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 (1) 통상·무역
트럼프 시즌2 시대 통상 정책은 어떻게 변할까. 최근 한경협 주최 역대 통상교섭본부장 4인 토론회 내용을 중심으로 변화상을 재구성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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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 관세 실행할까
대통령 권한으로 밀어붙이면 가능
“트럼프 당선인이 보편 관세를 추진하는 것 자체가 자유무역주의를 지향하는 WTO, FTA 정신을 위배한다.”
법조계 한편에서 제기하는 주장이다. 통상 전문가 생각은 다르다. 한결같이 ‘방법을 찾아 빠르게 밀어붙일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여한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에서는 이미 1972년 닉슨 때 금본위제 탈퇴하면서 모든 국가들에 1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며 “지금의 미국 법제는 미국 국가 안보나 비상사태의 경우 대통령 권한으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재량으로 보편 관세를 부과할 수 있어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보편 관세가 ‘뉴노멀’이 된다면 우리 정부가 하루빨리 맞춤형 통상 전략을 짜야 한다는 의견이 뒤따른다. 이때 협상 원칙은 상호호혜, 즉 ‘윈윈’ 전략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다수다.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보편 관세를 비상조치로 시행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 리드타임(법제화하는 시간)이 필요할 텐데 이때 협상에 집중해야 한다”면서 “미국이 대미무역 흑자 품목, 특히 자동차 같은 부문을 미국이 집중 거론한다면 우리는 자동차 분야에서는 최소한의 부담을 지는 대신 미국에 이익을 줄 대안으로 미국의 전략 수출품(에너지, 로켓 발사 등)을 많이 수입하는 쪽으로 방향을 설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한구 선임연구위원도 “한국 기업 없이는 미국의 제조업 재건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미국이 원하는 키워드, 즉 조선, 방산, 원자력 산업 등에 투자·협력을 제공하면서 ‘윈윈’으로 대응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선례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2011~2013년 통상교섭본부장)은 “트럼프 1기를 보면 국가별, 품목별 등 유예 조치를 많이 뒀었다”며 “4년 내내 보편 관세를 부과한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므로 유예 조치 등 통해서 적극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IRA·칩스법 수정될까
기정사실 받아들이고 ‘윈윈’ 전략 세워야
역대 통상교섭본부장 4인은 모두 “IRA·칩스법의 수정 여지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따라서 정부와 민간이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고 의견이 모였다. 무엇보다 가장 빠르게 진행될 사안은 보조금 감축이다. 김종훈 전 본부장은 “보조금은 미국 민주당이 선호하는 수단이고 공화당은 세제 혜택을 수단으로 주로 사용한다”며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 기업에 우선적으로 세제 혜택을 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보조금은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선례도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오바마케어의 일부 정책 재조정을 추진했다. 당시 개정안 이름이 ‘스키니 리필’이었는데 전문가들은 이미 한 차례 추진해본 바 있기에 칩스법·IRA도 이런 시도로 개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유명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2019~2021년 통상교섭본부장)는 “IRA를 폐지한 다음 공화당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법안을 만들어 의회를 통과시킬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 기업은 투자한 미국 지역의 지역구 의원들을 중심으로 우리 요구 사항이 선제적으로 잘 반영될 수 있도록 판세를 읽으면서 통상 외교를 해나가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민간 차원에서 이럴 때 오히려 미국 투자를 늘려 트럼프의 ‘환심’을 사는 것도 방법이라는 의견도 있다. 박태호 원장은 “우리 기업이 이럴 때일수록 현지 투자를 더 과감하게 하는 등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미 FTA 건드릴까
실리 위주 재협상 대비
트럼프 집권 2기가 되면 한미 FTA마저 재협상 혹은 폐기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이미 트럼프 1기 때 한 차례 한미 FTA 협상을 해본 사례가 있기에 가능성은 충분히 열어둘 수 있다.
4인의 통상 전문가는 자동차 무역역조 등으로 미국이 이런 문제 제기는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유명희 교수는 “(1기 트럼프 시절) 한미 FTA 개정 협상 때 어찌 보면 한국이 선방했다는 결과를 거둔 바 있다”며 “당시 대응했던 사람들이 다 현직에서 준비하고 있으므로 정부가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자문하고 철저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김종훈 전 본부장은 “민간 기업 역시 정보가 가장 중요하므로 국내 조직을 잘 만들어야 한다”며 “안테나를 세우고 정보가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터뷰 | 조윤제 한은 금통위원·전 주미대사(트럼프 1기 시절)
원하는 걸 먼저 주고…우주·핵잠수함 맞바꿔야
원하는 걸 먼저 주고…우주·핵잠수함 맞바꿔야
1기 트럼프 행정부 시절 첫 주미대사로 일했던 조윤제 한국은행 금통위원. 그는 “트럼프는 합리적인 인물”이라며 “실리 위주로 접근하면 오히려 한미 관계는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Q. 직접 겪어본 트럼프 당선인, 어떤 인물이던가.
A. 강성처럼 보이지만 상당히 합리적이고 똑똑하다.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경청한 후 사안의 본질을 공략하는 협상가 스타일이다. 상대방의 장단점을 잘 이해하고 협상안을 던진 후 다음 단계에 어떻게 반응할지까지 염두에 두는 시나리오 경영에 능하다.
Q. 트럼프 당선인은 통상 정책에 큰 변화를 예고했는데.
A. 본인 뜻대로, 그것도 신속하게 관철시킬 가능성이 높다. 1기 때는 정치 신인이었고 상하원 장악도 못했다.
지금은 다르다. 게다가 압도적인 표차로 이겼기 때문에 앞으로 트럼프 당선인의 행보는 미국 본류의 뜻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트럼피즘이 뉴노멀인 시대가 된 만큼 통상 정책 역시 큰 변화가 예상된다.
Q. 우리는 어떻게 실익을 챙겨야 할까.
A. 미국이 요구할 것이 있다면 빨리 수용하고 대신 우리도 우리가 필요하고 원하는 걸 ‘역제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미국의 경제, 안보 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만큼 항공우주 기술, 핵잠수함 등 방산 등에서 받아낼 건 받아내는 것도 기술이다.
Q. 트럼프 당선인이 윤석열 대통령과의 첫 통화에서 조선업 협력을 언급했는데.
A. 이는 수사(修辭)일 수 있다. 덕담 차원에서 나온 얘기인 만큼 너무 큰 기대를 갖지 말고 보다 냉철하게 접근해야 한다.
트럼프 1기 때도 한국 제조업 칭찬을 하다가 한미 FTA 재협상안을 들고나왔던 전례가 있다. 파리기후협약 탈퇴 등 구체적인 언급을 중심으로 산업별 기상도를 그려보고 여기에 맞춰 통산 전략을 짜야 한다. ‘내주면 안 될 것, 먼저 내주고 대신 더 중요한 걸 받을 것’ 등으로 재분류해서 협상에 나서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 현지 제조업 투자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5호 (2024.11.20~2024.11.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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