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자산은 연구 결과물뿐만 아니라 연구원, 연구시설, 연구비 등 연구와 관련된 모든 물적·인적 자원을 포함한다. 연구 자산이 유출될 경우 연구기관의 경쟁력뿐만 아니라 국가적 수준의 안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연구보안은 단순히 자산을 보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의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고 연구 환경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연구보안은 R&D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위험으로부터 연구 자산을 보호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이는 정보보안, 산업보안과 유사한 측면을 가지지만, R&D의 특수성을 반영한 고유의 범위를 가지고 있다. 정보보안은 시스템과 네트워크 보호를 중점으로 하고, 산업보안은 기업 자산 보호에 초점을 맞춘다(Product Security). 반면 연구보안은 연구 全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자산, 즉 연구 결과물, 연구원의 역량, 연구 시설 및 공간 등 연구와 관련된 모든 요소를 보호하는 데 중점을 둔다(Process Security).
연구보안의 어려움은 연구와 보안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연구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있다. 연구보안은 연구자들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동시에, 연구 자산이 외부로 유출되거나 악용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이러한 연구보안의 개념과 범위는 연구 환경의 안전성과 연구산출물의 안정성에 중요한 기초를 제공한다.
연구보안 사고는 국내외에서 빈번히 발생하며, 그 피해는 연구기관과 기업을 넘어 국가 전체의 경쟁력과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이는 연구보안 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국가적 수준의 대응 필요성을 보여준다.
국내에서는 한 디스플레이 기업의 3D 라미네이션 기술 유출 사건이 대표적이다. 해당 디스플레이 기업의 협력사 영업부장 출신 A씨가 디스플레이 제작에 사용되는 핵심 기술을 중국 업체로부터 억대 연봉을 제안받고 유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해당 기술 유출로 인해 디스플레이 기업을 물론 국가 산업 경쟁력에 심각한 악영향이 발생할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며, 법원은 이를 중대한 범죄로 판단해 A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국가 핵심 기술이 유출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치명적인 결과를 경고하며, 연구보안 체계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한편 해외 사례로 독일 대학교에서 발생한 연구정보 유출사건이 있었다. 러시아 출신 연구조교 B씨는 대학 연구자료를 러시아 정보기관에 유출한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최소 세 차례에 걸쳐 대학에서 수집한 정보를 러시아 정보 요원에게 전달하고 그 대가로 금전적 보상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은 연구 자산 유출이 단순한 경제적 손실에 그치지 않고, 국제적 갈등과 외교적 긴장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독일 사례는 연구보안 체계 부재가 초래할 수 있는 국제적 차원의 문제를 경고하며, 연구보안 강화를 위한 체계적 대응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부각시킨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세계 각국과 주요 국제기구는 연구 자산 보호와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해 연구보안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연구 협력의 활성화와 기술 경쟁력 유지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로 평가받는다. 특히 OECD와 G7을 비롯한 주요국들은 신뢰 기반의 개방적이고 진화적인 연구 생태계를 조성하며, 연구보안의 현장 정착과 국제적 협력 방안을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OECD는 연구보안을 글로벌 연구생태계의 핵심 요소로 강조하며, 국제적 협력과 연구교류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연구진실성과 보안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022년에 발표된 글로벌 연구생태계의 진실성과 보안 보고서는 국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연구보안 정책이 연구진실성 프레임워크 안에서 운영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OECD는 1995년에 처음 제정된 과학기술 국제협력 권고안을 2021년에 개정하며, 연구보안 역량 구축 및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는 자국의 연구보안 체계를 강화하면서도 국제 협력에 참여하는 국가들에게 중요한 방향성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연구 자산 보호와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해 연구보안 체계를 강화하고 내실화하는 다양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우선적으로 국외 수혜정보 신고 관리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이 제도는 연구자와 연구기관이 외국의 재정 지원이나 수혜 프로그램 참여 여부를 투명하게 신고하도록 요구하며, 외국과의 연구 협력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기술 유출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장치다. 이러한 체계는 연구 자산 보호를 넘어 국제적 연구 협력의 신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한편, 연구현장에서의 연구보안환경 조성을 위해 다양한 주제의 제도들도 함께 논의되고 있다. 먼저 연구보안 컨설팅 지원은 연구자와 연구기관이 연구보안의 중요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과 전문 인력 양성을 포함한다. 특히, 연구보안 교육은 연구 환경의 필수 요소로 정착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이를 통해 연구자들이 연구보안을 일상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 국가 R&D 과제의 보안등급을 민감도와 중요성에 따라 구분하고, 각 과제에 적합한 관리 체계를 적용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이 같은 보안등급 차별화는 민감한 연구를 더욱 철저히 보호하는 동시에, 일반 과제의 관리 부담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연구비 사용 내역에 연구보안관리비를 포함하고 이를 의무화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렇게 논의되고 있는 다양한 제도들을 연구현장에서 연구보안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으로 추가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먼저, 연구보안을 연구진실성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진실성은 연구자가 정직하고 책임감 있게 연구를 수행하는 기반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연구보안 체계가 자연스럽게 연구 환경에 내재화될 수 있다. 연구보안은 단순히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연구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유지하고 글로벌 협력에서 신뢰받는 연구 환경을 구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따라서 연구진실성과 보안 간의 연계성을 강조하며,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프레임워크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연구와 보안 간의 균형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연구보안은 연구 활동을 억압하거나 방해하는 요소가 아니라, 연구의 자유와 창의성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로 작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연구보안 정책은 연구자들의 창의적 활동을 보장하면서도 연구 자산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특히 연구와 보안의 균형이 깨질 경우, 연구자들이 불필요한 제약을 받거나 보안이 소홀히 다뤄질 위험이 있으므로, 정책 설계 단계에서 이러한 균형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연구보안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제도화하는 것도 안정적인 연구보안 체계를 구축하는 데 필수적이다. 연구보안 전문인력은 연구보안 정책을 실행하고 현장에서 실질적인 보호 활동을 수행하는 핵심 인력이다. 이를 위해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과 전문 자격 제도를 마련해, 연구보안을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특히, 연구기관과 정부가 협력해 연구보안 관련 직무를 제도화하고,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연구 환경 전반에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연구보안 전문기관의 설립은 연구보안 체계를 안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연구보안 문화 확산을 위해 연구 환경 전반에서 연구보안을 필수 요소로 인식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연구실 안전, 연구윤리와 함께 연구보안이 연구 활동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교육과 인식 제고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연구자들이 연구보안을 단순한 의무로 여기지 않고, 자율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인식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보안 문화는 연구 활동의 신뢰성을 높이고, 연구자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창의적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할 것이다.
연구보안 안정화를 위한 이러한 노력들은 연구 자산 보호를 넘어 국가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연구 협력에서 신뢰받는 연구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를 통해 연구와 보안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지속 가능한 연구환경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장항배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 hbchang@cau.ac.kr
장항배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 |
〈필자〉현재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 및 연구처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산업보안연구학회 학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4단계 BK21 '사이버 물리공간 청정화 연구사업단' 단장을 수행하면서, 미래 융합 공간에서의 오염요소(기술유출과 탈취, 사이버범죄 등)를 최소화하기 위한 다학제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한국공학한림원 기술경영분과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Copyright © 전자신문.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