별법 국회 통과 등을 주장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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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0일 밤 딸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그 시점을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은 딸의 수상을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토굴 옆에 있는 ‘한승원 문학학교’를 빌려달라 하고, 나에게 참여해달라고 청했다.
늙음의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어 운신이 불편한데다 수시로 잠을 자지 않으면 심하게 지쳐서 노망한 듯 버럭 짜증을 내거나, 싫다며 하지 않겠다고 도리질해버리곤 하는 변덕쟁이인 나는 마을 사람들의 열정을 감당할 수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들은 아마 탄핵의 촛불을 켜 들고 나서는 마음으로 그 축하 자리를 가지려는 것이다 싶어 나는 그들을 용인했다. 그들이 떡국을 쑤고 마당에 포장을 치고 난로를 설치하는 것을 보니 아주 밤새움을 할 태세였다.
나는 차기 대선 후보가 되겠다는 욕심으로, 내란의 수괴인 대통령의 질서 있는 (사실은 정치적인 술수로) 느슨한 퇴진을 책임지겠다고 선언한 젊은 여당 대표가 반헌법적인 행위, 내란의 행위를 하고 있음을 한시바삐 깨달았으면 좋겠고, 국민의 불같은 저항이 따를 것임을 조속히 인지했으면 한다. 이 나라가 올바른 길을 가는 것은 탄핵에 따른 절차뿐이다. 망상에 빠진 대통령이 더 큰 사고를 치지 않고 물러나야 한다. 그 대통령이 북한과 국지적인 전쟁을 일으키고, 비상사태를 불러오지 않게 해야 하고, 이 나라의 정치사회가 안정되게 해야만 한다.
한승원 소설가
*한승헌 전 감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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