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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수백만 北 주민 구하려 김정은을 ‘철창’에… 나의 ‘생쇼’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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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덕이 만난 사람]

<<제네바서 北 인권 시위한 이제석>>

수감된 김정은 포스터 부착

러에 군대 파병한 金 비판

北 인권은 전쟁과 세계 평화의 문제

흙수저 출신의 광고계 스타

20년 가까이 공익 광고 제작

‘굴뚝 총’ ‘이순신 동상 가림막’

‘한미 동맹 70년’ 등 숱한 화제작

“모두를 살리는 광고 만들 것”

자기 업을 ‘생쇼’라 부르는 이 남자는 얼마 전 스위스에서 ‘목숨 건 생쇼’를 했다. 지난 6일 제네바 주재 북한 대표부 건물 외벽에 철창에 갇힌 김정은 포스터를 붙여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죄수복 가슴팍엔 다음 같은 문구가 적혔다. ‘ARREST ONE, SAVE MILLIONS(한 명을 체포해 수백만 명을 구하라).’

막 귀국한 이제석을 창 밖으로 무덤이 보이는 서울 변두리 작업실에서 만났다. 자칭 ‘대구 촌놈’인 그는 20대에 세계 유수 광고상을 휩쓸며 ‘뉴욕을 씹어 먹은 광고 천재’로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 목숨 걸고 한 ‘생쇼’

-위험천만한 일을 했더라.

“나도 당황스러웠다. ‘도시락 폭탄’ 제조가 내 임무인데, 폭탄 던지는 일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다(웃음).”

-국제 인권 단체 피스코어(PSCORE)가 주도한 캠페인인데.

“제네바 유엔 본부에서 UPR(북한 인권에 대한 보편적 정례 검토 심사)’이 열리기 하루 전 단행하기로 한 건데, 피스코어 회원들이 갑자기 현지에 올 수 없다고 해서 내가 직접 한 것이다. 달리기도, 싸움도 못 하는 내가(웃음).”

-초록색 철문이 진짜 교도소처럼 보였다.

“북한 대표부 건물의 여러 출입구 중 찾아낸 곳이다. 막다른 골목이라 차라도 한 대 들어오면 꼼짝없이 갇히는 구조인 데다, 북한 직원이 네댓 명씩 나와 있어 타이밍 잡기가 어려웠다.”

-붙잡히면 큰일 아닌가.

“총을 쏘진 않겠지만 물리적 충돌은 벌어지겠지. 마침 직원들이 모두 자리를 비운 사이에 포스터를 붙이고 영상으로 촬영할 수 있었다.”

-’한 명을 체포해 수백만 명을 구하라’는 문구는 직접 만들었나?

“이번 캠페인 핵심 주제다. 대북 전단의 ‘때려죽일 X’ 같은 표현은 국제사회에서 설득력을 얻을 수 없다. 북한 주민들은 우리가 품고 가야 할 대상이고, 그들이 거대 사이비 집단의 교주에게서 벗어나길 희망하며 만들었다.”

-반향이 매우 컸다.

“욕먹을 각오로 만들었다. 한 체제의 수장을 감방에 넣자는 것부터가 폭력적 접근 아닌가. 그런데 북한이 러시아에 어린 군인들을 총알받이로 파병한 때문인지 해외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국내도 마찬가지였다. 댓글이 거의 국민 단합, 국민 통합 수준이더라(웃음).”

-북의 표적이 될 수도 있는데.

“그래서 우리 작업실 위치를 어디 가서 공개하시면 안 된다. 하하!”

조선일보

지난 6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 북한대표부 철문에 '철창에 갇힌 김정은' 포스터를 붙여놓은 모습. 주황색 죄수복의 가슴팍에 '한 명을 체포해만 수백만 명을 구하라'는 의미의 영문 글귀(ARREST ONE, SAVE MILLIONS)가 담겼다. /이제석광고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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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 인권은 ‘방 안의 코끼리’

-이번이 처음이 아니더라. 2014년엔 제네바 유엔 본부 회의장에 ‘일가족 사살용 권총 과녁판’ 포스터를 수십 장 부착해 화제가 됐다.

“정치범 수용소 출신의 탈북자 신동혁씨 증언을 바탕으로 NKDB라는 단체와 함께 제작했다. 말을 함부로 했다는 이유로 총살당한 북한 일가족의 실화를 담았다.”

-’어떤 아기들은 감옥에서 태어난다’는 제목의 설치물도 있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는 가족 단위 수감자가 많아 거기서 태어나는 아기들이 있다. 아무런 죄도 없이 수용소에서 태어나 그곳을 집이라 믿고 평생을 사는 아이들 이야기다. 철창으로 만든 요람에 사람이 다가갈 때마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게 했다.”

-유학 시절이던 2009년엔 ‘미사일 대신 옥수수를(Meals, Not Missiles)’이란 문구의 광고가 워싱턴포스트지에 실렸다.

“옥수수 먹으라고 준 돈 다 어디에 썼냐고 물으며 북 정권을 비판한 광고였다.”

-북한 인권 문제에 왜 관심을 갖게 됐나?

“나도 처음엔 관심이 없었다. 여성, 장애인 문제도 여전하고 이제 동물의 권리까지 중요해진 마당에 굳이 북한까지 갈 필요가 있나 생각했다. 그러나 탈북자들 증언을 들으니 역사책에나 나올 만큼 끔찍하고 심각한 일들이 자행되고 있었다. 이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면 우파로 보는 시선이 있다.

“나는 환경, 반전(反戰) 광고를 훨씬 많이 만든 사람이다. 왼쪽도 오른쪽도 아니면 중도라고 하던데, 왼쪽 오른쪽을 다 하는 것도 중도라고 생각한다(웃음).”

-북한 인권 문제를 불편해하는 정권도 있다.

“그래서 그런가 지난 정부에선 일감을 거의 얻지 못했다(웃음). 그러나 북의 인권은 이념 문제가 아니다. 전쟁과 세계 평화의 문제다. 영어식 표현으로 하면 ‘방 안의 코끼리’. 방 안에 거대한 코끼리가 한 마리 있는데도 우리는 마치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조선일보

이제석이 제작한 국제환경단체 NRDC 홍보용 옥외광고. '대기오염으로 한해 6만명이 사망합니다'란 문구가 적힌 이 광고는 일명 '굴뚝총'으로 불리며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인 2007년 원쇼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제석 광고연구소 제공


조선일보

이제석이 제작한 국제적십자사 식수 지원 옥외광고. '이 물탱크의 물은 어느 마을의 1년치 식수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 사람을 살리는 광고

-돈 안 되는 광고를 왜 줄기차게 하나?

“그건 왜 사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모두를 살리는 광고, 세상을 바꾸는 광고를 만들고 싶다고 했더라.

“뉴욕 시절 ‘시티 하비스트’라는 식량 기부 자선단체와 일할 때 배고픈 사람 밥 먹게 해주고, 얼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옷을 입혀주는 광고를 만들며 공익 광고의 힘에 매료됐다.”

-스물다섯 살이던 2007년, 대기오염을 경고한 ‘굴뚝총’으로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인 원쇼 페스티벌에서 수상하며 광고계 총아로 떠올랐다. 뉴욕 초대형 광고 회사에서 스카웃돼 일했는데 왜 한국으로 돌아왔나.

“빚도 못 갚는 사람들에게 신용카드 만들라고 강요하는 광고, 껍데기만 살짝 바꿔놓고 신제품이라고 떠벌리는 광고를 만들며 죄책감을 느꼈다. 아이디어는 봇물 터지듯 분출하는데 회사가 시키는 일만 하자니 답답하고 괴로웠다.”

-한국 유명 광고 기업의 스카우트 제안도 거절했더라.

“높은 연봉과 직책은 탐났지만 당시 피크였던 나의 감성과 아이디어만 갖다 바치고 버림받을 것 같더라(웃음). 망하더라도 내 이름을 걸고 차곡차곡 쌓아가고 싶어 편의점 테이블 3개 가지고 창업했다.”

-이제석 광고의 80%가 공익 광고라던데, 돈은 어디서 벌어 충당하나?

“간판 대행, 인테리어, 자동차 정비 등 여러 일을 한다. 이 건물 1층이 공장이다. 내가 하고 싶은 광고를 만들기 위해 직접 목장갑 끼고 ‘노가다’ 하는 현장이다(웃음).”

조선일보

미국 워싱턴 매사추세츠가에 위치한 주 워싱턴 한국문화원 외벽에 한미동맹 70년 기념 게시물이 설치돼 있다. 1953년 미국 의장대와 2023년 대한민국 의장대가 각각 성조기와 태극기를 들고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통해 한미동맹의 역사와 소중함을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했다.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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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제석 광고연구소가 제작한 경찰청 옥외광고 '누나만 믿어'.


◇ 나를 짓밟아준 사람들에게 감사

-이제석 광고는 재미있다. 광화문 이순신 동상 가림막 광고 ‘장군님은 탈의 중’이 대표적이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재미없는 광고는 만들지 않는다. 탈의 중인 장군님은 점잖은 서울시 공무원들, 근엄한 교수님들 호통에 무산될 뻔했는데 오세훈 시장이 오케이해 성사될 수 있었다.”

-’누나만 믿어’ ‘총알같이 달려가겠습니다’ 등 경찰청 광고도 히트했다.

“제가 만나본 공무원 중 가장 열려 있고 크리에이티브(창의적)한 그룹이 경찰이었다. 상식을 뛰어넘는 범죄자들을 잡아야 해서 그런가?(웃음)”

-좋은 광고의 기준은?

“의뢰인의 과녁, 대중의 과녁, 나 자신의 과녁을 다 뚫어야 베스트다.”

-비결이 있나?

“단순 명쾌한 돌직구가 사람의 뇌를 찌른다.”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설치한 현대차 광고도 베스트 중 하나인가?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을 발판 삼아 전광판을 레이싱 게임 보드로 만든 경우다. 게임을 하려고 몰려든 행인들 자체로 엄청난 광고 효과를 일으켰다. 평범한 걸 다르게, 특별하게 봐야 성공한다.”

-공간을 활용하는 엠비언트 기법을 특히 좋아한다고.

“‘있는 것 활용하기’가 광고쟁이 최고의 능력이다. 발상의 전환, 무가치한 사물을 쓸모 있게 만드는 희열이 있다. 스포츠 중에서도 유도를 제일 좋아한다. 유도는 땅, 지구의 중력을 이용해 상대를 넘어뜨리는 최고의 격투기다.”

-작년 4월 윤석열 대통령 방미 때 한미 의장대가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나란히 선 형상의 ‘한미 동맹 70년’ 광고도 워싱턴 한국문화원 외벽을 활용한 것이었다.

“건물 위에서 나부끼는 국기를 보고 떠올린 아이디어다. 1953년 미국 의장대와 2023년 한국 의장대를 대비해 70년 동안 변치 않은 동맹의 굳건함을 강조했다.”

-기발한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오나?

“표현 욕구? 배고프면 젖병을 냅다 던지는 아기였단다(웃음). 청개구리 기질도 강했다. 남들이 우르르 몰리는 데는 안 간다. 아무리 맛집이어도 줄 서서 먹는 집엔 안 간다.”

-작업실 문에 ‘생각’이란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더라.

“광고는 몰입 싸움이다. 그 주제에 빙의될 때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목덜미가 찌릿해지는 순간이 있다. 물론 사인이 잘못 올 때도 있다, 하하!”

-학창 시절 문제아였다던데.

“공부 못하고 수업 태도도 불량해 많이 맞았다. 만화를 잘 그려 계명대 미대에 갔고, 뒤늦게 공부에 맛 들여 수석으로 졸업했는데 국내 기업들은 원서를 받아주지 않더라. 500달러 들고 뉴욕으로 날았다.”

-뉴욕에서 출세한 뒤 복수하는 심정으로 돌아왔겠다.

“스펙으로 검증할 수밖에 없는 기업들 심정도 이젠 이해한다(웃음).”

-’광고 천재 이제석’이란 책의 마지막 문장이 압권이더라. ‘국밥집 사장님을 포함해 나를 짓밟아준 분들께 이 책을 바친다.’

“나를 비웃고 냉대하고 문전박대해 준 사람들 덕에 판을 뒤엎을 힘을 얻었다. 벼랑 끝까지 올라간 자만이 달콤한 열매를 맛볼 수 있다.”

-82년생치고는 꼰대 같은 말이다.

“대구 촌놈이 뉴욕에서 살아남은 건, 모든 공모전에 뛰어들어 죽자 사자 경쟁했기 때문이다. 거저 주어지는 거 말고, 산꼭대기까지 올라가 쟁취하는 트로피를 좋아한다. 감동의 크기는 고난에 비례한다.”

-’생쇼’ 못하는 대통령실에도 한 말씀.

“권력은 이미지에서 나온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조선일보

흙수저 출신의 광고천재로 숱한 화제작을 만든 이제석 소장은 "나를 비웃고 냉대하고 문전박대해준 사람들 덕에 판을 뒤엎을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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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석

1982년 대구 출생. 계명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SVA)에 편입해 광고를 전공했다.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인 원쇼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뒤 클리오 어워드, ADDY 어워드 등 국제 공모전에서 29개 메달을 땄다. JWT, BBDO 등 미국의 초대형 광고회사에 다니다 2009년 이제석 광고연구소를 창업, 환경·인권·장애 등 공익광고를 제작하고 있다.

[김윤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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