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커피하우스]
과일·샌드위치·세탁… 이재명 법카 용도 상상초월
사회 진화하는데 구습에 머무른 ‘문화 지체’ 현상
李, 집회하고 재판받는 건 문명사회 사는 덕분
판결 거부하며 야만적 언어 쏟아내는 건 非문명
법·제도 지키며 세련되게 사는 문명인 세상 왔으면
일러스트=이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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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법카(법인 카드)가 있다. 그런데 잘 쓰지 않는다. 다른 카드와 섞이지 않도록 지갑 깊숙이 넣어두고 업무상 필요할 때를 제외하곤 꺼내지도 않는다. 법카를 쓴 후에는 누구와 무슨 일로 썼는지 실명과 함께 서류로 제출해야 해서 번거롭다. 사용 액수도 제한이 있다. 어차피 자유롭게 쓸 수 없으니 사실상 무용지물이나 진배없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대단히 청렴해서가 아니다. 요즘 웬만한 직장인이라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 정도 ‘법카 의식’은 있다.
전직 도지사 아내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최근 1심에서 벌금 150만원 유죄판결을 받았다. 대선을 앞둔 당내 경선 과정에서 지지자와 식사를 하고 음식값 10만4000원을 경기도 법인 카드로 계산한 것이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 판결이다. 검찰은 이어 그의 남편인 전직 도지사도 업무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는데, 검찰 주장대로라면 법인 카드 유용 액수가 1억원이 넘는다. 이번에는 그의 아내는 기소유예됐다. 아직 법원의 판단이 남아있지만, 검찰이 제시한 혐의 내용을 보면 고가의 관용차에서 과일, 샌드위치, 세탁비에 이르기까지 유용 품목의 범위와 다양성이 상상을 넘는다. 분노에 앞서 요즘 세상에 어떻게 법카를 저렇게 막 쓸 수 있는지, 의아할 뿐이다.
적어도 법카 기준으로 그동안 경기도청은 딴 세상이었던 것 같다. 그 도지사 부부처럼 법카를 썼다가는 어떤 조직에서도 온전할 수 없다. 놀라운 건 첫째, 그런 국민 상식에서 동떨어진 세상에서 조직적으로 공공의 돈을 제 돈처럼 여기고 품목 불문 수시로 카드를 긁었다는 것이고, 둘째, 그게 말썽이 돼 1심에서 유죄판결이 나왔는데도 죄가 없다며 항소했다는 사실이다. 상식도, 배움도, 뉘우침도 없는 불량한 죄인이 아닐 수 없다.
관행이 불법으로 바뀌는 순간이 있다. 사회는 진화하는데 인간이 구습에 머물러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 발생하는 일종의 문화 지체 현상이다. 그런 순간은 대체로 문명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나타난다. 아마 조선 시대 원님들은 세금을 걷어 제 것처럼 쓰거나 노비들을 제 맘대로 부려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법과 인권이 엄연한 문명사회에서는 그 모든 게 범죄가 된다. 조선 시대까지 갈 것도 없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직장 상사들은 부하 위에 군림했고, 남성은 여성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었다. 요즘은 직원에게 던진 한마디가 성희롱 혹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발되고, 미성년은 별도로 보호해야 하며, 심지어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개나 고양이도 학대하면 법의 처벌을 받는다. 경기도의 법카 유용 사건을 보면 그 전직 도지사 부부는 지금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르거나, 그래도 되는 줄 잘못 알았던 것 같다. 몰랐어도 알았어도, 그들의 범죄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2022년 대선 과정에서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주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2년 2개월을 질질 끌던 재판의 첫 선고인 데다 무죄를 주장하던 민주당으로서는 상당한 중형이라 정치권에 던진 파장이 컸다. 선고를 받아들이기는커녕 “미친 정권의 미친 판결”로 받아치고 장외 집회를 통해 전열을 가다듬는 야당을 보면 법과 정치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법조계를 자극해서 중형을 자초했다는 반성도 있고, 법리로 대응해야 하는 것을 정치 논리로만 돌파하려 한 결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 일리 있는 해설이지만, 내 생각에는 지나치게 우아한 분석이다. 정치도 법도 아닌, 문명과 야만의 대결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야당의 섬뜩한 언어 어느 구석에 정치가 있는가. “비명계가 나설 경우 다 죽여버리겠다”는 어느 의원의 말은 정치가 아니라 원시적 협박이다. 일부 야권 지지자들이 쏟아내는 말 가운데 “서울 법대 나온 판사가 맞나”라는 건 저급한 수준의 비아냥이며, “판사를 효수(梟首·죄인의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다는 일)해야 한다”는 건 야만적인 겁박이다. 문명사회 법정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사람을 로마제국의 16대 황제이자 스토아파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빗대 “신의 사제요 신의 종”이라고 표현하는 데 이르러선 할 말을 잃었다. 이렇게 시공간적 맥락과 내용과 대상이 다 틀리는 비유를 들어보긴 난생처음이다.
야당은 정적 제거에 검찰과 법원이 동원된 것처럼 포장하지만, 야만 사회에서 정적은 재판받지 않고 그냥 제거당한다. 이재명 대표가 펄펄 살아서 집회도 하고 재판도 받는 건 우리가 문명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은 “민주주의가 죽었다”고 소리치지만, 민주주의란 ‘법치’의 또 다른 이름이다. 법이 곧 문명이고, 선거도 문명이다.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을 탄핵해서 끌어내리려는 건 선거에 대한 불복이며, 검사를 탄핵하고 판사의 목을 치겠다고 하는 건 법에 대한 모독이다. 요컨대 야만이고 비문명이다.
‘문명사회’의 뜻을 풀어보면 물질적, 기술적, 정신적으로 발전한 세련된 삶의 형태를 말한다. 문명사회는 그 속에서 사는 사람을 공정하게 대하며, 그를 위한 법과 제도가 마련되어 준수되는 사회다. ‘문명인’이란 그런 환경에서 남을 해치지 않고 친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이다. 우리는? 물질과 기술은 앞섰지만 정신적으로는 야만의 경계를 오가며, 친절하지 않고, 남을 해치는 데 거리낌이 없다. 법카도 쓸 줄 모르는 사람, 선거든 재판이든 결과가 맘에 안 들면 저주하고 저항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나라를 이끌면 지금까지 일군 우리의 문명은 순식간에 고대 유적으로 변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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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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