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성매매업소 집결지인 이른바 ‘미아리 텍사스’를 찾은 시각은 일요일인 24일 저녁이었다. 악질 사채업자들 협박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 9월 세상을 등진 싱글맘 S(35)씨의 일터였다. 이미 어둑해진 골목은 이곳저곳에 ‘철거’ ‘공가’ 같은 스티커가 붙어 있어 을씨년스러웠다. 내년부터 재개발을 위해 본격 철거에 들어가지만 몇몇 업주들은 하나둘씩 가게 문을 열고 있었다. 기자 신분을 밝히고 S씨를 아느냐고 묻자 모두 경계하는 눈초리였다.
S씨가 여섯 살 딸에게 “다음 생에서도 사랑한다. 내 새끼”라고 남긴 유서 내용을 언급하며 생전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려 달라고 간청했다. 하월곡동 사람들은 그제야 조금씩 곁을 내줬다. ‘언니’들은 “S에게 어린 딸이 있어서 기자들 취재가 너무 신경 쓰인다”고 했다. S씨는 주중엔 이곳에서 일을 하고 주말엔 대전 본가에 있는 딸을 보러 다니는 엄마였다고 했다.
유치원생 딸과 뇌졸중·심장병에 걸린 아버지를 부양하던 S씨가 지난 8월 사채업자들에게 빌린 생활비는 90만원. 한 달도 되지 않아 이자만 1000만원 넘게 불어났다. “1시간에 10만원씩 이자를 물릴 것”이라는 악질 사채업자들 협박에 S씨는 물론 하월곡동 사람들도 시달렸다. 참다 못한 지인이 지난 9월 9일 협박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S씨는 13일 뒤 전북 완주에서 숨졌다.
S씨가 연이율 수천%대 사채에 손을 대기 직전, 주민센터에 ‘아이 돌봄 서비스’를 신청했지만 기존에 받던 다른 지원이 있어 ‘자격 미달’로 거절당했다고 한다. 사회 보호망 밖으로 튕겨나간 S씨를 이후 대부업법·이자제한법·채권추심법도 지켜주지 못했다.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직접 연락하지 못하게 하는 금융위원회의 ‘채무자 대리인 제도’도 무용지물이었다. ‘미아리 텍사스’의 한 업주는 “국가도 정부도 경찰도 우리 편이 아니다”라고 했다.
사채업자들은 S씨 사망 뒤에도 유족·지인들에게 “잘 죽었다” 같은 협박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경찰 수사는 계속 지연되다가 윤석열 대통령의 ‘엄단 지시’가 나온 지난 12일에야 본격 개시됐다. 경찰 신고 64일, S씨 사망 51일 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S씨 유족을 돌본 사람들은 국가가 아니라 하월곡동 사람들이었다. S씨 49재를 치르던 날, 이들은 한 푼 두 푼 모아 S씨 유족에게 전달했다.
자정쯤 현장에서 철수했다. ‘미아리 텍사스’의 몇몇 업소마다 빨간 전구가 켜져 있었다. S씨와 동료들은 전구를 햇볕 삼아 일했을 것이다. 골목 이곳저곳 빈 업소들이 보였고, 깨진 유리창마다 대리운전 광고 스티커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대리운전 광고 사이에 ‘○○론’이란 사채 광고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대한민국 사회의 법과 제도 바깥으로 밀려난 그 어둠 속에서, S씨에겐 이 광고지가 처음엔 빛으로 보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정말 무거웠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70
[김도연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