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기와 중국 국기가 나란히 바람에 날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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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인공지능(AI) 기술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중국 수출을 통제하자, 중국도 반도체 재료로도 쓰이는 갈륨과 게르마늄 등의 대미 수출을 금지했다. 인공지능 기술을 놓고 벌이는 양국의 미래 패권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한국의 피해도 예상된다.
중국 상무부는 3일 오후 ‘이중 용도 품목의 미국 수출 통제 강화’ 지침을 내놨다. 상무부는 ‘중국 수출통제법’ 및 기타 법률·규정에 의거해 국가 안보·이익을 수호하고 핵확산 방지와 같은 국제적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이중 용도 품목의 미국 수출 통제를 강화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갈륨과 게르마늄, 안티몬 및 초경질 재료 등의 미국 수출이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흑연의 미국 수출도 최종 사용에 대해 좀 더 엄격한 검토를 받아야 한다.
중국은 지난해 8월 갈륨과 게르마늄을, 12월에는 흑연을 수출 통제 대상에 올렸다. 당시 중국은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이번에는 “최근 몇년 동안 미국은 국가 안보 개념을 과도하게 확대하고, 경제·무역·과학기술 문제를 정치화하고 무기화했다”며 미국을 타깃으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취해진 이들 품목의 수출 통제도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를 전후해 이뤄졌다. 갈륨과 게르마늄은 태양광 패널, 레이저, 컴퓨터 칩 등 다양한 제품에 사용되며, 적외선 탐지기, 군사용 레이더 등 군용 제품에도 쓰인다.
전날인 2일 미국 상무부는 ‘중국의 군사용 첨단 반도체 생산능력 제한을 위한 수출 통제 강화’ 조처를 내놓았다. 이 조처에서 미국은 고대역폭메모리를 처음으로 미국의 대중국 수출 통제 대상에 올렸고,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장비와 소프트웨어도 통제 대상에 추가했다. 중국 정부의 통제 아래 있는 중국 기업 등 140곳도 제재 리스트인 ‘우려 거래자’(EL) 목록에 추가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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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을 막자 중국은 반도체 등 제조에 필요한 원자재 수출을 금지하며 대응한 것이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이 지난 10월 중순 중국의 갈륨 및 게르마늄 수출 통제가 미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따진 보고서는 “중국의 갈륨과 게르마늄의 수출이 완전히 제한되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31억달러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다만, 중국의 갈륨 등 수출 금지는 중국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중국이 지난해 8월 갈륨을 수출 통제 대상에 올린 뒤 갈륨 수출이 한때 줄어들었으나 넉달 만인 지난해 12월 수출량이 수출 통제 전 수준으로 회복된 바 있다고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가 전했다.
중국은 이번 대응 조처와는 별도로 미국의 기술 통제에 맞서 기술 자립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올해 들어 2035년을 과학기술 강국 건설 목표로 제시하고 과학기술 자립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5월 세번째이자 역대 최대인 64조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기금을 조성했는데, 생산 설비와 재료, 고대역폭메모리 등 인공지능 반도체 분야 등을 주요 투자 대상으로 삼고 있다.
중국은 이미 저사양 고대역폭메모리는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대만 매체들은 지난 8월 중국 창신메모리(CXMT)가 고대역폭메모리 생산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창신메모리가 생산하는 제품은 에스케이(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 등의 제품보다 사양이 떨어지는 것이긴 하지만, 생산 시기가 애초 예상보다 1~2년 앞당겨진 것이어서 주목된다. 창신메모리는 이번 미국의 기술 통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이에 대해 블룸버그 통신은 “예상했던 것보다 제재 강도가 낮다”고 평했다.
미·중의 이번 대결로 당장 피해를 받는 곳은 한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인공지능 기술을 국가 핵심 사업으로 키우고 있지만, 주요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를 원활하게 생산하지 못하고 수입에 의존해왔다. 삼성전자는 고대역폭메모리 매출의 중국 비중이 20~30%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도 있어, 타격은 불가피해 보인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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