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24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초청 만찬 간담회'에서 직접 요리한 계란말이를 옮기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12·3 불법계엄 선포 직후 다급히 짐을 싸서 피신한 언론인들이 있었다.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과 명태균 게이트를 보도해 온 뉴스토마토 기자들,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의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을 보도한 뉴스타파 기자들이다. 이들은 ‘언론인 체포 대상 1순위’일 거라는 두려움에 모처에 은신했었다. 유튜브 시사 프로그램 ‘뉴스공장’ 진행자 김어준씨는 실제로 집 앞에 계엄군이 나타나 “밤새 차로 달려 멀리 갔다”고 한다. 정부 비판 보도를 한 언론인들이 체포 두려움에 떠는 곳은 분명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뉴스타파 봉지욱 기자가 3일 자신의 SNS에 올린 글. SNS 캡처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러나 가만 돌이켜보면 언론계에 ‘계엄’은 느닷없이 들이닥친 게 아니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계엄 포고령 발표 전부터 대다수 언론은 '정부의 통제'를 받았다. MBC ‘바이든-날리면’ 보도가 시작이었다. 대통령실은 MBC를 대통령 해외 순방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했고, 대통령 관저 이전 천공 개입 의혹을 보도한 뉴스토마토를 대통령실 출입 기자단에서 퇴출했다.
모든 기관이 일사불란하게 ‘작전’에 동참했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 의혹 보도에 ‘윤석열 명예훼손’이라는 유례없는 혐의를 적용해 뉴스타파 사무실과 기자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과 KBS 이사장을 해임했다. 법원의 제동으로 방문진 이사장이 복귀하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MBC의 정부 비판 보도를 연일 중징계했다.
정부여당은 언론계 지형도 보수 일색으로 바꿔놓았다. 공기업 소유라 자본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웠던 YTN을 뚜렷한 이유도 없이 유진기업에 매각했고,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7년간 방송해 눈엣가시였던 TBS를 폐국 위기로 몰았다. KBS에는 방송 경험이 전무한 신문기자 출신 대통령 지인 박민 사장과 ‘파우치 대담’ 박장범 사장을 차례로 앉혔다. 언론의 자유는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다. 국경없는기자회의 ‘2024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180개국 중 62위로 추락했다. 문재인 정부 기간 41~43위였던 순위가 20단계나 곤두박질친 것이다.
그럼에도 꺾이지 않았던 언론인도 많았다. 계엄 직후 피신했던 언론인들이 그랬고, 숱한 한계 속에서도 분투한 기자들이 내 주변에도 많았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인이 무력했고 일부는 비겁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대통령실의 MBC 전용기 탑승 배제 당시 이에 항의해 전용기 탑승을 거부한 언론사는 경향신문과 한겨레 두 곳뿐이었다. 다른 언론사의 일은 되도록 보도하지 않는다는 낡고 오래된 관행 때문에 뉴스타파 압수수색이나 뉴스토마토의 기자단 퇴출에 목소리를 낸 언론사 역시 별로 없었다. 반면 대통령 말 ‘받아쓰기’에는 대부분의 언론이 충실했다.
계엄 이후 모든 언론이 그날 밤의 진실 찾기에 바쁘다. 나는 언론인들이 조각난 계엄 퍼즐을 맞춰 대통령이 응당한 책임을 지게 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퇴진한다고 언론의 자유가 저절로 회복되는 건 아니다. 어쩌면 지금 자유보다 중요한 건 언론에 대한 신뢰일지도 모른다. 언론은 2년의 '유사 계엄' 동안 권력을 감시하며 자기 몫의 목소리를 냈는지 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 그건 윤 대통령 퇴진에 한목소리를 내는 언론이 ‘죽은 권력만 물어뜯는다’는 오해를 피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