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보폭 넓히는 김동원 한화생명 CGO
한화생명이 국내 보험사 최초로 미국 증권사를 인수한다. 올해 5월 보험업계에서 처음으로 인도네시아 은행 지분 투자에 나선 지 반년 만이다. 한화생명을 필두로 한화그룹은 지난해부터 해외 은행, 보험사, 증권사를 잇달아 사들이며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한화생명을 이끄는 여승주 부회장과 함께 해외 진출에 앞장선 이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39)이다. 한화그룹 금융부문을 승계할 것으로 알려진 그의 공식적인 직함은 최고글로벌책임자(Chief Global Officer)다. CGO로서 경영수업을 받는 그는 시장 포화로 녹록지 않은 보험에서 글로벌 M&A로 성과를 쌓아가는 중이다.
1985년생/ 세인트폴고, 예일대 동아시아학과 학사/ 2014년 한화 경영기획실 디지털팀 팀장/ 2015년 한화생명 전사혁신실 부실장/ 2016년 한화생명 전사혁신실 상무/ 2017년 한화생명 디지털혁신실 상무/ 2019년 한화생명 최고디지털전략책임자(상무)/ 2020년 한화생명 최고디지털전략책임자(전무)/ 2021년 한화생명 최고디지털전략책임자(부사장)/ 2023년 한화생명 최고글로벌책임자(사장) |
美 증권사 벨로시티 지분 75% 매입
금융 심장부 ‘뉴욕’에 한화 깃발 꽂아
한화생명은 미국 증권사 벨로시티(Velocity) 지분 75%를 매입하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거래 금액은 2000억원대 중반으로 알려졌다. 국내 보험사가 미국 증권사를 인수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03년 설립된 벨로시티는 헤지펀드, 브로커, 투자 플랫폼 등 기관 투자자를 주요 고객으로 둔 증권사다. 자산 규모는 1조4000억원대로 크지 않다. 그러나 신규 취득이 쉽지 않은 청산·결제 라이선스를 보유한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 정식 회사 명칭이 ‘벨로시티클리어링(Clearing·청산)’이다. 최근 한국과 글로벌 고객을 대상으로 미국 상장주식 중개 사업을 키웠다.
청산·결제란 주식이나 파생상품 등의 매매 체결 이후 결제 시점까지 가격이 변해도 정산이 약속대로 이뤄지도록 보증하는 절차다. 국내에서는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이 이 역할을 맡는다. 미국에선 라이선스를 딴 증권사가 담당한다. 한화생명 측은 “미국 3300여개 증권사 가운데 청산·결제 라이선스를 갖춘 곳은 벨로시티를 포함해 80여개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한화생명은 이번 M&A를 통해 세계 최대 금융 시장인 미국에서 직접 금융상품을 소싱하고 판매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게 됐다. 현지에서 투자 기회를 모색해 장기 수익성을 높이고, 개인 고객에게도 대체 투자처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한화생명은 한미 양국 금융당국의 인수 허가 뒤 인수합병(M&A)이 완료돼도 벨로시티의 기존 경영진과 계속 협력할 방침이다. 벨로시티 측도 보도자료를 내고 “벨로시티는 기록적인 성장세를 보여왔다”며 “한화생명의 지원 속에 아시아 지역에서의 성장세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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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고령화로 해외서 돌파구
인니 은행·손보사 인수에도 관여
그간 국내 시장에 갇혔던 보험사들이 해외로 눈길을 돌리는 추세가 뚜렷하다. 국내 생명보험 산업이 저출생·고령화로 정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해외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다. 국내 보험사 중 한화생명이 해외 진출에 가장 앞설 수 있는 데는 김 사장 공이 적지 않다. 국내 보험사들이 해외 투자를 망설이는 이유로 재임 기간이 짧은 전문경영인이 장기 비전을 세우지 못한다는 점이 꼽힌다. 국내 보험사 최고경영진 재임 기간은 2~4년 정도에 불과해 멀리 보고 해외 사업을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한화생명은 다르다. 김 사장은 김승연 회장으로부터 금융부문 성장동력 발굴을 주문받았다. 세인트폴고와 예일대 동아시아학과를 나온 그는 영어가 능통하고 해외 시장에도 밝다. 김승연 회장은 지난 4월 김 사장과 함께 서울 여의도 63빌딩에 위치한 한화금융 계열사를 직접 방문해 해외 진출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김 사장에게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김 사장은 인도네시아 진출에도 기여했다. 지난 4월 한화생명은 인도네시아 리포그룹(Lippo Group)이 보유한 노부은행 지분 총 40%를 매입했다. 해외 은행업에 진출한 건 국내 보험사 중 한화생명이 처음이다. 노부은행은 지난해 말 기준 총자산 2조3000억원의 현지 30위권의 중형은행이다. 115개 지점과 1247명 직원을 보유하고 있고, 개인 모기지대출과 중소기업 운전자금대출을 주력으로 취급한다.
지난 1월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김 사장이 존 리아디(John Riady) 리포그룹 대표와 만나 나눈 대화가 은행업 진출 초석이 됐다.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인연을 이어온 두 사람은 지난해 3월 한화생명 인도네시아법인의 리포손해보험 지분 투자를 성사한 이후 우호적 협력 관계를 이어왔다. 이제 한화생명은 인도네시아 내에 노부은행과 함께 몰티코생명, 리포손해보험 등을 거느리며 인도네시아 내 종합금융그룹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게 됐다.
한화생명이 인도네시아에 처음 진출한 건 2012년 현지 보험사 몰티코생명(Multicor Life Insurance)을 인수하면서부터다. 이후 지난해 3월 리포손해보험(Lippo General Insurance) 지분 74.4%(한화생명 59.5%, 한화손해보험 14.9%)를 인수하며 손해보험업까지 발을 넓혔다. 한화생명 인도네시아법인은 지난해 69억원 순손실을 기록했지만 초회보험료는 전년보다 57% 성장한 94억원을 거둬들였다. 다만 한화생명 인도네시아법인의 경우 올해 3분기 48억원의 순손실을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10억원 순손실)보다 적자폭이 커졌다. 리포손해보험도 올해 3분기 51억원 순이익으로 지난해 동기(118억원) 대비 감소했다.
생명·손보·증권 등 금융 맡아
내년 3월 사내이사 올라설지 주목
한화생명은 2008년 진출한 베트남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하노이와 호찌민에 각각 1개, 2개 지점으로 시작한 한화생명 베트남법인은 지난해 말 기준 베트남 전 지역에 지점 18개, 대리점 101개 등 총 119개를 운영 중이다. 2016년에는 설립 8년 만에 국내 보험사 최초로 해외 시장에서 당기순이익을 달성했다. 이후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개년 연속 흑자 기조를 이어갔다. 국내 보험사가 100% 출자해 단독으로 설립한 해외 현지법인 중 지속적인 흑자를 달성한 곳은 한화생명 베트남법인이 처음이다. 한화생명 베트남법인은 오는 2030년까지 베트남 시장에서 ‘톱(Top)5 보험사 진입’과 ‘연간 세전이익 1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
잇따른 해외 사업 성과로 김 사장 경영 승계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화그룹 금융 계열사는 김 사장이 맡는 것이 확실시된다. 한화그룹은 최근 금융 계열사 가운데 유일하게 한화솔루션 아래 있던 한화저축은행을 한화생명이 인수하기로 결정하며 금융 계열사 지배구조를 정리했다.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김 사장이 한화생명 사내이사에 오르면 경영 승계에 한발 더 다가간다. 금융부문 주력은 한화생명으로 지주사인 ㈜한화는 한화생명 지분 43.24%를 보유했다. 한화생명은 한화자산운용과 한화손해보험 지분을 각각 100%, 51.36% 쥐고 있다. 한화자산운용이 한화투자증권 지분 46.08%를 갖고 있는 구조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7호 (2024.12.04~2024.12.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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