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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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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뺑뺑이’ 사망, 법원 “병원이 응급의료 기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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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판결]

법원, 병원 측 책임 첫 인정

작년 3월 대구의 한 4층 건물에서 추락한 만 17세 A양은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하다가 결국 목숨을 잃었다. 당시 “의료진이 없다”며 A양을 돌려보낸 대학병원은 응급 의료를 거부·기피한 게 맞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응급실 뺑뺑이’에 대해 법원이 병원 측 책임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강재원)는 최근 대구가톨릭대병원을 설립·운영하는 학교법인 선목학원이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취소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고 24일 밝혔다. A양에 대한 진료 거부 등을 이유로 복지부가 시정명령과 보조금 지급 중단 처분을 내리자 대학병원 측이 소송을 낸 사건이다.

A양의 추락 사고 현장에 도착한 119구급대는 A양을 구조해 20분 만에 지역응급의료센터인 대구파티마병원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A양을 단순 자살을 시도한 정신과 응급 환자로 판단한 뒤 “(정신과) 폐쇄 병동 입원이 가능한 다른 대학병원으로 이송하라”고 했다. 두 번째로 찾은 경북대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A양을 대면하지도 않은 채 “중증 외상이 의심되므로 권역외상센터에 먼저 확인하라”며 A양을 돌려보냈다.

이어 구급대는 대구가톨릭대병원에 연락해 “낙상 사고 추정 환자를 치료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나 병원 측은 “신경외과 의료진이 없다”며 거부했다. 구급대는 계명대동산병원 등 응급실 3곳에 더 전화했으나 연이어 거절당했고, 대구가톨릭대병원에 다시 연락해 “대구 전역 (병원이) 안 된다 해서 1시간째 돌고 있는데, 혹시 수용이 가능하냐”고 다시 물었지만 재차 거부당했다. 결국 A양은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심정지가 발생했고, 사고 발생 2시간 30분여 만에 겨우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치료 도중 숨졌다.

복지부는 이 사건을 조사한 뒤, 대구가톨릭대병원을 비롯해 환자 수용을 거부한 대구파티마병원, 경북대병원, 계명대동산병원 등 총 4곳이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 의료를 거부 또는 기피할 수 없다’는 응급의료법 48조의 2를 위반했다 보고 시정명령과 6개월 보조금 지급 중단 처분을 내렸다.

이에 불복한 선목학원은 “외상성 뇌 손상이 의심되는 환자가 치료 시기를 놓칠 우려가 있어서 다른 병원을 추천한 것이지, 응급 의료를 거부·기피하지 않았다”며 정부의 제재 조치를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응급 의료를 요청한 자 또는 응급 환자로 의심되는 자에 대해 기초 진료조차 하지 않은 응급 의료 거부·기피에 해당함이 분명하다”며 “구급 대원이 통보한 응급 환자의 상태만을 토대로 병원으로 수용을 거부한 행위를 두고 당시 상황에서 최선의 조치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결했다.

[박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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