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정보가 널리 보급된 요즘은 민사와 형사 문제가 구분된다는 것이 상식이 된 것 같다. 그러나 반드시 형사사건에 연루되지 않더라도 감옥에 갇힐 수 있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바로 감치라는 것인데, 의무를 위반한 데 대한 제재로서 법원 명령에 따라 비록 짧은 기간이나마 감옥에 가두는 특이한 제도다.
아직 젊은 나이라서 벌어서 빚을 갚아 나가야 할 위의 의뢰인도 ‘채무자 감치’ 대상으로 3일의 감치 결정을 받은 상태였다. 현행법에 따르면 채권자는 돈을 갚지 않는 채무자로 하여금 재산 목록을 제출하라고 법원에 신청할 수 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재산 목록을 내지 않거나 법원이 정한 기일에 출석하지 않으면 법원은 채무자에게 20일 이내로 감치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 가뜩이나 힘든데 감옥에까지 가야 하는 채무자의 사정이 딱하다면 딱한 것이겠지만 법정 상한인 20일을 꽉 채워 감치를 명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 또 감치 결정이 나왔더라도 재산 목록을 내면 곧장 채무자를 석방한다. 재산 목록만 잘 적어 내면 감옥에 갈 일이 없기 때문에 성실한 채무자 입장에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제도이고, 의뢰인에게도 그렇게 설명하니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불만은 채권자 쪽에서 터져 나온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감치 집행 명령의 평균 집행 비율은 6.4%에 불과했다. 감치를 집행하라는 법원의 명령은 연 평균 3만4347건이나 접수되었는데 이 중 실제 집행되는 건수는 약 2150건에 불과했던 것이다. 채무자를 감옥에 가두라는 법원의 명령이 있었음에도, 실제로 잠깐이라도 감옥에 가는 것은 100건 중 예닐곱 건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법원의 감치 집행 명령은 경찰이 집행한다. 일선 경찰들은 가뜩이나 바쁜데 형사 문제도 아닌 민사 집행 업무를 대체 왜 경찰이 해야 하는지 불만을 토로한다. 경찰청은 경찰이 감치를 집행하는 것이 맞는지 연구 용역까지 발주한 적도 있다고 한다. 결정을 하는 법원과 집행을 하는 경찰이 동상이몽이면 제도가 빈틈없이 실행될 리 없으니, 법원이 감치를 결정해도 100건 중 93번은 ‘헛방’인 문제가 있어온 지 오래다.
감치 명령을 받은 의뢰인에게 재산 목록을 제출하라는 조언에 더해 ‘잡히면 감옥 가니 경찰 조심하라’ 이야기한 것은 이런 현실을 고려한 조언이다. 채무자 감치 외에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거나 세금을 상습적으로 체납한 사람에게도 감치를 명령할 수 있다. 이럴 때도 일정 기간 도망 다니면 집행할 수 없는 건 매한가지다. 말이 ‘도망’이지 잡으러 오는 이가 없으면 집행 기간이 넘어갈 때까지 평온한 일상을 보낼 수도 있다. 덕분에 편부·편모들이 모이는 온라인 양육비 카페에서는 감치 재판에 관한 질문이 하루에도 수 건씩 올라오고, 감치 결정이 났는데도 경찰이 비협조적이라는 성토도 드물지 않다.
우리는 약속과 의무의 이행이라는 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기대한다. 우리 사회가 원하는 것은 의무와 약속을 성실하게 지키는 사람들을 위한 제도와 그 실행 체계일 텐데,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행 제도가 젊은 채무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제시하고 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임현서 법무법인 초월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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