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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목)

25년만에 NYT 떠난 폴 크루그먼…“최악 통치 맞서야 나은 세상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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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지난 2022년 6월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열린 제33회 CIRIEC(씨리엑) 국제학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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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고 25년 동안 뉴욕타임스(NYT)에 칼럼을 써온 폴 크루그먼 뉴욕시티대학원 석좌교수가 10일(현지시각) 칼럼니스트를 그만둔다고 밝혔다. 크루그먼은 예일대에서 학사, MIT대에서 박사 학위를 딴 뒤 MIT·프린스턴 등에서 교수를 지냈으며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탔다.

그는 이날 ‘마지막 칼럼: 분노의 시대에 희망 찾기’란 제목의 칼럼에서 2000년 1월 시작한 칼럼을 중단하지만 세상에서 은퇴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크루그먼은 NYT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지난 25년 동안 무엇이 변했는지를 회고했다. 25년 전만 해도 미국과 서구 세계의 많은 사람이 낙관적이었는지만 지금은 분노와 원한으로 대체됐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 분노는 엘리트들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노동계급에만 있는 게 아니라, 차기 트럼프 행정부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억만장자들에게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자신이 당연히 받아야 할 존경을 받지 못해 분노한다는 것이다.

크루그먼은 1999년과 2000년 미국인 대다수는 오늘 기준에 비추면 초현실적일 정도로 만족하며 살았으며 평화와 번영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재미있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고 회상했다. 유럽에서도 1999년 도입된 유로화가 정치·경제적 통합을 이뤄 미국에 필적하는 유럽합중국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했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크루그먼은 오늘날 낙관주의가 사라진 이유로 엘리트들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점을 꼽았다. 대중들이 정치인들이 일을 잘하지 못하거나 정직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2002년과 2003년에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사기극이라는 주장에 대해 미국 대통령이 절대 그럴 리 없다며 받아들일 사람이 없었지만 지금은 누구도 자신 있게 반박하지 못할 것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그는 또 2008년의 금융위기가 정부가 경제를 잘 다스릴 것이라는 믿음을 깨트렸으며 유럽에서도 유로화가 밝은 앞날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음이 깨졌다고 강조했다. 크루그먼은 거의 모든 정치 세력으로부터 존중받던 IT 억만장자들과 IT 제품들도 더는 존중받지 못한다며 호주에서 16세 미만 청소년들의 소셜미디어 사용을 금지한 일을 사례로 들었다.

그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등 IT 억만장자들이 우경화되는 조짐이 뚜렷하다면서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는 진보 세력 때문에 이들이 우경화된 게 아니라고 진단했다. 그보다는 대중의 인기에 매몰됐던 금권 정치가들이 돈으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잘못됐음을 깨달으면서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

크루그먼은 분노가 나쁜 사람들에게 권력을 쥐여줄 수는 있어도 오래 권좌에 머물게 할 수는 없다면서 현재의 비관적 상황이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시간이 지나면 엘리트들을 공격하는 정치인들도 엘리트임을 대중들이 깨닫고 공약을 이행하지 않는 것에 책임을 묻게 된다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대중들이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헛된 공약을 남발하지 않으며 최대한 솔직해지려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라고 그는 예상했다.

크루그먼은 예전처럼 권력을 가진 사람이 진실을 말하며 일을 제대로 한다는 믿음이 회복되지 않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최악의 권력자에 의한 통치(악덕 정치)가 등장하는 것에 맞선다면 더 나은 세상을 되찾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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