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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목)

이슈 미술의 세계

‘차학경’이라는 삭지 않는 신화…‘딕테’ 20년만 재출간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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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5세대 한국계 미국인 작가 차학경(테레사 학경 차, 1951~1982)이 영화를 찍고 있는 모습. 유튜브 채널 On This Spot NYC(여성 아티스트 삶을 보여주는 비영리 디지털 매핑 프로젝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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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차례 뒤 첫 쪽을 이렇게 연다.



“문단 열고 그날은 첫날이었다 마침표 그녀는 먼 곳으로부터 왔다 마침표 오늘 저녁 식사 때 쉼표 가족들은 물을 것이다 쉼표 따옴표 열고 첫날이 어땠지 물음표 따옴표 닫고 적어도 가능한 한 최소한의 말을 하기 위해 쉼표 대답은 이럴 것이다 따옴표 열고 한 가지밖에 없어요 마침표 어떤 사람이 있어요 마침표 멀리서 온 마침표 따옴표 닫고”



작가의 의도가 묘연하므로, 일단 받아써 보자면 이렇다.



“그날은 첫날이었다. 그녀는 먼 곳으로부터 왔다. 오늘 저녁 식사 때, 가족들은 물을 것이다, ‘첫날이 어땠지?’ 적어도 가능한 한 최소한의 말을 하기 위해, 대답은 이럴 것이다 ‘한 가지밖에 없어요. 어떤 사람이 있어요. 멀리서 온.’”



1.5세대 한국계 미국인 작가 차학경(테레사 학경 차)이 1982년 미국서 출간한 작품 ‘딕테(DICTEE)’다. 불어식 제목(Dictée에서 악센트를 제외함)에 이어 불어로 쓰인 서두부터 해석은 한 가지로 요연해지기 어렵다.



외견상 글점조차 기표되고 있다. 기록된 문자를 읽어주는 순간일 수도, 문자로 기록하게 하는 순간일 수도 있다. ‘기록’은 ‘기억’으로 바꿔 읽어도 좋겠다. 상대적으로 명료한 건 말의 뜻, 즉 기의다. 여성이 아주 멀리서 떠나온 날, 떠나왔다는 사실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 그 ‘순간’ 너머의 아득한 서사가 있다. 더 말하고 싶다 한들 떠나온 곳의 언어로는 극소화할 수밖에 없다. 기표와 기의 사이, ‘침묵’과 ‘묵음’으로 억눌린 말들이, 두 칸씩 벌어진 활자 틈새 빠져 있다. 무슨 사태인가.



차학경을 알면 그나마 선명해진다. 1951년 3월 피란 중 부산서 태어나 1962년 가족 따라 미국 하와이로 이주한 디아스포라. 그의 부모는 일찌감치 유민이었다. 일제 강점기 만주 용정에서 나고 자라 교사를 했던 차학경 어머니의 중학교 은사가 안수길, 김찬도(영어소설 ‘순교자’의 저자 김은국의 부친)이고, 동네 오빠들이 윤동주·송몽규 시인이었다. 어머니가 영혼의 고향이라면, 1964년 옮겨 간 샌프란시스코 베이가 차학경의 예술적 거점이 된다. “말이 별로 없”던 소녀를 변모시킨 곳이다. 글과 언어에 두각을 보인다. 가톨릭계 샌프란시스코 대학을 잠시 다닌 뒤 U.C 버클리대에서 10여년 간 비교문학, 미술 등 4가지 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76년엔 프랑스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문학, 비평, 사진·영상·퍼포먼스 등 전방위 실험적 예술가로서, 이방인, 특히 아시아계 여성의 언어, 신체, 문화, 역사, 고통과 신화, 그 모두를 말할 권리에 관한 자각과 성찰의 신기원을 이룬 자가, 사후 차학경이다. 결정판이 산문시라 부를 법한 ‘딕테’다. 3년 만에 출간할 수 있었던, 그러나 1982년 11월 출간된 지 3일 만에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마는 비운의 작가. 하필 장례일, 어머니와 형제에게 차학경이 먼저께 보낸 책이 도착한다. ‘딕테’의 첫 이미지가 “어머니 보고 싶어/ 배가 고파요/ 고향에 가고 싶다” 활자다.



차학경의 예술 관념을 관통하는 열쇳말로 ‘Displacement’가 꼽히곤 한다. 이동, 난민, 유랑, 추방, 해고의 상태다. 이 강제성은 언어로 결정되고 증거된다. “말하려는 고통”보다 “더 거대한 것은 말하지 않으려는 고통”인 처지로, “끝없는 웅얼거림” “깨어진 말”을 구원하려는 행위가 바로 책 제목 ‘딕테’, 즉 ‘받아쓰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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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고 차학경 작가의 사진. 오빠 차학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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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학경 작가의 1975년 퍼포먼스 ‘Aveugle Voix’의 스틸컷. ⓒTrip Callaghan, 문학사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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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이 ‘어머니’이자 ‘모계의 말’이다. “어둠 속에서 말”하던 망국기로부터 “더 이상 당신을 유배 보내겠다는 통첩장도 날아오지 않”는 때까지의 어머니 허형순의 생애사가 ‘말’의 생애처럼 펼쳐진다. 유관순, 잔 다르크, 성녀 테레즈 등을 소환하여 자신만의 부고이자 부활의 노래를 짓는다. ‘받아쓰기’는 전체 9장을 그리스 신화와 접목해, 신화 새로 쓰기로 나아간다. 유관순에 역사의 여신 클리오, 허형순에 웅변과 서사의 여신 칼리오페, 성녀 테레즈에 연애의 여신 에라토가 소제목으로 헌사 된다.



본문·편집의 형식도 전위적이다. 프랑스어, 한국어, 그리스어가 영어와 병치 되고, 사진, 차학경 아버지 차형상의 붓글씨, 좌우면 이중 편집 등 시각물 콜라주와 비전형적 편집이 부단히 시도된다. ‘맥락’을 해체하여 확장하는 꼴이다.



책엔 끝내 범접 되지 않을 대목들 있겠다. 반면 지극히도 현재적이며 지금에도 미래적인 ‘딕테’ 또한 있다. 특히 모계의 말이 잠식된 민중의 말과 나란할 때다. 1979년말 차학경은 첫 방한 한다. 계엄령 내려진 시공간을 받아쓴 4장(‘멜포메네 비극’)의 계기로 추정된다. 2024년 12월3일 밤, 기사 쓰는 때마침 처연해지는 대목이다. 이민 직전인 1962년 “오빠를 붙들고 제발 (4·19) 시위에 나가지 말라고 간청”하던 어머니, “죽어도 좋”다는 오빠의 뺨을 때려 주저앉힌 가정교사, “오빠는 남아 있는 모든 사람이고 다른 모든 사람은 곧 오빠”인 시대로부터 이민 간 18년 동안 “정지 상태”에 있는 고국을 보면서 차학경은 운다. “우는 군중을 따라”간다. “그들의 노랫소리, 텅 빈 거리를 따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들의 목소리를 따라.”



“무명의 타인들 그녀”의 말이 무엇이었나. “망각으로 해체되기를 거부한다./ … 순수한 위험이/ 반딧불처럼 미세한 마찰에도 발화되어 자신을 불사른다. 타버려야/ 할 손실. (…) / (…) 잃어버림으로써 빛을 내라./ 상실로써 빛을 발하라./ 그러나 그것은 상실하지 않는다.”



그가 떠난 지 40년이 지났지만, ‘차학경 읽기’는 여전히 뜨겁다고 해야겠다. 10년 전 12월5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열린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 워크숍 프로그램이 차학경에서 차학경까지다. 차학경의 단편영화 ‘퍼뮤테이션’, 아방가르드 시, 신비주의, 초국적 페미니즘 등의 주제들로 겨우 가늠되는 광활한 세계의 작가. 한국에선 급기야 20년 전 절판된 번역본을 북펀딩으로 재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조금 난해할 수도 있겠으나, 윤석열에게도 권한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딕테
차학경 지음, 김경년 옮김, 문학사상, 1만8000원



한겨레

고 차학경 작가의 1979년 사진. 문학사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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