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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 (목)

공직자 거짓해명의 무게 [슬기로운 기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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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인 명태균씨가 보고받은 경남 창원 신규 국가첨단산업단지(창원국가산단) 사업 관련 창원시 내부 문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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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진산 | 한겨레21부 탐사팀 기자



태어나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경남 창원을 최근 들어 여러차례 찾은 건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 명태균씨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명씨는 못 봤지만, 창원 사람 여럿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 개중엔 창원 바닥에서만 수십년간 공직 생활을 이어온 고위직 공무원도 있었다. 그는 명씨가 개입한 의혹을 받는 창원국가산단의 실무를 담당했다.



그와는 이전에 몇번 통화했다. 창원시가 작성한 산단 관련 대외비 문건을 왜 민간인 명씨가 사전에 갖고 있을 수 있었냐고 묻기 위해서였다. 그는 처음엔 웃으며 명씨의 개입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며 몇가지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의 근거를 정리하면 총괄본부장 명씨는 김영선 국회의원실 상석에 앉아 있는 보좌관인 줄 알았고, 어차피 보고 대상도 김 의원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붉은색 글씨로 보안주의라 적힌 대외비 문건에 대해 “취급에 주의하자는 의미지 알려져도 큰 문제가 없는 보고서”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도 덧붙였다. 그 보고서엔 선정 예정지의 내용이 아주 상세하게 담겨 있는데도 말이다. 또 ‘김영선 의원실에 몇번이나 방문했고 그때마다 의원이 있었냐’고 묻자, 그는 “4~5번 정도 의원실을 방문해 산단 관련해 보고했고 모두 의원이 자리에 있었다”고 답변했다.



당시에 그의 해명이 깔끔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언론이 수사기관도 아니니 더 명확한 정황 증거를 찾지 않는 이상 쪼아대며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의 발언은 그대로 처음 기사에 담겼다.



그러나 며칠 뒤 이 말은 쉽게 뒤바뀌었다. ‘창원시가 김 의원실을 찾았을 때는 주로 평일이었고 그땐 의원이 서울에 있었을 수도 있었다’고 하자 “방문했을 때 대부분 의원이 있었다”고 말을 바꿔 답변했다. 그는 ‘모두’에서 ‘대부분’으로 말을 바꾸면서도 태연한 태도는 일관됐다. 그러면서 그의 발언 중 모순된 지점을 지적하자 그때부터 진실이라며 몇가지 얘기들을 비로소 꺼냈다.



물론 그가 이런 해명을 하는 데에는 명백한 이유가 있다. 자신의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를 방어하기 위해서다. 명씨는 민간인 신분이기에 창원시가 해당 보고서를 명씨에게 전달한 것이 입증된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창원산단 대외비 보고서가 명씨에게 전달된 사안은 현재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그러니 창원시는 문건이 어찌어찌 명씨에게 넘어갔다고 해도 본인들은 명씨에게 보고한 것도 아니고 그가 의원실 보좌관인 줄 알았기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거다.



금방 드러날 거짓들을 듣는 일은 취재하면서 적잖이 생기곤 한다. 기자가 취재 대상에게 기분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도 아니니 당사자는 스스로 방어하는 차원에서 당장은 둘러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답변하는 건 본인의 자유이고 기자에게 거짓된 해명을 한다고 해서 법적인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공직자들이 둘러댄 말들이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을 때는 언론의 의혹을 키우고 더 큰 의구심을 낳게 할 수밖에 없다. 고위 공직자의 말은 더더욱 그러하다. 실제 창원시 공무원이 “정말”이라며 강조했던 말들의 무게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말, 그의 말처럼 그 말이 모두 정말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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