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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홈런 7개서 24개로 늘어난 비결? 경기 전 20분 호흡이죠” 한유섬의 부활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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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찾는 사람들]

성적 부진 겪다 명상으로 이겨낸 프로야구 한유섬 SSG랜더스 선수

조선일보

SSG 랜더스 4번 타자 한유섬이 2024년 11월 15일 인천 SSG랜더스 필드에 앉아 명상을 하고 있다. 한유섬은 시즌중 경기전에 락커룸에서 편한 자세로 15분 정도 명상을 한다고 했다./전기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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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초’ 시속 150㎞ 강속구가 투수 손에서 포수에게 도달하는 데 대략 걸리는 시간이다. 이 순간에 투수와 타자는 성적이 갈린다. 타석, 회, 경기별로 숫자로 평가되고 연봉에 반영된다. 어떤 직장인보다 자주 평가받는다. 관중과 팬들의 반응까지 더해질 때 스트레스는 일반인들로서는 상상이 어려울 정도다.

프로야구 SSG랜더스의 한유섬(35) 선수는 경기가 있는 날이면 라커룸에서 15~20분씩 명상을 한다. 머릿속에서 잡생각을 비우고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명상을 시작한 것은 작년 8월부터. 성적 부진이 계기였다.

한 선수는 ‘한 방’이 있는 거포다. 2012년 SK와이번스에 입단한 그는 통산 12시즌에서 197홈런을 때렸다. 2018년엔 홈런 41개를 쳤다. 그해 가을야구는 그의 무대였다. 플레이오프 5차전 연장 끝내기 홈런, 한국시리즈에선 6차전 연장 13회초 결승 홈런을 날려 팀의 우승을 이끌며 MVP에 올랐다.

늘 최고일 수는 없었다. 2019년 12개, 2020년 15홈런을 친 그는 2021년 시즌 시작 전 ‘한동민’에서 ‘한유섬’으로 개명(改名)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고 했다. 이후 2021년 31개, 2022년 21개에 이르던 홈런은 지난해 7개로 뚝 떨어졌다. 힘들어하던 그에게 필라테스 선생님이 명상을 권했다. 꾸준히 호흡에 집중했다. 그 결과 올 시즌 홈런은 24개. 홈런 12위, 전 구단을 상대로 모두 홈런을 기록했다.

그는 190㎝에 이르는 거구임에도 섬세했다. 단어 하나, 표현 하나도 신중한 그를 최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만나 명상 전후의 이야기를 들었다.

-명상은 언제 시작하셨나요? 2019년 구단(당시 SK와이번스) 차원에서 선수들에게 명상을 보급한 적도 있다고 하던데요.

“그때 명상 선생님이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셨는데, 당시에는 명상의 중요성을 잘 몰랐어요. 그래서 습관화하지 못했죠. 본격적으로 명상을 한 것은 작년 시즌 중반부터입니다. 아무래도 선수는 결과에 대한 스트레스가 엄청나기 때문에 그 부담감을 좀 덜고 싶었어요. 또 성적이 8월 말까지 안 좋았는데 당시 필라테스 선생님과 (성적과 스트레스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누게 됐고, 선생님이 명상을 추천하셨어요. 저도 머리를 좀 비워야겠다는 생각, 경기 전에 저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어떤 방식의 명상을 권하셨나요?

“호흡에 집중하라고 하셨어요.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 이 호흡만 느끼면서 거기에 집중하라고 하셨어요. 그렇지만 거기에 집중이 안 된다고 해서 스스로를 채찍질하지 말라고도 하셨고요. 막상 해보니 어떤 때는 호흡하다가 그냥 잠이 들 때도 있었어요. 말 그대로 꿀잠이었어요.”

-주로 언제 명상을 하시나요?

“경기 전 15분에서 20분 정도요. 라커룸의 비스듬히 기대 앉는 의자에서 호흡에 집중하지요. 저는 경기장에 좀 일찍 나오는 편이에요. 홈경기 때는 상대 팀 전력 분석 미팅 전에 하고요. 원정 경기 때는 숙소에서 미팅하기 전이나 숙소에서 경기장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합니다. 에어팟을 귀에 꽂고 명상에 어울리는 음악을 들으면서 호흡에 집중합니다. 머리를 비우는 시간이죠.”

-야구 선수의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인가요?

“야구 선수라는 직업은 어쩔 수 없이 본인에게 냉정할 수밖에 없어요. 저는 타자이다 보니 (경기가 있는 날) 하루에 네 타석 내지 다섯 타석에 들어가는데, 과거의 안 좋았던 기억에 얽매이기 쉽지요. 근데 명상을 하면서 오늘 결과가 안 좋았다고 해도 내일, 또 그다음에 잘할 수 있다고 생각을 전환할 수 있게 됐지요. 그리고 지금 내가 몸 멀쩡히 야구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됐고요.”

-명상 덕분일까요? 작년엔 홈런 7개였는데 올해는 24개, KBO 선수 가운데 12등을 하셨어요.

“명상 덕분에 잘됐다고 하기엔 좀 부끄러운 성적이에요. 하지만 너무 큰 스트레스를 순간순간 받지 않기 위한 저만의 순환법이라고 할까요. 너무 지금 이거에 대해 스트레스 받고 이렇게 살 필요가 있나, 이런 생각도 한번씩 하기도 하고, 성적이 안 좋더라도 금방 이렇게 털어버릴 수 있어야 금방 또 이런 기운이 찾아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생각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그래픽=박상훈


-홈런에 대한 부담은 어떤가요?

“홈런은 치고 싶다고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투수의 실투(失投)를 쳐야 홈런이 나올 확률이 높기 때문에 그 실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연습을 반복하는 것이고, 상황 상황에 맞게 타격을 하려고 합니다.”

-명상을 한 이후엔 집중이 잘되나요?

“명상은 경기 전에 몸을 이완시키는 목적도 있고, 결과가 잘 안 나왔을 때 그것을 빨리 털어내고자 하는 게 저는 가장 큰 것 같아요. 계속 맴돌면서 안 좋은 결과를 생각하지 않으려는 것이죠. 저는 지금까지 클린업(3, 4, 5번 타자)에 배치돼 치는 경우가 많아서 클러치 상황(한 번의 공격으로 승패가 바뀌는 상황)이 많아요. 찬스에서 못 치면 아무래도 팀도 저도 대미지가 있지요. 그럴 때 빨리 털어내는 거죠.”

-명상이 멘털을 강하게 해줬나요?

“명상을 하면서 ‘멘털이 세졌다’고 표현하면 좀 웃긴 것 같고, 원래 엄청 신경 쓰고 마음 쓰고 했던 것이 조금 무덤덤해졌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제가 원래 뭔가 실수를 하면 그게 머릿속에서 잘 떠나지 않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런데 명상을 한 이후로는 너무 무책임할 정도는 아니지만 ‘뭐 실수할 수도 있지’ 이렇게 넘어갈 수 있는 여유가 생겼어요. 다음에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되니까요.”

-선수로서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후회가 많으세요? 좋은 기억이 많으세요?

“딱히 후회되는 것은 없어요. 제 나름대로는 잘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적을 떠나서. 지금까지도 1군을 못 밟고 야구를 그만둔 선수도 대다수이고, 우승을 못 하고 야구를 관두는 선수도 많죠. 제가 선수로서 적은 나이는 아니잖아요? 그래도 야구장에 출근해서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저는 행복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 전에는 무조건 ‘잘해야지’ 이런 강박이 많았다면 요즘엔 ‘그래도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려고 하고 있죠.”

-명상을 하면서 변하신 건가요?

“그런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지금도 여전히 순간순간 ‘왜 이렇게 안되지?’ ‘뭐가 문제지?’ 이런 딜레마에 빠지기도 해요. 그렇지만 빨리 (좋은 생각으로) 순환시키려 하지요.”

-명상에서는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를 강조하지요.

“그런 거는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많이 걱정했었거든요. 명상을 하면서 그거는 조금 줄어든 것 같아요. 근데 완벽하지는 않고 아직 진행 단계죠.”

-개명과 명상을 배운 것 중 어느 쪽이 더 인생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명상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야구 선수들이 개명하는 사례도 많았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했어요. 지금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개명은 안 할 것 같아요.”

-명상을 할까 망설이는 분들에게 권할 말이 있다면?

“처음엔 당연히 쉽지 않겠지만 엄청 복잡하고 디테일하게 생각할 것은 없어요. 그냥 눈을 감고 그냥 이 호흡만 왔다갔다 들이마시고 내쉬고 이것만 느끼는 것이죠. 조금씩 습관화되면 약간 머리도 비워지고 마음도 비워준다고 하면 (명상을) 하시지 않을까요?”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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