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세에 미국발 변수까지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재집권에 성공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등장으로 국내 철강업계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닥쳤다는 우려가 깊다. 미국 무역장벽 강화로 대미 수출 물량이 제한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데다, 그렇지 않아도 골칫거리인 중국 저가 철강 밀어내기가 더 심화할 수 있어서다. 중국 공세가 상수로 자리 잡은 가운데 미국발 변수까지 덮치자 철강업계는 인도 등 수출 시장 다변화에 사활을 걸었다.
영업이익 ‘뚝뚝’
중국발 밀어내기 급증
국내 철강업계 부진이 장기화할 조짐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와 철강업계에 따르면, 포스코홀딩스는 포스코와 해외법인 등이 속한 철강 사업 부문에서 올 3분기 매출 15조6690억원, 영업이익 4660억원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0.8%, 45.4% 줄었다. 현대제철도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올 3분기 매출은 10.5% 감소한 5조6243억원, 영업이익은 77.5% 급감한 515억원에 그쳤다. 무엇보다 중국 경기 부진은 철강업 최대 리스크로 지목된다. 중국은 전 세계 철강 시장 절반을 차지하는 ‘큰손’인 데다, 지리적으로도 한국과 가까워 교역 비중이 높다. 중국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갖은 부양책을 내놓지만, 건설업 등 부동산 지표 회복은 아직 요원하다.
철강업계 최대 악재는 중국발 밀어내기 물량이다. 내수 부진에 시달리는 중국은 공급 과잉 해소를 위해 자국에서 남아도는 철강 제품을 저가에 전 세계로 밀어낸다. 부산항 등 국내 주요 항만에는 중국발 철강재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밀려들어 잔뜩 쌓여 있다는 게 철강업계 전언이다. 중국의 철강 밀어내기는 지난해부터 본격화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산 철강재 수입량은 873만t으로 전년(675만t)보다 29% 늘었다. 이런 추세는 올해도 확인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1~4월 중국의 철강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수출 단가는 19% 하락했다.
특히, 선박을 건조할 때 쓰이는 후판은 중국발 밀어내기 물량으로 고사 직전 위기라고 철강업계는 입을 모은다. 후판은 두께 6㎜ 이상 두꺼운 철판으로 열간 압연, 가속 냉각, 열처리 과정 등을 거쳐 생산된다. 중국산 후판 가격은 국산보다 t당 10만~20만원가량 저렴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 반덤핑 관세가 없어 중국이 무차별적으로 밀어내기에 나선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중국산 후판 수입 물량은 2021년 31만2000t, 2022년 59만9000t에 이어 지난해 112만t으로 급증했다. 이 기간 전체 후판 수입 물량에서 중국산 비중은 32% → 38% → 56%로 높아졌다. 이런 추세는 올해도 여전하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중국산 후판 누적 수입량은 88만7000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81만9000t보다 8.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조선사도 값싼 중국산 후판 사용을 늘리는 분위기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 7월 열린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중국에서 덤핑이 일어나고 있어 우리도 중국산 비중을 20%에서 25% 이상 늘리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당선으로 좌불안석
인도 등 수출 지역 다변화 사활
이런 가운데 전해진 트럼프 대통령 당선 소식으로 철강업계 시름은 더 깊어졌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번 대선 과정에서 평균 3%대인 수입품 관세를 최대 20%로 올리겠다며 ‘보편 관세’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특히 중국산 수입품에는 최고 6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벼른다. 중국 철강에 대한 바이든 정부 규제 정책도 계승할 전망이다.
통상 다른 산업의 경우 중국 기업이 대미 수출 규제를 받으면 국내 기업이 반사이익을 누리지만, 철강업계는 사정이 다르다. 국내 철강업계는 이미 미국에 수출 물량을 제한받는 처지다. 트럼프 집권 1기 시절 한국 철강업계는 고율 관세 대신, 자발적으로 수출 물량을 줄이는 퀴터제 적용 대상이 됐다. 이후 한국은 철강 쿼터 부과 대상국으로 2015~2017년 연평균 수출량의 70%에 해당하는 268만t의 철강만 수출할 수 있다.
이 탓에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미국으로 수출길이 막힌 중국 저가 철강이 대거 국내로 방향을 틀 가능성을 산업계는 우려한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 철강업계는 자국 부동산 경기 침체로 남아도는 철강 물량을 무차별적으로 해외로 밀어냈던 터다. 국내 철강업계 역시 무역확장법 232조, 특별시장상황(PMS) 등으로 미국 수출에 추가 규제를 적용받을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중국 저가 철강 물량이 늘어날 경우 업계 시름은 더 깊어질 전망이다.
법무법인 율촌은 ‘트럼프 행정부 2기의 정책과 국내 통상·산업 영향’ 보고서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중국 철강제품 수입 규제를 강화해도 우리나라는 매년 물량 쿼터를 대부분 사용하고 있어 반사이익을 기대하기 어렵고 오히려 미국 수출이 막힌 중국산 철강 제품이 국내에 진입하면서 덤핑행위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국내 철강 업체에 대한 가격 인하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소재환경산업실장도 “미국 시장에서 중국 물량이 퇴출돼도 한국의 반사이익이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며 전반적으로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돼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라 진단했다.
이에 국내 철강업계는 중국산 철강에 대한 반덤핑 관세 부과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한편, 수출 지역 다변화에 속도를 낸다.
지난 7월 현대제철은 산업통상자원부에 중국산 후판에 대한 반덤핑 제소를 신청했다. 열연강판 등에 대해서도 추가 반덤핑 제소를 검토 중이다. 포스코홀딩스는 최근 중국산 후판에 대한 반덤핑 조사와 관련, “불공정한 무역행위에 대응하기 위해 반덤핑 제소 필요성에 대해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며 “불공정 무역행위에 따른 적합 수입재에 대한 규제는 당연히 시행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나란히 인도 시장 공략에 나선다. 인도는 지난해 기준 도시화율이 36.4%로 세계 평균(57.3%) 대비 낮아 향후 인프라 사업이 대대적으로 벌어질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자동차 보급률도 8.5%에 불과해 성장 가능성이 높다. 건설·자동차에 필요한 철강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인도 시장 투자를 늘리는 것이다.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은 최근 직접 인도를 찾아 현지 1위 철강사 JSW그룹과 합작 제철소 건설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포스코그룹은 그동안 해외 사업장 가운데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중국에만 용광로·전기로를 뒀는데, 인도에 처음 쇳물을 녹여 중간재를 만드는 일관제철소를 설치하려는 것이다. 자동차용 강판 등 연 500만t 생산 규모로 건설할 계획이다.
현대제철은 올 3분기 인도 푸네에서 연간 23만t 생산 규모 스틸서비스센터(SSC)를 착공했다. 내년 2분기(4~6월) 설비 설치와 시험 생산에 들어간 뒤 3분기 가동을 시작하는 게 목표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5호 (2024.11.20~2024.11.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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