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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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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같은 디지털책… 21세기 ‘왕의 서고’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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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실제 규모로 ‘외규장각 의궤실’ 만들어 공개

조선일보

외규장각 의궤 표지들이 서고에 꽂힌 형태로 재현된 도입부에서 한 관람객이 표지를 살펴보고 있다. 초록 비단으로 만든 ‘책의(冊衣)’를 디지털로 구현해 왕의 서고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 느낌으로 연출했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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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윤기 흘렀을 초록색 고급 비단 표지가 낡고 해져 있다. 귀퉁이엔 동그란 스티커가 붙었다. ‘N.F. CHINOIS’.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한동안 ‘중국 도서’로 분류했다는 뜻이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약탈해 간 뒤 지난 2011년 145년 만에 고국 땅에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儀軌)다.

왕의 서고가 활짝 열렸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실 2층에 외규장각 의궤만을 위한 전용 공간이 탄생했다. 의궤가 돌아온 뒤 두 차례의 특별전을 열고 7권의 학술 총서를 발간한 박물관은 “외규장각 의궤 속 다양한 내용을 관람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전용 공간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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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 의궤 표지들이 서고에 꽂힌 형태로 재현된 도입부. 낡고 해진 표지가 외규장각 의궤가 거친 고초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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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에 들어서면 다양한 의궤 표지들이 서고에 꽂힌 형태로 관람객을 맞는다. 초록 비단으로 만든 ‘책의(冊衣·책이 입는 옷)’를 디지털로 구현해 실제 왕의 서고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 느낌으로 연출했다. 전시를 담당한 김진실 학예연구사는 “외규장각 의궤 대부분은 1970년대 프랑스에서 표지를 현대 직물로 바꾸면서 의궤에서 분리됐다”며 “낡고 해진 표지와 그 위에 붙은 분류 번호 스티커는 외규장각 의궤가 거친 고초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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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당시의 책 표지가 그대로 남아 있는 어람용 의궤 ‘장렬왕후존숭도감의궤’.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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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인현왕후가례도감의궤(1681년) 반차도.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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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는 조선 왕실에서 중요 행사를 치른 뒤 관련된 의례 기록을 모아 만든 책이다. 특히 정조(재위 1776~1800)의 명을 받아 강화도 외규장각에 봉안한 의궤는 대부분 왕이 보는 어람(御覽)용 의궤였다. 아름다운 무늬로 짠 비단 표지, 황동으로 반짝이는 변철(邊鐵)과 장식, 매끄러운 종이,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다해 쓴 글씨와 손으로 그려 채색한 그림까지, 책이라는 형태가 가질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외규장각 의궤 297책 중 291책이 어람용 의궤이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본 의궤도 29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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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본 의궤와 어람용 의궤를 전시한 공간. 실제 외규장각 내부와 비슷한 규모로 만들고, 내부에 기둥과 문살을 설치해 ‘왕의 서고’를 재현했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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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에선 어람용 의궤와 유일본 의궤를 항상 관람할 수 있다. 실제 외규장각 내부와 비슷한 규모로 만들고, 내부에 기둥과 문살을 설치해 ‘왕의 서고’를 재현했다. 박물관은 한 번에 8책씩, 1년에 4번 교체해 연간 32책을 공개할 예정이다. 첫 전시에는 병자호란 이후 종묘의 신주를 새로 만들고 고친 일을 기록한 유일본 ‘종묘수리도감의궤’와 제작 당시의 책 표지가 그대로 남아 있는 어람용 ‘장렬왕후존숭도감의궤’ 등을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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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질감 그대로 넘길 수 있는 ‘디지털 책’. 프로젝터 영상이 책을 비춰 의궤의 원문과 번역본, 그림 등을 살펴볼 수 있게 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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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에 구현된 ‘디지털 책’이다. 디지털 방식으로 만든 책을 종이 질감 그대로 느끼면서 넘겨볼 수 있게 했다. 번역보기를 누르면 한글과 영문 번역본이 나오고, 영상과 그림도 넣어 어린이들도 흥미롭게 체험할 수 있다. 윤상덕 고고역사부장은 “의궤는 조선왕실 기록 문화의 꽃이지만 한자로 되어있어 접근하기가 어렵고, 진열장에 들어간 의궤는 넘겨볼 수 없어서 관람이 제한적이었다”며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의궤를 이해할 수 있는 전시 방법을 고심했다”고 했다. 외규장각 의궤에 그려진 물품 3800여개 도판을 활용해 구축한 도설 아카이브 영상도 놓치지 말아야 할 관람 포인트다.

공간 설계는 건축가 김현대 이화여대 교수가 맡았고, 국립중앙박물관의 후원 모임인 국립중앙박물관회와 젊은 경영인들의 모임인 국립중앙박물관회 젊은 친구들(YFM)의 지원으로 조성됐다. YFM 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병준 컴투스 의장은 “지난 2021년 YFM이 후원한 사유의 방과 함께 의궤 전용 전시실도 국립중앙박물관을 대표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외규장각 의궤

의궤는 조선시대에 왕실의 결혼, 장례, 각종 잔치 등을 글과 컬러 그림으로 생생하게 기록한 책이다. 외침에도 끄떡없이 왕실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1782년 정조의 명으로 강화도에 외규장각을 짓고 의궤를 보관했지만,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약탈해갔다. 2011년 145년 만에 고국에 돌아왔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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