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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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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겔싱어도 못 살린 인텔… 흔들리는 삼성 반도체엔 ‘타산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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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을 3년 9개월간 이끌어 온 팻 겔싱어(63) 최고경영자(CEO)가 전례 없는 경영 위기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갑작스러운 퇴임 배경으로 이사회와의 갈등이 꼽히는 가운데 인텔 이사회는 새 CEO를 찾아 투자자들의 신뢰를 되찾겠다고 약속했다. 인텔 주가는 올해 들어 50% 가까이 하락한 상황이다.

겔싱어 CEO의 퇴임은 삼성전자 반도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텔과 삼성전자는 소위 반도체 업계 공룡으로 칭하는 종합반도체기업(IDM)이다. 두 기업 모두 인공지능(AI) 트렌드에 뒤처졌다가 부활을 외치며 대대적인 쇄신을 추구해 왔다. 위기 상황에 소방수로 ‘올드보이’ 겔싱어 CEO가 복귀한 것처럼 삼성 반도체도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을 수장에 앉혔다. 두 사람의 나이도 각각 1961년생(겔싱어), 1960년생(전영현 부회장)으로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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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 겔싱어 전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6월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텍스 행사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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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겔싱어 CEO, 이사회와 갈등으로 사실상 ‘경질’

겔싱어 CEO는 3일(현지시각) 입장문을 통해 “그동안 인텔을 이끌어 영광이었다”며 “직장 생활의 대부분을 인텔에서 보냈기에 오늘은 복잡한 마음이지만, 동료들과 함께 성취한 모든 것을 자랑스럽게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인텔이 피인수 대상으로 거론되는 데 대해 반박하며 회사를 하나로 유지하겠다는 결심을 보여왔으나, 결국 재건의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됐다.

겔싱어 CEO의 예상치 못한 퇴임을 두고 업계 안팎에선 인텔 이사회와의 해묵은 갈등이 터져 나온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주 이사회와 겔싱어가 만난 자리에서 조직 재정비에 대한 견해 차이가 극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겔싱어가 추진하고 있는 변화가 지지부진하다고 본 이사회는 겔싱어에게 ‘은퇴 혹은 해임’ 카드를 내밀었고, 겔싱어는 즉각 은퇴하는 안을 택했다. 인텔 이사회는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데이비드 진스너와 최고제품책임자(CPO)인 미셸 존스턴 홀타우스를 공동 임시 CEO로 임명하고 새로운 CEO를 찾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인텔이 AI 열풍으로 재편되는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자 회사 이사회의 핵심 멤버들은 겔싱어 CEO의 경영 방침에 이견을 보여왔다. 지난 8월엔 인텔 이사회 핵심 멤버이자 반도체 업계 베테랑인 립부 탄이 겔싱어와의 견해차로 이사회에서 사임했다. 이날 이사회 회장인 프랭크 이어리는 “회사에 남은 과제가 많다는 걸 알고 있다”며 “이사회로서 우리는 무엇보다 양질의 제품을 모든 사업의 중심에 둬야 한다는 걸 인지하고 있으며, 이 같은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 부활 위한 파격적 쇄신 선택한 인텔

겔싱어 CEO는 한때 인텔의 구세주로 활약했다. 1979년 18세 청년으로 인텔에 입사한 그는 불과 서른 살에 인텔 역대 최연소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그로부터 10년 후 최고기술책임자(CTO)로서 반도체 트랜지스터 수가 2년마다 두 배가 된다는 ‘무어의 법칙’을 지키며 PC 붐을 이끌었다. 30년간 인텔에 머물며 PC에 널리 사용되던 x86 아키텍처 기반의 핵심 칩을 잇달아 설계해 회사의 수익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2009년 VM웨어의 CEO로 적을 옮긴 겔싱어는 12년 만인 2021년 인텔 CEO로 복귀했다.

IDM의 대표적인 취약점으로 꼽히는 빠른 방향 전환과 외부 기업과의 파트너십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IDM 2.0을 외친 후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오며 초기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IDM은 설계, 제조, 후공정, 마케팅 등 모든 반도체 프로세스를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거대 기업을 말한다. 그는 메테오레이크 시리즈를 내놓으며 인텔 역사상 처음으로 주력 CPU 제품을 TSMC에 위탁 생산하기도 했으며, 설계와 파운드리를 분리해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데 주력했다. 미세공정에서도 2021년 7월 공개한 ‘4년 동안 5개 공정 실현’(5N4Y) 로드맵 아래 인텔 7, 인텔 4, 인텔 3, 인텔 20A, 인텔 18A 등 공정을 개발했다.

겔싱어는 인텔을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대만 TSMC에 비견할 만한 회사로 만들겠다며 2021년부터 대규모 투자를 이어왔다. 인텔은 미국 오하이오에 18A(1.8나노급) 파운드리 공장을 짓기 위해 200억달러(약 27조원)를 투자하기로 결정하는 등 파운드리 사업에 지난 2년간 250억달러(약 33조원)를 쏟아부었다. 그러나 인텔 파운드리 사업은 작년 70억달러(약 9조8500억원) 이상의 적자를 낸 데 이어 올해 상반기까지도 53억달러(약 7조5000억원) 손실을 보고 있다.

◇ 베테랑 소방수의 씁쓸한 퇴장, 삼성에 던지는 메시지

겔싱어 CEO는 퇴임을 발표하면서 “현재의 시장 역학 관계에서 인텔을 차별화하기 위해 힘들지만 꼭 필요한 결정을 내렸던 지난 한 해는 우리 모두에게 도전적인 한 해였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한 시장의 역학 관계는 AI 광풍과 함께 급변한 반도체 시장 생태계가 IDM인 인텔의 입지가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기도 하다.

한번 넘어간 흐름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AI 칩 분야에서는 엔비디아 대비 가성비를 내세운 가우디로 분위기 반전을 모색했으나 출시 2년 동안 시장에서 존재감이 미미했고, 인텔의 텃밭이자 영업이익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일반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에서는 AMD의 기세에 점점 밀리면서 실적마저 악화했다.

지난달 18일 시장조사업체 머큐리 리서치에 따르면 올 3분기 말 AMD는 일반 서버용 CPU 시장에서 매출 기준 약 33%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불과 7년 전까지만 해도 AMD의 서버용 CPU 시장 점유율은 사실상 0%대였다. 지난 2017년 이후 인텔의 미세공정 기술력이 정체되기 시작했고, AMD의 칩을 위탁생산하는 TSMC의 제조 기술력이 앞서나가면서 철옹성 같았던 인텔의 점유율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이는 겔싱어 CEO의 사내 입지를 위태롭게 만드는 데 결정적 요인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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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경기 용인 삼성전자 기흥캠퍼스에서 열린 차세대 반도체 R&D(연구개발) 단지 설비 반입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삼성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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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역시 대동소이한 흐름이다. 삼성 반도체의 본진이나 다름없는 메모리 사업부, 그 중에서도 영업이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D램과 고부가제품군인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뒤처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수년간 수십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단행한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매 분기마다 조 단위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

반면 전 부회장과 겔싱어의 위기 해법은 다소 차이가 있다. 겔싱어가 기존 주력 사업인 서버용 CPU 사업 안정화보다는 AI, 파운드리 분야에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하면서 엔비디아, TSMC와의 ‘군비 경쟁’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은 것과 달리 전 부회장은 파운드리 투자를 대폭 줄이는 한편 흔들리는 메모리 사업을 부문장 직할 체제로 전환, 메모리 분야에서의 경쟁력 회복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있다. 일단 ‘급한 불’을 끄고 나서 재정비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삼성과 인텔 모두 IDM이지만 주력 분야가 다르고 기술력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서로 해법이 다를 수 있지만, 베테랑 경영자를 다시 데려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통적인 전략 측면에서는 삼성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AI와 함께 반도체 시장의 달라진 ‘게임의 법칙’을 이해하고 유연한 전략을 펼치기 위해서는 회사의 의사결정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고 과거의 방식이 통하지 않는 분야에서는 과감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민규 기자(durchman@chosunbiz.com);최지희 기자(h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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