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3명 질식사 현대차 실험실, 수사기관 ‘밀폐공간’ 판단 관건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울산본부, 중대재해없는 세상만들기 울산운동본부 등은 21일 오전 고용노동부 울산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책임자 엄정 처벌을 촉구했다. 주성미 기자

연구원 3명이 사망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차량 성능 실험실(체임버) 사고의 쟁점은 사고 실험실이 ‘밀폐 공간’인지 여부다.

21일 전국금속노조와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등의 말을 들어보면, 지난 19일 숨진 연구원 3명은 실험실에서 40도 이상 온도, 고출력 조명 등을 가동해 ‘사막’을 가정한 환경을 만들어 실험 차량(GV80)을 시속 160㎞로 주행하며 전장부품 정상 작동 등을 확인하는 실험을 진행하다 변을 당했다. 사고 실험실에는 유해물질 감지기 등 안전장치는 없었고, 사망자들을 최초 목격한 직원은 실험실의 환경을 조작하는 작업자였다.

쟁점은 이 실험실이 산업안전보건법이 정한 ‘밀폐 공간’에 해당하는 가다. 산안법에 따르면 ‘밀폐 공간’에서는 유해·위험요인 파악·관리방안을 마련해 작업을 수립·시행해야 하고, 외부에 작업상황을 감시할 수 있는 감시인을 배치해야 한다. 경찰과 고용노동부 등이 이 실험실을 밀폐 공간으로 인정하느냐에 따라 처벌이 달라질 수 있는 셈이다.

노동시민단체는 이 실험실이 ‘밀폐공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별표18’은 ‘밀폐 공간’을 규정하고 있다. 노조 쪽은 이 가운데 사고 실험실이 △불활성기체가 들어 있거나 있었던 시설의 내부 △산소농도가 18% 미만 또는 23.5% 이상, 일산화탄소농도가 30피피엠(ppm) 이상인 장소의 내부 △근로자가 상주하지 않는 공간으로 출입이 제한된 장소의 내부 등에 해당될 수 있다고 본다. ‘체임버’는 온도와 습도, 압력 등을 조절해 인위적인 환경을 만드는데, 강풍 등 조성 환경에 따라 8~10%가량 외부 공기가 실험실로 유입될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밀폐’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도로교통공단은 산하 교통과학연구원에 ‘복합환경 체임버’ 2개를 운영 중인데, 이 실험실을 밀폐 공간으로 보고 안전 수칙을 만들었다. 일산화탄소와 산화수소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유해물질 가스 감지기, 산소 감지기 등을 설치해 운영하고, 시험 작업 전에 마스크 등 기본 보호구도 착용하고 있다고 한다.

현대차는 사고 실험실을 ‘밀폐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말씀드릴 수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회사가 ‘밀폐 공간’이라는 표현을 극히 자제하고 있는 데 대해 노조와 시민단체는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한 의도”라고 비판했다.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울산본부, 중대재해없는 세상만들기 울산운동본부 등은 이날 고용노동부 울산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책임자 엄중 처벌을 촉구했다.

사고가 발생한 실험실이 현대차 울산공장에 설치된 것은 10여년 전으로 전해졌다. 유사한 형태의 실험실이 울산공장에만 7개, 남양연구소에는 10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노조는 파악하고 있다. 대부분 차량 성능 시험은 남양연구소에서 진행되지만, 실험실 일정상 이번엔 울산공장에서 출장 시험이 이뤄졌다. 남양연구소가 울산공장에 보내온 협조문에는 사고 전날인 18일부터 열흘 동안 시험 계획이 담겨 있었다고 노조는 밝혔다. 사고가 발생한 실험실은 약 2주 전에도 가동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지난 19일 오후 3시께 현대차 울산공장 전동화품질사업부 차량 성능 실험 과정에서 남양연구소 소속 연구원 2명과 협력업체 연구원 1명이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되고 있다.

주성미 기자 smoo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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