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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기후위기에 원전? 비싸고 느린 ‘라라랜드’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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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비상사태인데 15~20년 걸리는 선택, 비합리적”
“‘원전 르네상스’는 허위… 더는 유효한 에너지 아냐”





한겨레

지난 20일 서울 이태원동 하인리히뵐재단에서 만난 독일 출신의 국제에너지정책 전문가 마이클 슈나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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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전 진흥 역할을 하는 곳이고, 세계원자력협회(WNA)는 매우 직업적인 로비 단체입니다.”



지난 20일 서울 이태원동 하인리히뵐재단에서 만난 독일 출신의 국제에너지정책 전문가 마이클 슈나이더(65)는 “중요한 건 그들의 성격”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세계원전산업현황보고서’(WNISR)의 주 저자인 슈나이더는 2024년 보고서를 소개하려 방한했다. 해마다 발간되는 이 보고서는 세계원자력협회와 국제원자력기구의 관련 보고서와 함께 전 세계 원전산업 현황을 망라한 주요 문건으로 꼽힌다. 한겨레는 2024년 보고서 발간 직후인 지난달 4일 기사로 소개했는데, 당시 산업통상자원부는 설명자료를 내 “세계원전산업현황보고서는 탈원전 학자 및 탈원전 단체가 작성한 보고서”라고 깎아내린 바 있다.





매년 전세계 원전산업 망라해 발간
산자부 “탈원전쪽 보고서” 주장에
“보고서 속 숫자는 누구 편도 아냐”
보수언론 “원전 르네상스” 평가에
“원전산업계, 계속 과장된 전망해와”





슈나이더는 보고서의 독립성과 객관성을 강조했다. 표지에 자금 지원자를 명시하고, 개별 지원금액이 전체의 40%를 넘지 않게 한다. 국제원자력기구에 자문하거나 과거 이명박 정부의 초청을 받은 경험도 있다. 현 한국 정부의 태도가 오히려 편향됐단 것이다.



“어딜 봐서 우리 보고서에 편견이 있다는 것인지 한국 정부에 되묻고 싶습니다. (보고서에 가득한) 숫자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습니다. 탈원전도, 친원전도 아닙니다.”



세계원자력협회가 지난 8월 기준 집계한 전 세계 ‘제안된’ 원전은 344기에 이른다. ‘가동 중’인 원전의 78%다. 국내 보수언론과 정부·여당은 이를 두고 ‘원전 회귀’, ‘원전 르네상스’라 하지만 슈나이더는 “제안과 계획이 전기를 만들진 않는다”라며 이를 일축했다. 슈나이더는 원전산업계가 “오랫동안 과장된 전망을 해왔다”며 ‘2000년대가 되면 4천기의 원자로가 지어질 것’이란 1970년대 국제원자력기구의 예측을 소개했다. 하지만 “명확한 현실은 지난 20년 동안 새로 가동된 원전보다 폐쇄 원전이 훨씬 많았다는 것”이다.



업계 상황을 보면 더 명확해진다. 현재 원전 시공국은 5개국뿐인데, 모두 문제가 있다. 프랑스 전력공사(EDF)는 지난 17년간 단 한 기의 원전(플라망빌)을 매우 힘들게 짓고 있다. 원전이 가장 많은 미국은 자국 내에서 원전을 짓지 않는다. 인허가를 요청한 발전사도 없다. 미국 회사였다가 2017년 파산 뒤 캐나다 우라늄 채굴회사가 사들인 웨스팅하우스는 소유주가 원전 시공 경험이 없다. 중국은 관련 회사 두 곳이 모두 미국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수출이 불가능하다. 최근 5년 기준 유일하게 성공적으로 원전을 수출한 러시아 국영기업 로사톰은 전쟁 제재로 수출이 어려워졌다. 남은 하나가 한국의 한국전력공사인데 아랍에미리트 수주 경험(바라카)이 있을 뿐, 빚더미에 놓여있다.



슈나이더는 특히 한국이 유럽에 바라카를 재현할 수 있다 생각하는 건 “그야말로 환상”이라고 했다. 아랍에미리트는 타국의 은퇴 전문가를 불러 안전위원회를 만들 정도로 애초 원전 관련한 규제도, 규제당국도 없었다. 반면 국경이 붙어있는 유럽연합의 규제 틀은 아랍에미리트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며, 그만큼 “수출 과정에서 매우 큰 제약을 받을 것”이란 것이다. “가능할지 말지 예측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난관이 많을 겁니다. 규제를 맞추는 건 엄청나게 기술적 난제가 될 것이고, 이걸 해결하는 과정에서 많은 돈이 들어갈 겁니다.”



한겨레

세계원전산업현황보고서(WNISR) 2024년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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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원전 르네상스’라는 말 자체가 허위라고 했다. “르네상스라면 원전이 여기저기 많이 지어져야 할 텐데 아니잖나. 이런 의견이나 입장 같은 차원의 얘기가 아닌 그야말로 현실”이라고 했다. 최근 5년간 신규 가동 원전은 35기인데 중국 22기, 러시아 13기뿐이다. 한데 중국은 2022년 원전 2기(2GW), 2023년 1기(1GW)를 지었지만, 태양광은 200GW를 생산했다. 중국에서 풍력이 원전을 앞지른 건 이미 10년 전이다. “원전은 제안과 계획이 난무하지만, 실체가 없습니다. 이걸 르네상스라고 할 수 있나요? 레토릭(말)의 르네상스일 뿐, 그야말로 환상이자 ‘라라랜드’(영화 비유), ‘하얀 코끼리’(미국식 표현으로 애물단지),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소설 비유) 같은 거죠.”





“한국이 유럽서 수주? 그야말로 환상
EU 원전 규제 틀은 UAE와 비교 불가”





슈나이더는 특히 기후위기와 인공지능으로 인한 전력난 때문에 원전이 필요하단 주장도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기후위기는 그야말로 비상사태이고 빠른 대응이 필요한데 원전은 한 기를 짓는 데에만 15~20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에너지 자립, 효율, 수요 쪽 조치, 재생에너지, 저장장치 같은 선택지들보다” 오히려 “가장 비싸고 가장 더딘” 수단이란 것이다.



“많은 국가가 이걸 알기에 원전이 아닌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겁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올 초 하이브리드 방식, 즉 태양광과 에너지저장장치를 결합한 형태가 어떤 에너지보다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고 했어요. 한국 정부가 요청하면 저희 분석을 발표할 용의가 있습니다. 원전은 더는 유효한 에너지가 아닙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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