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다마 요시오(兒玉譽士夫)는 휘쿠사의 대명사 격인 인물이다. 보수 장기 집권을 가능케 한 소위 ‘55년 체제’ 성립 과정에 그는 음지의 대부(代父)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가 행사한 영향력의 원천은 전쟁 통에 손에 넣은 막대한 부였다. 상하이에 근거를 두고 텅스텐 등 항공기 제작용 전략물자를 해군에 조달하는 에이전트로 활동하던 그가 종전을 맞아 일본으로 밀반입한 현금과 귀금속의 규모가 현재 가치로 1조원이 넘는다는 설이 있다.
스가모 형무소에서 교분을 쌓은 정·관계 인맥과, 반공 우선 노선으로 수정한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고다마는 1950년대 이후 격동하는 일본 정치 재편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다. 요시다 시게루와 라이벌 관계에 있던 하토야마 이치로가 자유당과 민주당을 합쳐 자민당을 탄생시키고 초대 총재로 취임하는 일련의 과정에 고다마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분열된 보수 세력 규합을 명분으로 삼은 그의 정치 베팅이 이후 50년간 일본의 정치 지형을 결정한 셈이다.
좌파가 ‘안보 투쟁’ 일환으로 아이젠하워 대통령 방일에 맞춰 대규모 시위를 계획할 때 자민당 수뇌부의 의뢰를 받아 고다마가 동원한 반(反)시위대 인원이 10만명을 넘는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그의 존재감은 막강한 것이었다. 한국 정당사에는 정치 깡패가 횡행한 시절은 있었어도 고다마와 같은 거물 휘쿠사의 존재가 표면화된 적은 없는 듯하다. 다만 거물은커녕 선거판에 기생하는 여론조사 기술자의 입에 나라의 이목이 집중되고 정치판이 들썩이는 현실을 접하니 민주주의가 발전해서 그런 것인지 퇴보해서 그런 것인지 알쏭달쏭하고도 한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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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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