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4 (일)

리밸런싱 ‘감감무소식’…희망퇴직·임차료 절감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롯데는 어쩌다 ‘지친 거인’이 됐나 [스페셜리포트]


상황이 이렇지만, 롯데그룹 안팎에서는 속도감 있는 사업 구조 재편이 눈에 띄지 않는단 평가다. 올 들어 신동빈 회장이 경고 메시지를 잇달아 내놓은 것에 비춰 이례적인 현상이다. 신 회장은 지난 1월 말 일본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에서 선택과 집중을 위한 매각으로 성장 전략 전환 의지를 명확히 했다. 이어 지난 8월 롯데지주가 비상경영 체제를 선포했다. 롯데그룹이 전사적 비상경영 체제를 가동한 것은 과거 신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휘말렸던 2018년 이후 6년 만이다. 작금의 롯데그룹 위기가 총수 부재에 버금갈 정도라는 의미지만, SK그룹 등에 비춰 속도감 있는 사업 재편 측면에선 아쉽다는 평가가 많다. 롯데 경영 전략은 기존 사업 효율성 추구, 부진 계열사 경영 진단과 매각,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인수합병 등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이 가운데 사업 구조 재편을 위한 핵심은 부진 계열사 경영 진단과 매각이지만, 수면 위로 드러난 거래는 드물다. 지금까지 겉으로 드러난 변화는 일부 비핵심 사업 정리, 부진 계열사가 희망퇴직에 나서거나 임차료를 아끼려 계열사에서 잠실 롯데월드타워를 떠나는 정도다.

매경이코노미

롯데가 거느린 자산과 계열사 대부분은 경기 변동성이 높은 소비재에 속한다. (롯데백화점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지부진한 사업 구조 재편의 이유로 크게 두 가지가 지목된다.

첫째, 롯데가 거느린 자산과 계열사 대부분은 경기 변동성이 높은 소비재에 속한다.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소비 심리 위축으로 최근 M&A 시장에서 소비재 관련 기업은 큰 관심을 끌지 못하는 분위기다.

둘째, 잠재 매물로 거론되는 계열사 상당수는 이미 현금흐름 창출 역량이 훼손된 상태다. 잠재 매수자와 매각가를 두고 이견이 클 수 있다. 이 탓에 보수적 성향이 짙은 롯데그룹 인수합병 기조와 맞물려 비주력 계열사 매각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시선이 존재한다. IB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 매각 사례를 돌아보면 외부 요인에 따른 불가피한 측면이 강했지만 전략 정렬, 사업 구조 고도화 등의 목적에서 이뤄진 매각은 찾기 힘들다”고 돌아봤다.

롯데칠성음료 주류 사업, 롯데케미칼 해외 사업, 우리홈쇼핑, 롯데알미늄, 기타 비주력 사업부 등 숱한 자산이 잠재적 매각 대상으로 IB업계 물망에 올랐지만, 진성 매각 의지는 없어 보인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IB업계 관계자는 “현금흐름이 좋은 매물은 내놓지 않고 내놓을 만한 거래 건은 시장 외면을 받고 있다”며 “미국 기준금리 인하 등으로 롯데건설발 PF 위기나 석유화학, 유통 부문 부진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보고 사실상 버티기에 들어간 분위기”라고 전했다.

롯데케미칼 LC타이탄 매각이 난항을 겪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는 게 산업계 시각이다. LC타이탄은 롯데케미칼이 지분 약 75%를 갖고 있는 말레이시아 증시 상장사다. 석유화학 기초 소재인 에틸렌,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을 주로 생산한다. 2010년 인수 뒤 기업가치가 한때 인수가의 2.5배까지 올랐으나 최근 상황은 돌변했다. 최대 구매처였던 중국 기업이 기초 소재 자립에 속도를 내면서 실적은 곤두박질쳤다. 2022년 2분기부터 적자로 돌아서더니 지난해 영업손실 612억원을 냈다. 올 상반기도 순손실 1140억원을 기록했다.

멈춰 선 지배구조 정비

신유열 ‘원롯데’ 시대 열까

매경이코노미

매경이코노미

자연스레 지배구조 재편도 뒷전에 밀린 분위기다. 롯데그룹 숙원 과제는 한일 롯데를 아우르는 통합 경영의 실질적인 구현이다. 이를 위해서는 얽히고설킨 한일 롯데 지배구조 실타래를 정리하는 게 첫 단추다.

특히 롯데그룹은 한일 간 복잡한 지배구조로 신동빈 회장의 실질적인 지배력에 제약이 따른다. 롯데 지배구조는 크게 광윤사 → 일본 롯데홀딩스 → 호텔롯데로 이어진다.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광윤사는 2015년 ‘형제의 난’ 이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신동주 회장 지분율(50%)이 동생 신동빈 회장(39%)을 앞선다. 한일 롯데 실질적 지주사는 일본 롯데홀딩스지만 현 지분 구조상 신동주, 신동빈 회장 누구도 확고한 지배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구도다. 캐스팅 보트를 쥔 쪽은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28%를 쥔 광윤사가 아니라, 종업원지주회(28%)와 임원지주회(6%)다. 현 지배구조상 종업원지주회 등이 밀어주는 인물이 한일 롯데그룹 전체를 지배한다. 이에, 롯데는 2015년부터 호텔롯데 상장을 서둘러 일본계 지분을 희석하고 한국 롯데지주와 합쳐 ‘통합 지주사’ 설립에 속도를 내려 했으나 대내외 악재로 이렇다 할 진척이 없는 상태다. 면세점 실적 부진과 일본계 주주 간 이해관계 등으로 호텔롯데 상장은 여의치 않게 됐다.

신 회장 장남 신유열 롯데지주 전무로 승계도 큰 숙제다. 롯데그룹에선 신 전무 승계 정당성 확보를 위해 신사업 성장동력 발굴에 사활을 걸었다. 신 전무는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과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을 겸한다. 다만, 신 전무의 승계 정당성 확보는 험로가 예상된다는 시각이 많다. 당장 롯데지주 주도로 지난 2022년 설립됐던 롯데헬스케어는 사실상 철수 수순을 밟는다. 롯데헬스케어는 시작부터 스텝이 꼬였다. 첫 사업 아이템은 국내 스타트업 기술 도용 의혹으로 좌초된 데 이어 유전자 검사 서비스는 제대로 성과를 못 냈다. 지난해 매출 8억원, 영업손실 229억원에 그쳤다. 롯데그룹이 헬스케어에 대해 비교적 ‘빠른 손절’에 나선 것도 당초 기대했던 성과를 내기 녹록지 않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결국 롯데바이오로직스에서 승계 교두보를 닦는 게 갈급한 과제지만, 단기간 성과를 내기 쉽지 않다는 게 산업계 시각이다. 2022년 영업손실 76억원을 낸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영업이익 48억원으로 흑자전환했지만, 경쟁사 삼성바이오로직스 영업이익(1조1137억원)과는 비교 불가다. 주력 계열사 현금흐름이 위축돼 후발 주자로 ‘닥공’ 투자에 나서기도 녹록지 않다.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산업은 규모의 경제 실현이 필수적으로 대규모 장치 산업과 속성이 유사하다. 성장 초기 시장 지위 확보를 위해 막대한 투자비를 들여야 하지만, ‘빚 줄이기’가 지상 과제인 롯데그룹 입장에선 금융권 차입을 늘리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다.

최근 재계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사모펀드(PEF) 개입으로 분쟁이 빈발한 것도 롯데그룹 입장에선 탐탁지 않다. 롯데를 비롯 대다수 국내 대기업은 3, 4세 오너 경영인으로 승계 과정에서 선대에 비해 소유 구조 관점에서 지배력이 취약한 경우가 많다. 50%가 넘는 상속세를 감안할 때 이들이 선대 경영인과 대등한 수준의 소유 기반 지배력을 승계하면서 경영권을 물려받는 것은 매우 힘들다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창업자 가문 일원이라는 상징성을 등에 업었더라도 경영 성적이 신통치 않거나 지배구조 논란이 불거지면 전략적·재무적투자자 등 여러 이해관계자로부터 승계 정당성을 집중 공격받을 수 있다. 신 전무 역시 지배력이 취약하다. 신 전무는 지난 6월 처음 롯데지주 지분 7541주를 사들였다. 규모는 약 2억원 수준에 그친다.

지배구조 정비에 병목이 생긴 가운데, 롯데지주 자사주(32.5%)를 향한 시장 시선이 따가운 점도 그룹 입장에선 부담스럽다. 롯데그룹은 2017년 롯데지주 설립 과정에서 자사주를 보유하게 됐다. 국내 상장 대기업 가운데 자사주 보유 비중이 가장 높은 편이다. 밸류업 기조가 거센 작금의 상황에 비춰 자사주를 오너 일가 지배력 확대에 썼다간 거센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롯데그룹은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2018년 11월 보통주 소각(1165만7000주·10%), 2022년 2월 우선주 소각(18만2020주·18.43%)을 단행했다. 현재까지 이렇다 할 밸류업 공시는 내놓지 않고 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4호 (2024.11.13~2024.11.19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