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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이슈 미술의 세계

“내 그림이 물감 값보다 가치 높아질 것”…작품 한 점에 천억 넘는다는 이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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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N·HMG 공동주최 회고전
‘불멸의 화가’ 반 고흐展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전시

12년 만에 고흐 원화 韓 상륙
‘자화상’ ‘착한 사마리아인’ 등
크뢸러뮐러미술관 소장품 76점

예술로 불태운 짧은 생애 조명
전시작 총 평가액 1조원 규모


매일경제

자화상(1887). 서울센터뮤지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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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내 그림이 물감 값보다 더 많은 가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1888년 10월 24일)

짧았던 생의 마지막을 불꽃같은 예술로 불태운 전설적인 화가가 있다. 19세기 후기 인상주의 작가이자 표현주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다. 생전 팔린 그림은 단 한 점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작품 한 점당 수백억원에서 1000억원이 훌쩍 넘는다. 미술계의 외면과 지독한 생활고, 외로움도 언젠가는 자신의 작품이 세상에서 빛을 발하게 되리란 믿음을 꺾진 못했다. 그것은 삶에 대한 따뜻한 위로이자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었다.

반 고흐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회고전 ‘불멸의 화가 반 고흐, THE GREAT PASSION’가 내년 3월 16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MBN과 HMG가 공동 주최하고 서울센터뮤지엄이 주관하는 이번 전시는 네덜란드 국립 크뢸러 뮐러 미술관과의 협업으로 이 미술관이 소장한 유화 39점을 비롯한 원화 작품 총 76점을 선보인다. 전시 작품의 총 평가액만 1조원이 넘는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은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과 함께 세계에서 고흐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양대 기관이다. 고흐 작품만 약 290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 벤노 템펠 크뢸러 뮐러 미술관 관장은 “반 고흐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외로움, 위로, 우정, 절망과 같은 보편적 주제를 표현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을 위로하고 인생의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며 “예술이 치유의 역할을 하며 사람들을 위로하고 삶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의 작품은 증명해준다”고 밝혔다.

전시는 고흐가 화가로 살았던 삶의 마지막 10년을 연대기 순으로 펼친다.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네덜란드 시기’(1881~1885)를 시작으로 인상파의 강렬한 색채로부터 영감을 받았던 ‘파리 시기’(1886~1888), 남프랑스의 작은 도시 아를에 머물며 인물화·풍경화의 색채 실험을 거듭하던 ‘아를 시기’(1888~1889), 자연의 위대함을 경험하며 정신병원 생활을 했던 ‘생레미 시기’(1889~1890), 고향에 대한 향수에 젖은 채 생을 마감한 ‘오베르 쉬르 우아즈 시기’(1890)까지 총 5개 테마로 구성됐다. 그는 정신질환을 앓고 37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10년 동안 약 2100점에 달하는 그림을 그렸다.

고흐는 1880년 봄, 7년 간의 화상 생활과 4년 간의 성직자 생활 끝에 마땅히 할 일이 없어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동생 테오의 권유였다. 제대로 미술 교육을 받은 적 없던 그는 당시 친척인 네덜란드 화가 안톤 마우베로부터 받은 기초 수업을 토대로 네덜란드 시기 작업을 발전시켜나갔다. 주로 농민들의 애달픈 삶을 담았는데 동명의 유화 작품으로 유명한 종이 드로잉 ‘감자 먹는 사람들’(1885)이 대표적이다. 당시의 다듬지 않은 선은 말년의 유화 작품에서 나타나는 특유의 거친 붓 터치와 윤곽선으로 이어진다.

1884~1885년 사이 제작된 어두운 분위기의 유화 작품 ‘여인의 두상’ ‘파이프를 문 남자의 두상’ 등은 고흐가 ‘감자 먹는 사람들’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등장 인물을 개별 인물화로 그린 것이다. 서순주 서울센터뮤지엄 디렉터는 “고흐는 평생 모델을 구할 만한 경제력이 없어 자화상을 많이 그렸던 작가”라며 “특정 이름이 없는 인물화들은 모두 상상 속 인물을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1886년 파리에서 2년 간 테오와 함께 살았던 파리 시기 고흐는 색채와 기법 등 자신의 화풍을 정립했다. 당시 ‘빛의 회화’로 파리 화단을 주름 잡았던 인상파의 영향으로 색채 효과로서 빛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장 프랑수아 밀레, 외젠 들라크루아, 카미유 코로 등 다른 화가들의 기법과 색채를 연구했다. 전원적인 분위기의 풍경화인 ‘몽마르트 언덕’(1886)에서는 빛이 일렁이는 듯한 인상주의 표현기법이 나타난다. 캔버스에 물감을 두껍게 칠해 표면에 질감과 부피감을 강조하는 ‘임파스토 기법’도 이 시기에 터득했다.

그가 남긴 40여 점의 자화상 가운데 25점이 파리에서 제작됐는데, 이번 전시작 ‘자화상’(1887)은 점묘법을 사용하기 전 단계의 자화상으로, 차분하고 부드러운 색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환한 색감과 경쾌한 붓질이 밝은 느낌을 주지만 살짝 찡그린 눈에는 고독과 걱정, 우울감이 비친다. 실제로 야심 찬 파리행에도 고흐는 여전히 주목받지 못했다. 지나치게 앞서 있었던 그의 혁신적인 작품은 당대 유행하던 스타일과 너무 달라 수요가 적었고, 궁핍한 생활로 작품을 알릴 수 있는 기회도 거의 없었다. 게다가 정신적으로 늘 불안정하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미술계의 동료 예술가나 후원자들과 원만한 관계를 쌓지도 못했다.

파리에서 몇 번의 좌절을 겪은 뒤 프랑스 남부로 가야겠다는 열망을 자주 드러냈던 고흐는 1888년 2월 아를로 떠났다. 당시 그가 목표했던 것은 독립적인 화가 공동체였다. 이 시기 고흐는 친구 폴 고갱과 함께 생활하면서 엄청난 양의 작품을 만들어냈지만, 두 달 뒤 그를 떠나려는 고갱에 대한 집착 때문에 새롭게 꿈꾼 이상도 자신의 귀를 자르는 비극으로 끝났다. 아를에서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그는 187점의 유화를 남겼고, 그의 대표 연작 중 하나인 ‘해바라기’ 7점도 이 시기에 완성했다. 이번 전시에 ‘해바라기’는 출품되지 않았지만 이 시기를 전후해 그린 꽃과 정물화를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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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는 사람 (1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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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자신이 좋아하는 거장들의 작품을 모방하면서도 자기만의 표현기법으로 재해석한 작품도 눈길을 끈다. 동명의 1850년 밀레 작품을 변형해 그린 ‘씨 뿌리는 사람’(1889)은 그가 밀레의 원화가 아닌 복제본을 보고 그린 작품으로 아를 시기에 제작됐다. 또 다른 전시작 ‘착한 사마리아인’(1890)은 프랑스 낭만주의 회화의 대가인 들라크루아의 작품을 모사한 희귀작이다. 그는 구불거리는 선과 짧은 붓질로 인물에 양감을 넣고 풍경에 깊이를 주고자 했고, 덕분에 원작보다 장면의 극적인 효과가 강화됐다. 이 작품은 고흐가 생레미 지역의 정신병원에서 사투를 벌이던 생레미 시기에 그린 것으로, 고흐가 생전에 남긴 880여 점의 유화 가운데 최고가 작품으로 평가된다.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머무는 동안 그는 여섯 번의 발작을 경험했지만 대자연의 경이로움에 큰 영감을 받은 시기로 평온한 분위기의 풍경화도 많이 그렸다. 나뭇가지들의 불규칙한 형태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정신병원 정원의 소나무’(1889)와 ‘정신병원 정원의 길’(1889) 등이다. 정신병원 남쪽의 산수 풍경을 담은 ‘협곡(레 페이룰레)’(1889)은 동양의 산수화를 연상시킨다.

이후 1890년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길을 나선 고흐는 파리에서 북쪽으로 50㎞ 떨어진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도착한 뒤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마지막 70일 간 머물며 마지막 작품을 남겼다. 그의 유일한 에칭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 나온 ‘가셰 박사의 초상(파이프를 든 남자)’는 고흐의 생애 마지막을 지켜본 주치의이자 친구였던 폴 페르디난드 가셰를 모델로 그린 작품이다. 고흐 생애의 마지막 달인 1890년 6월 완성됐다.

비운의 예술가였던 고흐는 사후 10년이 지난 1901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전시를 계기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서양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하나로 남았다. 고흐의 또 다른 ‘가셰 박사의 초상’(1890)은 유화 작품으로, 100년 뒤인 1990년 영국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 나와 그 당시 경매 사상 최고가인 8250만달러(오늘날 가치로는 1억9200만달러로 약 2682억원)에 낙찰돼 큰 화제를 모았다. 현재도 고흐 작품은 근현대 미술품 가운데 최고가 작품으로 꼽힌다. 작품이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으면서 그의 믿음이 현실이 된 셈이다.

국내에서 고흐의 원화를 소개하는 전시는 2007년 서울시립미술관, 2012년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 이후 12년 만이다. 이번 전시까지 국내에서 열린 세 차례의 반 고흐 회고전 기획 총괄을 맡은 서 디렉터는 “크뢸러 뮐러 미술관이 소장한 반 고흐 작품들은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 소장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에 덜 알려진 희귀작들이 많다. 고흐의 작품 세계를 새롭게 조명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고흐 작품은 100년을 훌쩍 넘긴 작품들이기 때문에 어쩌면 한국에서는 이번이 반 고흐의 마지막 대규모 회고전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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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낀 하늘 아래 밀더미 (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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