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1일 오후 당원교육이 진행된 청주 시제이비(CJB) 미디어센터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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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오후 2시20분, 국회 의원회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갑자기 달리기 시작한다. 노트북과 휴대폰,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우르르 그의 뒤를 따라 달린다. 이 장면을 담은 영상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지기 시작하며 한 대표에게는 ‘런(Run)동훈’이란 새 별명이 붙었다.
한 대표가 달리게 된 날은 마침 한 대표와 가족들 이름으로 당원게시판에 올라온 ‘윤석열 대통령 부부 비방글’에 대한 해명 요구가 불거진 날이었다. 이날 오전 친윤석열계 핵심인 권성동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대표가 진실을 말해야 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오상종 자유대한호국단 대표가 지난 11일 ‘한동훈’ 이름으로 국민의힘 당원게시판에 글을 쓴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이용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며 경찰 수사가 시작된 데다 15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사건 1심 ‘의원직 상실형’ 선고에 묻혀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 듯했던 논란을 재점화한 것이다.
이 사안은 지난 7일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 이후 소강 상태였던 당내 계파 간 갈등을 점화할 새로운 불씨로 꼽혀왔던 터라, 한 대표가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당연히, 한 대표 일정마다 기자들이 따라붙었다.
이날 한 대표는 오전 10시 인요한 의원이 주최하는 ‘Dr. 인요한의 한국형 구급차 2.0 국회 전시회’ 참석을 시작으로, 오전·오후에 6개의 일정이 잡혀 있었다. 이 대표 1심 선고 이후, 각종 행사가 끝날 때마다 따라붙은 기자들에게 현안 관련 백브리핑(백블)을 활발히 해오던 한 대표는 이날은 오후 2시 일정이 끝날 때까지 좀처럼 기자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내주지 않았다.
남은 일정은 단 두 개뿐. 오후 2시15분, ‘세계역사 주도 초일류국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주제로 박상웅 의원이 주최한 강연이 끝난 뒤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을 나서는 한 대표를 기다리는데, 한 대표와 사진을 찍겠다고 몰려든 지지자들에 밀려 5분이 흘러갔다. 오후 2시30분 마지막 일정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10분. ‘민생경제특위’와 관련된 첫 질문에 이어, 다음 질문이 시작되기 전 한 대표가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당원게시판에 올라온 가족 명의 글은 어떻게 된 것이냐.” 준비했던 질문은 꺼내지도 못했다. 한 대표가 뛰는 통에, 어리둥절해진 기자들도 함께 따라 뛰었다. 한 대표가 탄 차가 의원회관을 떠난 순간, “아니 갑자기 왜 뛴 거지?” 기자들은 서로를 보며 헛웃음만 지어야 했다.
이제 남은 일정은 국회 본관에서 여의도연구원 주최로 열린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한미동맹 및 통상외교 강화 방안 긴급 정책토론회’ 뿐이었다. 토론회가 끝나길 기다렸다 만난 한 대표에게 비로소 준비했던 질문을 던졌지만 “더 특별히 (말씀)드릴 만한 내용이 아니다”라는 말만 돌아왔다. 한 대표를 대신해 그간 서범수 사무총장과 친한동훈계는 익명게시판에서의 표현의 자유 보호,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 방지를 위해 당무감사는 하지 않을 것이며,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지켜보자’는 입장을 보여왔는데 “그것으로 갈음하겠다”고 한 것이다.
한 대표는 이후 기자들을 만나도 백브리핑을 하지 않거나 “제 입장을 (이미) 말씀드렸다”는 말만 반복했다. 한 대표로부터 속시원한 설명을 들은 바 없는 기자들만 알쏭달쏭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 대표의 이런 태도에 장예찬 전 최고위원은 “런동훈이라는 별명까지 생길 정도로 기자들의 백블을 피해 도망 다니는 장면이 지금 온라인에서도 많이 회자되고 있다”고 비꼬기도 했다.
“얼마 전 제가 다른 민생 질문을 받으면서 (기자를) 지나간 걸 갖고 마치 회피한 것처럼 만들어 (영상으로) 돌리고 하는데, 누가 그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21일 오전 ‘런동훈’이란 비아냥이 불쾌하다는 듯, 한 대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한 대표는 일단 이 논란으로 인해 “불필요한 자중지란에 빠질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 대표로서 잘 판단해서 대응하겠다”고 했다. 그는 ‘가족 명의가 도용됐는지 여부에 관한 사실 관계를 설명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아까 말씀드린 것으로 갈음하겠다”며 “어떤 위법이 있는 문제가 아니라면 건건이 설명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고 했다. 이어 “당에서 법적 조치를 예고한 바 있기 때문에 위법이 있다면 철저히 수사되고 진실이 드러날 것”이라고도 했다. 당내에서 이어지고 있는 ‘당무감사 요구’에 대해서도 “당 시스템에서 판단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고, 이어지는 추가 질문에도 “아까 말한 것으로 갈음하겠다”는 답이 반복됐다. 당원 게시판에 한 대표 가족 이름으로 쓴 윤 대통령 욕설 부부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와 뉴스 포털 댓글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되면서 ‘여론조작 의혹’으로까지 번지고 있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없다며 구체적 해명을 하지 않겠다고 못 박은 것이다.
한 대표의 이런 대응이 ‘국민의 눈높이’를 강조해왔던 평소 때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비판이 나온다. 영남권 한 초선 의원은 “‘청담동 술자리’ 의혹 때 ‘모든 직을 걸겠다’는 한 대표 발언과 비교하며 의원들 사이에서도 뒷말이 나온다”며 “(가족) 명의가 도용됐는지, 유출됐는지 한 대표가 밝히면 될 일이다. 해명을 하지 않아 판이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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