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장 |
미국 국립 광학·적외선 연구소의 키트피크 천문대. 동틀 무렵에 듣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 밤을 지새운 영혼을 흔들어 깨운다. 관악과 현악, 쳄발로가 서로 대화하듯 흐르는 선율은 키트피크의 새벽하늘을 울린다. 퀸랜 산맥의 구불구불한 능선을 따라 30여 개의 망원경 돔이 열 지어 선 이곳은 밤하늘이 건조하고 맑아, 1년에 300여 일을 관측에 쓴다.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의 근적외선 카메라가 촬영한 말머리 성운(Horsehead Nebula)의 갈기 부분. 사진 NAS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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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천문대, 대기 영향받지만
우주망원경은 선명하게 관측
적외선 관측, 성간먼지도 극복
외계행성 속 대기 분석도 가능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작은 별 변주곡’은 프랑스 민요를 주제로 썼다. 그가 고인이 된 뒤 ‘반짝반짝’으로 시작하는 가사가 붙었다. 이 작품의 원제는 ‘아! 말씀드릴게요, 어머니’ 주제에 의한 열두 개의 변주곡이다. 별이 반짝이는 것은 지구 대기 탓이다. 별빛은 공기층을 지나가면서 꺾이기도, 흡수되기도 해 바람이 심하게 부는 밤에는 춤을 춘다. 대류 때문이다. 비가 퍼붓는 날 차창 밖으로 차선은커녕 앞차도 분간하기 힘든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성층권에는 거의 바람이 불지 않아 기내에서 내다보는 창밖의 별들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어쨌든 별이 춤추는 밤에는 데이터를 버릴 확률이 높다. 키트피크에서도 그렇다.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적외선
뉴턴은 케임브리지 대학 연구실의 덧문을 닫고, 덧문에 약 6mm 크기의 둥근 구멍을 낸 뒤, 그 구멍 근처에 프리즘을 배치했다. 이를 통해 빛이 반대편 벽에 스펙트럼 형태로 투사되도록 했고, 그 현상을 관찰했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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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뉴턴은 빛이 무지개색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1666년). 프리즘을 통과한 빨간색은 더 작게, 보라색은 더 크게 굴절된다. 컴퓨터 모니터 화면은 빛의 3원색, 즉 빨강(R)·초록(G)·파란색(B)을 조합해 표현한다. R·G·B를 모두 합하면 백광, 즉 햇빛이 된다. 컴퓨터 속 소프트웨어 그림판에서는 다양한 색을 넣고 뺄 수 있다. RGB에 기반한 256가지 색을 0부터 255단계로 나누고 섞어서 256 세제곱 개의 총천연색을 만든다. 영국 천문학자인 윌리엄 허셜의 추측(색깔마다 온도가 다르지 않을까)은 옳았다. 그는 햇빛 스펙트럼의 온도를 쟀는데, 빨간색 바깥쪽이 제일 뜨거웠다(1800년). 적외선이다.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TV 리모컨은 적외선 신호를 발신한다. 리모컨 단추를 누르고 스마트폰 화면을 보면 940㎚의 적외선이 반짝인다. 적외선을 먹이 사냥에 쓰는 벌레도 있다. 특히 모기는 사람 몸이 내뿜는 열선으로 먹잇감을 찾아내는 데 선수다.
모기의 제물이 된 인간은 열화상 카메라(TIC)를 발명했다. 시야를 차단하는 매캐한 연기가 적외선에서는 투명하게 나타난다. 덕분에 TIC를 들고 화재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은 자욱한 연기 속에 실종된 채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다. 산불 현장도 그렇다. 사람의 눈에는 낮게 깔린 구름밖에 보이지 않지만, 적외선 위성 영상에서는 그 구름이 모두 걷혀 어디가 제일 뜨거운지, 어디로 산불이 향하는지 알 수 있다. 게다가 810㎚ 파장의 근적외선은 사람의 살갗과 뼈, 뇌 조직을 투과해 자율신경 이상과 우울증 진단에 쓴다.
지구에서 구름과 연기를 뚫는 적외선은 당연히 성간(星間) 먼지도 투과한다. 지난달 25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발표한 솜브레로 은하의 적외선 영상을 보면서 필자는 두 눈을 의심했다.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으로 찍은 사진은 충격 그 자체였다.
솜브레로는 멕시코 남자들이 즐겨 쓰는 챙이 넓은 모자인데, 가시광에서 그렇게 생긴 이 은하를 보면 일부러 모자 두 개를 위아래로 맞붙여놓은 것처럼 둥글납작하다. 두 개의 챙이 맞닿은 지역은, 짙은 성간 먼지의 띠가 이 은하 주변을 감싸 까맣게 보인다. 하지만 JWST가 찍은 적외선 영상은 딴판이다. 모자의 ‘산’은 온데간데없고 그 ‘챙’만 휘영청 밝다. 그 챙은 가려서 안 보이던 은하 저편까지 원형 형광등 형태로 눈이 부시다. 먼지는 뜨거운 별에서 나오는 가시광선과 자외선을 흡수해 다시 적외선을 내뿜는다.
적외선 망원경으로 본 우주 비밀
강력한 가스를 내뿜는 블랙홀 일러스트. NASA는 찬드라 X-선 우주망원경(CXO)과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의 적외선 자료를 활용해 빅뱅 이후 약 15억 년이 지난 시점에서 초거대 블랙홀을 발견했다. 이 블랙홀은 이론적 한계치를 40배 이상 초과하는 속도로 물질을 흡수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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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NASA는 우주의 나이가 15억 년이었을 당시의 초거대 블랙홀을 찾았다고 발표했다. 이놈은 태양 질량의 700만 배로, 이론이 예측하는 한계보다 40배 더 빠른 속도로 주변 물질을 집어삼켰다. 그 단서는 NASA 찬드라 X-선 우주망원경(CXO)과 JWST의 적외선 자료에서 찾았다.
이 블랙홀이 어떻게 그런 무지막지한 속도로 성장할 수 있을까. 남은 숙제다. 미국 국립광학적외선연구소의 서혜원 박사가 이 연구를 주도했으며, 연세대의 이석영 교수는 이론 해석을 맡았다. JWST는 외계행성 대기에서 메탄의 흔적을 찾았으며 갓 태어난 어린 별과 중성자별, 빅뱅 직후 우주가 3억 년밖에 안 된 은하도 처음 영상에 담았다. 구름과 연기, 피부까지 관통하는 적외선 대부분은 지구 대기의 수증기와 이산화탄소에 차단된다. NASA와 유럽우주국이 JWST를 쏜 이유다.
영국 천문학자 허셜(1738~1822)은 800개 넘는 쌍성과 2500개 넘는 성운 목록을 만들었고, 천왕성을 발견해 조지 3세에게 헌정한 뒤 궁정 천문학자와 왕립천문학회 초대 회장이 된다. 그는 원래 궁정 음악가로, 바이올린과 오보에·쳄발로·오르간을 연주했으며, 관현악곡 24곡과 협주곡 12곡, 수백 곡의 소품과 교회음악을 남기기도 했다. 예전에 NASA 고다드우주비행센터의 한 건물의 복도에는 누군가 장난삼아 붙인 달 천문대 그림이 있었다. 적외선-가시광선-자외선 겸용 망원경이었다. 망원경 지지대에는 맥도널드 햄버거, 망원경에는 애플과 휼렛 패커드(HP) 로고가 달려있었다. 허셜 시대에는 왕이 과학자를 후원했다. 그즈음 독립한 미국은 독지가들이 건설한 나라라는 말이 있다. 신시내티와 릭·여키스 천문대를 그렇게 지었다. 그들이 성취한 과학기술 발전의 한 축은 기부문화였다.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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