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민간인통제구역인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변 생태탐방로에서 하늘 위로 두루미가 날고 있다. 박재민 유니버드 팀장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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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140㎞ 달려서 왔어요.”
지난 15일 오전 9시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는 부산, 울산, 평택, 오산, 수원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시민 50여 명이 모여 섰다. 민간인통제구역이 시작되는 곳에는 육중한 철문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주변 벽에 붙은 ‘나뭇잎 지뢰’와 중립국감독위원회 캠프 전경 사진 등이 과거 이곳의 엄중함을 나타내고 있었지만, 머리 위로는 ‘임진각 평화 곤돌라’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가로이 오갔다.
이른 오전부터 시민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는 바로 민간인통제선 안쪽을 걸으며 새를 만나기 위해서다. 경기관광공사가 이날 진행한 ‘임진강 생태탐방 탐조단’(이하 탐조단)의 인솔자는 바로 시민 탐조의 저변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 동영상 크리에이터 ‘새덕후’ 김어진씨(28)였다. 그가 유튜브에서 운영하는 탐조전문 채널의 구독자는 48만 명에 달한다. 이날 탐조단 모집도 추첨을 통해 진행됐는데, 신청인만 500여 명에 달했다. 현장에 모인 시민은 10대 1의 경쟁을 뚫고 선발된 셈이다.
지난 15일 민간인통제구역인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변 생태탐방로에서 동영상 크리에이터 ‘새덕후’ 김어진씨(왼쪽 두 번째 회색 옷)가 시민 50여 명이 참여하는 야생 조류 탐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경기광관공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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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사람이 오가는 남쪽보다 북쪽인 비무장지대 쪽이 훨씬 많았다. 박기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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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제출한 개인정보와 신분증 대조 검사를 마치자 철문이 열리고, 시민들이 김어진씨와 임진강변 생태탐방로 해설사들의 인솔에 따라 민간인통제구역으로 이동했다. 탐조단은 임진각에서 임진강을 따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약 9㎞ 남짓한 거리를 이동하며 야생 조류를 관찰했다. 승용차 한 대가 여유 있게 지나갈 만한 폭의 흙길 양편으로는 이중삼중의 철망이 둘러쳐져 있었다. 탐조단이 이동하는 왼편으로는 벼를 베어낸 논과 비무장지대(DMZ)가, 남쪽인 오른쪽엔 임진각 관광지와 흔한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새들은 사람이 오가는 남쪽보다 북쪽인 비무장지대 쪽이 훨씬 많았다. 탐조단이 가장 먼저 만난 새는 겨울철새 쇠기러기와 큰기러기였다. “쇠기러기는 배에 검은 무늬가 보이고, 큰기러기는 배가 그냥 하얗죠. 무늬로 구별하셔도 되고, 부리 색이 다르니 그 색깔로 구별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지난 15일 경기도 파주 임진강변 생태탐방로 근처에서 쇠기러기 무리가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 박재민 유니버드 팀장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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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경기도 파주 임진강변 생태탐방로 근처에서 쇠기러기 무리와 재두루미 가족이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박재민 유니버드 팀장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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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가 탐조 장비를 미처 갖추지 못한 시민들을 위해 단안망원경(필드 스코프)를 새에게 고정하며 설명을 곁들였다. 고고한 모습의 재두루미 가족도 종종 관찰됐다. 도심 탐조에서는 만날 수 없는 재두루미를 볼 때마다 시민들의 쌍안경과 카메라가 일제히 새를 쫓았다. 김씨는 “다리에 빨간색 가락지를 낀 재두루미들이 있는데, 이런 개체들은 러시아의 연구 기관에서 이동 경로를 알아보기 위해 부착한 것”이라고 했다. 큰기러기와 재두루미는 환경부가 정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다.
딱새와 뱁새, 때까치, 방울새, 붉은머리오목눈이, 말똥가리와 백로, 흰뺨검둥오리, 뿔논병아리까지 임진강변에 터 잡은 새는 생각보다 다양했다. “소리를 잘 들어보세요. 지금이요.” 때까치 지저귐을 알아들은 이현주(35)씨가 새로운 조류가 나타날 때마다 친절히 설명을 덧붙였다. 현역 공군이자 2살 아기 엄마인 그는 이날 탐조를 위해 새벽부터 경기도 오산에서 출발해 파주까지 왔다. ‘새덕후’ 채널의 팬이자 열렬한 탐조가인 그는 “(이런 탐조행사는)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라며 “엄청 행복하다”고 했다.
탐조단은 임진각에서 임진강을 따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약 9㎞ 남짓한 거리를 이동하며 야생 조류를 관찰했다. 박기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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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탐조는 ‘어르신 취미’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이날 탐조단의 연령은 10~40대로 폭넓었다. 전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치고 참가한 쌍둥이 자매인 박하린·박정린(19)씨는 성남에서 파주까지 대중교통만 이용해 행사에 참가했다. ‘대포 카메라’를 들고 온 박가영(31)씨는 전날 거주지 부산에서 출발해 1박 2일 일정으로 이곳을 찾았다. 그는 “올해 2월 전까지는 새를 몰랐”지만 “이제는 여행을 갈 때 탐조에 맞춰 여행지를 선택한다”고 했다.
탐조단이 이동하는 왼편으로는 벼를 베어낸 논과 비무장지대(DMZ)가, 남쪽인 오른쪽엔 임진각 관광지와 흔한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사진은 비무장지대 쪽. 박기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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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이렇게 탐조에 빠져든 이유는 뭘까. 중학교 1학년 아들, 남편과 탐조단에 참여한 최은나(45)씨는 새를 보며 자연을 가깝게 느낀다고 했다. 최씨는 “날은 춥지만 여름철새가 눈에 띄면 ‘여름이 오는구나’ 느끼고, 겨울철새가 오면 겨울이 오는 걸 알게 된다”고 말했다. 이현주씨는 “새의 종이 엄청 다양한데 제각각 행동과 습성이 다르다. 이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새에게서 시작된 관심이 나무 등 식생이나 환경 문제까지 넓어졌다고 했다. 입시생인 박하린씨도 “대학에 가서도 환경공학 등을 전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탐조단을 안내한 임혁규(62) 경기관광공사 임진강변 생태탐방로 해설사는 “민간인통제구역에서의 탐조는 일 년에 1~2차례 제한적으로 진행된다”며 “올해는 ‘새덕후 탐조단’과 ‘어린이 탐조단’ 행사 2회를 진행했는데 탐조인들의 열정이 대단했다”고 전했다.
지난 15일 민간인통제구역인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변 생태탐방로에서 유튜버 크리에이터 ‘새덕후’ 김어진씨(맨앞 회색 옷)가 시민 50여 명이 참여하는 야생 조류 탐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경기광관공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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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이 마무리 될 즈음, 하늘에는 독수리 10여 마리가 나타났다. 맹금류의 출현에 탐조단도 발걸음을 멈춰 섰다. 환경부가 지원하는 대학생·청년 동아리인 ‘생태관광 영리더스클럽 유니버드’을 이끌고 있는 박재민(21)씨는 한 가지 주의를 당부했다. 그는 “새를 보고 싶고, 찍고 싶은 마음에 너무 가까이 가면 새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게 된다”면서 “특히 비행에 많은 에너지를 쓰는 맹금류 등 대형 조류는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로 지쳐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거나 죽는 일이 발생한다”고 했다. ‘새 사랑’에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는 말이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박기용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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