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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빨간 마후라부터 딥페이크까지…'보는 자' 사라져야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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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교실 : 딥페이크 그후>
③아이들을 몰랐다
웹하드 카르텔·단톡방·텔레그램...
사건 후 처벌 강화해도 범행 여전

편집자주

그 아이의 일상이 지워졌다. 더는 SNS에 추억이 담긴 사진을 공유할 수 없고, 교실에서 친구들과 마음 편히 수다 떠는 게 두렵다. 댄서가 돼 무대에 서겠다는 꿈도 사라졌다. 지난여름, 우리 사회를 분노케 한 딥페이크 사건 피해자들의 지옥 같은 풍경이다. 사회적 관심은 계절이 바뀌며 싸늘하게 식었고, 홀로 남겨진 10대들은 더 기댈 곳이 없다. 한국일보와 코리아타임스는 어린 피해자와 가해자가 유독 많은 국내외 딥페이크 사건 그 후를 추적했다. 디지털 성범죄는 교실 안 풍경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한국일보

1997년 ‘빨간 마후라’ 사건을 보도한 언론의 헤드라인. ‘불법 촬영물’을 ‘음란물’이라고 표현했으며 피해자를 ‘포르노의 주인공’으로 일컬었다. 당시 피해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처음엔 촬영을 거부했으며 (가해자들이 촬영본을) 버린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한국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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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딥페이크(인공지능으로 만든 합성 사진·영상)는 어느 날 불쑥 등장한 범죄가 아니다.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성범죄의 역사는 제법 길다. 신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수법이 진화했다. 불법 딥페이크는 고도화된 인공지능(AI) 기술을 악용한 범죄지만, 그 본질은 지난 30년 가까이 이어져온 다른 디지털 성범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신기술 나올 때마다 악용하는 온라인 성범죄자들


디지털 성범죄의 뿌리는 1997년 '빨간 마후라'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0대 남성 두 명이 여중생 한 명을 성폭행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 비디오는 서울 청계천 불법 암시장에 돌았다.

가정마다 초고속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한 1999년에는 온라인 기반 성범죄가 터지기 시작했다. 그해 성매매 후기 사이트로 처음 등장한 '소라의 가이드'는 이후 '소라넷'으로 이름을 바꾼 뒤 2000년대 중반을 지나며 성착취 촬영물 등을 공유하는 '불법 장터' 역할을 했다. 상대방 동의 없이 몰래 찍은 성관계 영상이 여기서 교환됐다. 소라넷은 한때 회원 수가 100만 명에 달했지만 2016년 운영자가 검거된 뒤 폐쇄됐다.

군사 안보 목적으로 처음 만들어진 다크웹(특정 프로그램으로만 접속되는 비밀 사이트)이 대중에 알려진 2010년대에는 이곳에서 불법 영상물을 거래하는 범죄자들이 생겼다. 손정우가 대표적이다. 그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를 운영했는데, 생후 6개월 아이가 등장하는 영상도 있었다.

'웹하드 카르텔' 사건(2018년)은 '성착취물이 돈이 된다'는 인식을 퍼뜨렸다. 양진호 전 한국미래기술 회장은 2015년 1월~2019년 7월 자신이 소유한 웹하드 사이트 ‘위디스크’와 ‘파일노리’를 통해 유통된 불법 성착취물과 음란물 등을 이용해 349억 원의 수익을 거뒀다. 그는 불법자료를 거르는 필터링 업체와 피해자에게 돈을 받고 영상을 삭제해주는 디지털 장의업체까지 함께 차려 '카르텔' 구조를 구축했다.
한국일보

국내 디지털 성범죄 역사. 그래픽=송정근 기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디지털 성범죄물을 더 쉽게 유포시키는 통로가 됐다. 유명 연예인들이 여성을 성폭행하는 영상을 촬영한 뒤 이를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공유한 '정준영 단톡방' 사건(2019년)이 대표적이었다. 범죄자들 사이에서 '카톡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텔레그램이 범죄의 온상이 됐다. 미성년자 그루밍(피해자의 심리를 지배하는 방식으로 벌이는 성범죄)과 잔혹한 성 착취로 공분을 샀던 'n번방'과 '박사방' 사건(2020년)이 텔레그램을 무대로 발생했다.

2016년부터는 '지인능욕'이라는 용어가 온라인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아는 여성의 사진을 무단으로 공유하며 신상 정보와 성 관련 거짓 정보 등을 함께 뿌리는 방식이었다. 이후 딥페이크 기술이 발전하면서 여성의 얼굴에 나체 사진을 합성하는 범죄가 횡행했다. 올해 8월에는 텔레그램에서 대규모 딥페이크방의 존재가 잇따라 알려지면서 사회적 문제가 됐다.
한국일보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왼쪽 사진)과 공범 강훈.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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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계속되는 '악의 역사'


빨간 마후라 사건 때만 해도 영상 유포는 '성범죄'보다는 '일탈행위'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피해자가 겪는 고통이 알려지면서 심각한 성범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후 카메라 등으로 다른 사람의 신체를 불법 촬영하거나 촬영물을 배포, 판매한 사람 등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 현재는 성폭력범죄 처벌 특례법에 따라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처벌 수위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데도 디지털 성범죄가 줄지 않는 이유는 뭘까. 반(反)성착취 활동가 원은지 ‘추적단 불꽃’ 대표는 그 이유를 "불법 영상물 등을 찾는 수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디지털 성범죄 피라미드의 가장 위에는 성착취물을 제작하는 자가 있지만 결국 이 생태계를 밑에서 떠받치고 있는 이들은 불법 영상 등을 시청하는 사람들이죠. 이 수요가 사라지지 않는 한 또 다른 디지털 성범죄가 생길 겁니다."


■한국일보·코리아타임스 특별취재팀
팀장 : 유대근 기자(엑설런스랩)
취재 : 진달래·원다라 기자(엑설런스랩), 김태연 기자(사회부), 정다현 기자(코리아타임스), 이지수 인턴기자
사진 : 하상윤 기자, 류기찬 인턴기자
영상 : 박고은·이수연·김용식·박채원 PD, 김태린 작가, 김가현 인턴PD, 전세희 모션그래퍼

※<제보받습니다> 한국일보는 딥페이크 범죄 피해를 당한 아동∙청소년과 그 가족, 주변분들의 제보를 받습니다. 딥페이크 피해와 그 이후 수사, 재판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 학교 안팎에서 겪은 부조리, 2차 가해 등이 있으시다면 제보(dynamic@hankookilbo.com) 부탁드립니다. 제보한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목차별로 읽어보세요

  1. ① 누구도 믿을 수 없다
    1. • 세상에서 가장 안전해 보였던 '오빠', 그 놈이 범인이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11918530005454)
    2. • 나체 조작 사진 가해자와 '한 교실'… 할아버지는 엉엉 울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11017560004348)
    3. • 내 딥페이크 사진 뿌린 '그놈', 학교는 '피해자'라 불렀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11514320000841)
  2. ② 가해자의 탄생
    1. • 날 '이모'라 부르던 살가운 아이가 내 딸 딥페이크를 만들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12515400005496)
    2. • "여기 텔레그램이잖아" 낄낄대던 '지인능욕' 가해자들, 디지털 지문 남았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12511360005222)
  3. ③ 아이들을 몰랐다
    1. • 디시인사이드에 올라온 의문의 사진, 제자들이 다 용의자로 보였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12614130004327)
    2. • "인스타? 연예인들이 하는 것 아냐?" 부모는 몰랐던 '사이버 놀이터'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20109240001065)
    3. • 빨간 마후라부터 딥페이크까지…'보는 자' 사라져야 끝난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20116010005885)
  4. ④ 어떻게 싸워야 하나
    1. • "동정 말고 같이 싸워줄 어른이 필요했다" 투사가 된 10대 딥페이크 피해자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20209290003700)
    2. • ‘안 돼’ ‘하지 마’ 외치기만 하면 딥페이크 범죄는 멈추지 않는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20217240005692)


원다라 기자 d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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