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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반도체 기술 통째로 빼돌렸는데 쥐꼬리 벌금 내고 끝?”…이런 이상한 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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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3배 내세워 스카우트
20나노 D램 독자기술 유출돼
경찰, 헤드헌터 등 21명 기소

인력알선 행위 엄벌 기준 없어
5년이하 징역·벌금 5천만원뿐
산업스파이에 ‘솜방망이’ 지적


매일경제

[사진 = 챗GPT]


삼성전자의 반도체 핵심 인력 30여 명을 스카우트한 후 중국 업체로 보내 삼성의 독자적인 20나노 D램 기술을 빼돌리는 데 일조한 인력 알선 브로커가 적발됐다. 그러나 국가 핵심 기술 유출에 적극 가담했음에도 입법 공백으로 인해 해당 브로커에게는 ‘미등록 국외 유료직업소개사업’이라는 가벼운 혐의가 적용됐다.

국회가 적극적으로 입법에 나서 이 같은 범행에 대해서는 ‘산업 스파이’ 혐의 등 중범죄 처벌을 적용해 ‘일벌백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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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서울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삼성전자 엔지니어 출신인 A씨(64)를 직업안정법 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구속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중국 반도체 업체 ‘청두가오전’ 설립 단계부터 고문으로 참여했다. 이후 A씨는 국내에 헤드헌팅업체를 차리고 삼성전자 핵심 인력에게 기존 연봉의 최소 2~3배를 약속하며 중국으로 끌어들였다. 고액 연봉은 물론 주거비와 교통비 지원 등도 제시했다.

경찰은 A씨와 같은 방법으로 중국에 국내 반도체 전문인력을 빼돌린 헤드헌팅업체 대표 2명과 헤드헌팅법인 1개도 불구속 송치했다. 이들이 청두가오전에 유출한 인력은 총 30명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A씨에게는 산업기술 유출을 다루는 법률이 아니라 헤드헌터 관련 법률이 적용됐다. 인력 유출을 통한 간접적인 기술 유출의 경우에는 산업기술보호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A씨에게 적용된 직업안정법은 고용노동부 장관의 등록이 있어야 국외 유료직업소개업을 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처벌 수위가 산업기술보호법보다 현저히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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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DB]


현행 직업안정법은 무등록 영업을 한 헤드헌터에 대해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을 내릴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산업기술보호법은 중요 기술 유출을 엄격히 처벌하고, 음모를 꾸미는 행위까지도 제재하고 있다. 반도체·자동차·2차전지·원자력 등 ‘국가핵심기술’ 유출 행위에는 3년 이상 징역과 함께 15억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이 같은 징역형 하한 규정은 통상 중범죄에만 적용된다. 실제로 지난 9월 구속 송치된 청두가오전 대표인 삼성전자 상무 출신 B씨(66) 등에게는 산업기술보호법과 부정경쟁방지법 등이 적용됐다.

산업계에서는 불법적인 해외 기술 유출에 전문 브로커가 개입할 정도로 관련 범죄가 고도화·조직화하고 있는 만큼 관련 제도도 시대의 변화를 쫓아갈 수 있게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기술 유출’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현행법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인력 유출에도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통제가 어렵고 규제 회피가 용이한 ‘인력 유출’ 방식으로 기술이 유출되고 있다는 것이 이번 수사로 확실히 드러났다”며 “보다 엄정한 법 개정을 통해 사회적으로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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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두가오전은 한국에서 유출된 인력들의 반도체 지식과 기술로 2021년 12월 중국 현지에 D램 제조 공장을 세우고, 공장 준공 1년3개월 만인 2022년 4월 시범 웨이퍼 생산에 성공했다. 시범 웨이퍼란 적용한 기술이 실제 반도체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기초 개발 제품을 뜻한다. 통상적으로 D램 개발 경험이 있는 반도체 제조사들이 새로운 세대의 시범 웨이퍼를 생산하는 데는 4~5년이 걸리는 만큼 청두가오전은 기술 베끼기로 1년 만에 목표를 달성했다. 다만 청두가오전은 이번 수사로 양산 단계까지는 진입하지 못했고, 현재 공장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경찰은 삼성전자가 18나노급·20나노급 공정 개발 비용으로 투입한 4조3000억원을 최소 피해금액으로 추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제효과 등까지 감안하면 실제 피해 금액은 4조원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만약 청두가오전이 제품 양산 단계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내 기업들에 돌아올 뻔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중국과 한국 간 반도체 기술격차가 빠른 속도로 좁혀지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1~2년 차이에 불과하다”며 “이번 기술 유출로 격차가 더 좁혀질 수 있다. 결국에는 한국 반도체 산업 전체가 사라질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경찰은 A씨를 포함해 21명을 검찰에 넘기며 청두가오전 기술 유출 수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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