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6월20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김용현 경호처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중과부적이었다. 수고했다.”
1979년 신군부의 12·12 반란을 진압하려다 실패한 장태완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의 말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새벽 비상계엄령을 해제한 직후,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국방부 관계자 등에게 했다는 발언이다. 국방부는 이날 김 장관이 비상계엄 선포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건의한 당사자라고 확인해줬다. 김 장관은 여당이 해임을 요구하고 야당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직후 사의를 밝혔다.
군 내부 상황에 밝은 소식통은 4일 새벽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해제한 직후, 김 장관이 국방부 관계자들을 모아 놓고 “현 시간부로 비상소집을 해제한다”며 ‘중과부적’이란 말을 입에 올렸다고 했다. ‘중과부적’(衆寡不敵)은 ‘적은 수로는 많은 적을 대적하지 못한다’는 사자성어다.
3일 밤 10시28분, 긴급 대국민 담화 발표와 함께 예고 없이 선포된 비상계엄은 김 장관의 건의에 따라 이뤄졌다는 게 국방부 쪽 얘기다. 김 장관은 이날 밤 10시40분께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를 개최하고 전군에 비상경계 및 대비태세 강화를 지시했다. 이후 밤 11시23분쯤 박안수 육군참모총장(대장)이 사령관을 맡은 계엄사령부가 포고령(1호)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시간30분이 조금 지난 4일 새벽 1시쯤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새벽 4시27분 윤 대통령은 계엄 요구 수용 의사를 밝혔고, 군도 이를 전후로 국회 등에 투입된 병력을 원소속 부대로 복귀시키고 계엄사령부를 해산했다.
김 장관은 야권이 계엄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목해온 인물로 윤 대통령의 충암고 동문이다.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9월2일 열린 국방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김 장관이 한남동 경호처장 공관으로 특전사령관과 방첩사령관 등을 불러들이면서 출입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고 했다며 “(당시) 계엄 얘기를 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했다. 김 장관뿐만 아니라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옛 기무사령관), 박종선 777사령관(군의 대북 첩보 조직) 등 윤 대통령과 충암고 동문인 장성들이 군 정보·첩보 요직을 장악한 것도 야권의 의심을 키웠다.
그러나 이러한 의혹 제기에 김 장관은 “지금 대한민국 상황에서 과연 계엄을 한다고 하면 어떤 국민이 이를 용납하겠나. 우리 군에서도 따르겠나. 저는 안 따를 것 같다”고 말했다. 안규백 민주당 의원이 “장관 후보자께서 (계엄 발동 우려를) 일소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주시고 여기서 확실하게 말씀해달라”고 하자, 김 장관은 “확실히 없습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김 장관은 미필자로 군 문제에 어두운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을 제안해 ‘국헌 문란’ 사태의 주동자가 됐다. 그의 명령으로 국회로 향한 군 병력은 유리창을 깨고 창문을 넘어 국회 본청 안으로 진입해 이를 막으려던 야당 보좌진·당직자들과 충돌했다. 군의 모든 움직임이 그의 주도 아래 이뤄졌다는 점에서 김 장관은 ‘형사적’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는 결국 4일 오후 “비상계엄 사무와 관련하여 임무를 수행한 전 장병들은 장관의 지시에 따른 것이며,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며 “비상계엄과 관련한 모든 사태의 책임을 지고 대통령께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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