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충실의무, 회사서 주주로 확대 추진
"오너 이익을 위한 이사에 책임 물어야"
더불어민주당 대한민국 주식시장 활성화 TF가 지난 26일 주최한 '상법 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선 21년 전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 분쟁이 재조명됐다.
당시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추진된 유상증자가 소액주주의 권리를 침해했고, 21년 만에 다른 회사에서 비슷한 사례가 반복되고 있어서다.
최근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경영권 분쟁을 벌인 고려아연의 일반공모 유상증자 철회 사례다. 두 사건 모두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를 목표로 한 의사결정이 이뤄졌고 그 과정에선 소액주주들은 배제됐다는 분석이다.
회사의 의사결정에서 소액주주의 목소리가 배제되는 배경에 법 규정이 있다. 현행 상법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의무)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에서 정한 바에 따라 회사의 이익을 위하여 충실히 그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래픽=비즈워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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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엘리와 고려아연, 무엇이 같나
두 회사는 대규모 유상증자를 통한 대주주의 경영권 강화 결정 과정에서 이사회가 다수의 소액주주는 충분치 고려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현대엘리베이터와 고려아연 모두 이사회에서 유상증자 결정을 '단독'으로 진행했고, 소액주주의 의견은 고려되지 않았다. 현행 상법에서 이사의 충실의무가 '회사'를 위한 의무로만 규정돼 있어서다.
구조적으로 중대한 경영 사안인 유상증자 결정이 이사회 단독으로 이뤄지면서 소액주주들이 회사의 중대한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유태준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 연구소장은 "고려아연 유상증자는 현대엘리베이터 사례와 정확하게 똑같다"면서도 "현대엘리베이터보다 고려아연이 더 충격적인 것은 꽤 모범적인 기업이라고 주주들이 인식하고 있었던 고려아연조차도 본인들이 궁지에 몰리면 주주 가치를 극도로 훼손하는 의사결정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1법안소위원회에 심사 중인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책임을 '회사'에서 '주주 전체'로 확장하는 안건이 논의되고 있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대한민국 주식시장 활성화 TF 단장(의원)은 "(대주주의) 회사 이익 사유화로 다수의 주주가 손해를 봤으면, 그런 결정을 했던 이사회 이사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하는데 법원이 소극적"이라며 "(이사의) 충실 의무 조항 등을 개정함으로써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오 의원을 비롯해 김현정·이강일·김남근 의원 등은 삼성전자·고려아연·현대엘리베이터 뿐 아니라 SK·LG·두산·한화·HD현대 등도 대주주를 위한 쪼개기 상장과 오너 경영권 강화를 위한 물적분할, 유상증자 등의 문제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재계는 상법 개정안이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재계는 KT&G 사례를 언급하며 상법 개정 시 행동주의 펀드가 소액주주 연합을 형성해 경영권에 개입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KT&G 사례는 행동주의 펀드 칼 아이칸이 소액주주 연합을 형성해 경영권에 개입하려 했던 사례로, 경영권 방어와 소액주주 권익 보호 간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한국 기업 역사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 개입 사례는 단 한 건, KT&G 사건뿐"이라며 "당시 KT&G 이사회는 사내근로복지기금 등 다수의 친 KT&G 비영리법인들을 회사 최대주주로 부상시켜 경영진에 우호적인 의결권 행사를 계획했고, 이에 대응해 행동주의 펀드가 소액주주와 연합해 이를 저지하려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계는 배임죄에 대해서도 걱정한다. 상법 개정안이 도입될 경우 이사의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 범위가 모호해지고, 이사가 회사와 주주 간 이해 상충 상황에서 내리는 결정이 배임으로 간주될 위험이 커질 수 있어서다.
지나친 걱정이라는 주장도 있다. 김종보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변호사)은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다 업무상 의무를 위반해 손해를 야기한 때에 성립하는 범죄"라며 "단순히 주주의 가치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주가가 떨어졌다고 성립하는 범죄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상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는 대부분의 이사회는 의사결정에 있어 최선의 경영 판단을 하려 노력하나, 주주에게 심각한 결정을 내릴 때가 '종종'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2024년 11월 13일 고려아연 이사회가 2조5000억원 규모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철회한 직후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최지훈 기자 jhcho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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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기준에 미달
이남우 회장에 따르면 한국 기업 지배구조가 여전히 국제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 회장은 OECD 기업 지배구조 원칙 기준서를 인용해 "이사회는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를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한다라고 기재돼 있다"며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는 이러한 국제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상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OECD 기업 지배구조 원칙은 1999년 발표됐다.
김현정 민주당 의원은 "이사회의 기형적 구조를 개선해 경영권 승계의 수단이자 지배주주만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라며 "상법 개정은 재계의 우려처럼 소송이 남발되는 현상을 없애기 위해, 경영진이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 자체를 줄여 투명하고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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