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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 (월)

매주 4000명 넘던 ‘텍사스 이민 루트’ 이미 봉쇄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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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멕시코 국경 ‘이글패스’ 르포

조선일보

지난달 26일 미국 텍사스주 이글 패스 '론스타 작전' 지역. 주 방위군이 보트를 타고 리오그란데강 유역에 정찰을 나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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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오후 4시 미국 텍사스주(州) 샌안토니오에서 차로 2시간 30분 떨어진 국경의 소도시 이글패스(Eagle Pass). 이 도시와 멕시코를 가르는 리오그란데강 위로 총을 찬 주(州) 방위군이 국방색 보트를 타고 굉음을 내며 달렸다. 국경수비대 소속 에릭 앨런 병장은 “이민자들이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기 위해 노리는 경로가 바로 저 강”이라면서 “매일 여러 차례 강을 오가며 불법 월경(越境)을 차단하고 있다”고 했다.

독수리가 많이 지나다녀 이글패스란 이름이 붙은 이곳은 텍사스 엘패소·브라운즈빌과 함께 중남미의 불법 이주자들이 미국을 향할 때 처음 진입하는 대표적인 도시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매주 3000~4000명이 이 지역을 통해 국경을 불법적으로 통과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화당 경선이 시작된 직후인 지난 2월 이글패스를 찾아 “지난 3년간 불법 이주자들이 몰려오고 있다”며 재선되면 불법 이주자와 전쟁을 벌이겠다고 선포했었다. 그로부터 9개월 후, 실제로 대통령에 재선돼 “불법 이주자들을 모두 몰아내기 위해 군까지 동원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민주당인 조 바이든 정부 때 통제가 느슨해지며 급격하게 불어난 불법 이주자 문제는 지난 대선 때 최대 쟁점 중 하나였다. ‘강경 대응’을 천명한 트럼프의 지지율을 끌어올린 요인이었다는 평가가 대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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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국


미국의 남쪽 국경에는 선전포고가 내려진 지역처럼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공화당 주지사(그레그 애벗)가 재임 중인 텍사스는 일찌감치 바이든 정부의 친(親)이주자 정책에 반감을 드러내 왔다. 그러면서 주 정부 차원에서 110억달러(약 15조3000억원)의 예산과 방위군을 투입해 리오그란데강을 중심으로 철책을 설치하고 불법 이주자를 체포하는 이른바 ‘론스타(텍사스주의 별명) 작전’을 펼쳐왔다.

텍사스와 멕시코 접경 지역에는 트럼프 ‘1기’ 때 세운 국경 통제용 장벽이 아직도 있었다. 높이 5m가 넘는 강철 기둥이 어린아이도 통과하기 어려울 정도로 촘촘히 설치돼 있었다. 리오그란데강 유역에는 면도날처럼 날카로워 ‘레이저(razor)’라는 별명이 붙은 은색 철책과 겹겹이 쌓은 컨테이너들이 보였다. 트럼프는 2기가 시작되자마자 불법 이주자들을 쫓아내고, 장벽 건설을 재개해 국경을 다시 걸어 잠그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이에 따라 미국행(行)을 꿈꾸는 많은 중남미인은 내년 1월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 국경을 넘어야 한다며 목숨을 걸고 국경으로 향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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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장벽'서 무장경계 - 지난달 26일 미국 텍사스주 이글패스의 미국과 멕시코 국경선에서 주 방위군 군인이 멕시코 쪽을 향해 총을 겨누며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위 사진). 이글패스는 멕시코에서 넘어오는 불법 이주민들이 진입로로 선택하는 대표적인 도시다. 아래 사진은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흐르는 리오그란데 강변을 따라 세워진 철책. 트럼프 1기 정부 때 설치돼 '트럼프 장벽'이라고 불리는 촘촘한 철책 뒤로, 감시탑 역할을 하는 대형 컨테이너가 곳곳에 세워져 있다. /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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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당선인이 2기 행정부 ‘국경 차르(국경문제 총괄 책임자)’로 지명한 톰 호먼 전 이민세관단속국 국장 직무대행과 애벗 주지사는 지난달 말 이글패스를 찾았다. 이들은 “우리는 트럼프가 취임하는 내년 1월까지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국경 통제) 계획을 실행에 옮겨 이 나라를 역대 최고 수준으로 보호하겠다”라면서 경계 태세를 이미 강화하고 나섰다.

“정부 허락 없이는 아무도 이 안으로 한 발자국도 들여놓을 수 없습니다.” 이글패스 내 ‘셸비 파크’ 입구엔 장총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서 있던 주 방위군 바스네스 병장은 기자를 보며 싸늘히 말했다. ‘셸비 파크’는 텍사스주가 ‘론스타 작전’을 벌이는 지역 내에 있다. 한때는 공원이었지만 주 방위군이 불법 이주자 유입을 막기 위한 장벽과 철조망을 겹겹으로 설치하며 사실상 점령 중이다.

불법 이주자들이 건너오는 리오그란데강은 깊은 곳의 경우 수심이 6m가 넘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지난 1월 일가족 세 명이 익사하는 등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강을 건너다 목숨을 잃었다. 이 지역 역사 박물관인 ‘포트 던컨 박물관’ 책임자 제리 퀴로즈는 “이민자들이 강을 건너다 악어에게 먹히기도 했다”고 말했다. 수심이 낮을 곳을 선택한다고 해도 텍사스주가 강 중간에 설치한 ‘수중 장벽’을 통과해야 한다. 텍사스는 성인 남성의 양팔 넓이보다 큰 주황색 부표를 일렬로 묶은 뒤 강에 띄워 헤엄쳐오는 이들을 막고 있다. 통제 구역 한쪽엔 추가로 설치할 예정인 부표가 보였다. 강을 건넌다 해도 국경수비대에 잡히면 수용소에 보내져 ‘운명’을 기다려야 한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달만 해도 350여 명이 인근 마을에 있는 수용소로 보내졌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이주자 때문에 우리 정치 성향까지 바뀌었다”고 했다. 이글패스가 있는 매버릭 카운티는 2020년 대선 때 54%가 바이든을 찍었지만 올해는 트럼프가 59%를 득표하며 압승했다. 지역 신문사 이글패스 비즈니스 저널은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과반 득표한 것은 50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문구점을 운영하는 이글패스 주민 세냐 페레스는 “지난해 말 집 뒷마당에 불법 이주자들이 여러 번 숨어들어 너무 놀라 경찰을 불러야 했다”면서 “젖은 신발을 신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좀비’ 같은 모습의 사람들도 종종 봤다”고 했다. 그는 “난 2020년 대선 때 바이든을 찍은 사람”이라면서 “하지만 눈앞에 벌어지는 혼돈을 보면서 트럼프로 돌아서게 됐다”고 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이 불법 이주자로 인해 시끄러워지는 상황 자체에 염증을 느끼는 이들도 있었다. 퀴로즈는 “불법 이주자들이 인근 목장을 지나며 절도를 하다가 사유지를 침범했다는 이유로 목장 주인에게 총을 맞기도 했다”면서 “조용한 이 지역이 시끄러워지는 것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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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국


불법 이주자가 불어나 합법적 방문까지 막힌다는 목소리도 들렸다. 합법적으로 국경을 넘어온 이들은 이 지역에서 쇼핑을 하고 돌아가는 등 지역경제에 도움이 됐는데, 불법 이주자 때문에 국경 통제가 더욱 강화되면 합법적 방문자까지 입국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된다는 것이다.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태어나 20년째 이글패스에 살고 있다는 후안 이암은 “불법 이주자 때문에 이 지역의 이른바 ‘국경 경제’가 죽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 취임 전 무리하게라도 국경을 넘어 이주의 ‘막차’를 노려보려는 중남미인들은 최근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멕시코 치아파스의 타파출라에서 1500명에 달하는 이주 희망자들이 미 국경으로 출발하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기도 했는데, 이들 중 몇이나 실제 미국에 안착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현지에서 만난 미 매체 뉴스네이션의 국경 전문기자 조지 벤추라는 “얼마 전 멕시코에 취재를 갔다가 대규모로 이동하는 무리를 봤다. 그들은 트럼프의 당선으로 절망했다면서 ‘시간이 촉박하다’고 입을 모았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29일 “텍사스는 새 정부의 대규모 추방 캠페인을 기다리며 대대적인 채비를 하고 있다. (텍사스는) 이민을 단속하는 과정에 ‘모범생’이 될 준비를 마쳤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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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패스(텍사스)=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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