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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 (목)

디지털로 숨어든 핵실험…세계 최강 슈퍼컴 판세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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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 슈퍼컴퓨터 자리에 오른 미국 로렌스리버모어 국립연구소의 ‘엘 캐피탄’. 로렌스리버모어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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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핵 억제력 유지를 위해 핵무기 시뮬레이션(모의실험)용으로 제작한 컴퓨터가 세계 최고의 슈퍼컴 자리에 올랐다.



독일 만하임대, 미국 테네시대, 미국 국립에너지연구과학컴퓨팅센터(NERSC) 등으로 구성된 ‘톱500(TOP500) 프로젝트’가 최근 ‘2024 슈퍼컴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세계 슈퍼컴 순위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로렌스리버모어국립연구소가 올해 설치한 ‘엘 캐피탄’(El Capitan)이 1.742엑사플롭스의 성능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는 1초에 172경4200조번 연산을 수행할 수 있다는 걸 뜻한다. 이 연구소는 미국 3대 핵무기 연구소 가운데 하나다.



지난 2년 반 동안 슈퍼컴 1위를 유지했던 오크리지국립연구소의 프런티어는 2위로 밀려났다. 프런티어는 2022년 처음으로 엑사급(1초에 100경번 연산) 슈퍼컴 시대를 연 주인공이다. 프런티어의 현재 연산 능력은 1.353엑사급(1초에 135경3000조번)이다.



슈퍼컴 3위인 미국의 오로라도 엑사급 성능을 기록했다. 오로라는 1.012엑사급(1초에 101경2000조번) 연산 능력을 갖춘 슈퍼컴으로 지난해 아르곤국립연구소에 설치됐다.



이로써 미국은 엑사급 성능을 갖춘 슈퍼컴 3대를 모두 보유하고 있는 나라이자, 엑사급 슈퍼컴을 보유한 유일한 나라의 지위를 갖게 됐다. 3개의 엑사급 슈퍼컴은 모두 휼릿패커드가 제작했다.



전문가들은 중국도 엑사급 슈퍼컴퓨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성능 공개 측정을 꺼리고 있어 순위에 들어 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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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캐피탄에 쓰인 AMD의 가속처리장치(APU). 가속처리장치는 중앙연산처리장치인 CPU와 그래픽을 처리하는 GPU를 하나의 칩에 통합한 것이다. 로렌스리버모어국립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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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안에서 벌어지는 핵무기 경쟁





슈퍼컴 1위에 오른 엘캐피탄은 복잡하고 다양한 과학적 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되는 다른 엑사급 슈퍼컴과 달리, 물리적 핵 실험 없이 미국의 핵 억제력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방대한 핵폭발 시뮬레이션을 수행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에너지부의 산하 기관으로 엄격한 보안 아래 핵무기의 안전성과 보안성, 효율성 연구를 전담하는 국가핵안보국과 협력해 제작했다. 국가핵안보국은 지난 2000년 에너지부에서 핵 기밀이 중국으로 유출됐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설립됐다.



1만1000개가 넘는 코어와 5.4375페타바이트(1페타=1000조)의 메모리를 갖춘 엘캐피탄은 지금까지 이 연구소에서 가장 강력한 슈퍼컴이었던 시에라보다 20배 이상 높은 컴퓨팅 성능을 갖추고 있다. 2018년 이 연구소에 설치된 시에라의 최대 성능은 125페타플롭스(1초에 12경5000조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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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캐피탄의 블레이드 서버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 로런스리버모어국립연구소 제공




핵실험 중단이 슈퍼컴 성능 향상 촉진





로렌스리버모어연구소는 “시에라에서 몇달이 걸리는 핵 폭발의 복잡한 고해상도 3D 시뮬레이션을 엘캐피탄에서는 몇시간 또는 며칠만에 수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재료, 제조 결함, 환경 변수 같은 다양한 요인을 통합해 핵무기 시스템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으므로 더 정확한 예측과 더 나은 의사 결정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1992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핵무기 실험 중단을 선언한 이후 컴퓨터를 통한 시뮬레이션으로 핵실험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서는 이전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고성능의 슈퍼컴퓨터가 필요했다. 1초에 100조번 이상의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100테라플롭스급 슈퍼컴퓨터시대는 이렇게 시작됐다. 핵실험 중단이 본격적인 슈퍼컴 시대를 열어준 셈이다.



2008년 아이비엠(IBM)이 만든 최초의 페타플롭스(1초에 1000조번 연산)급 슈퍼컴도 오래된 핵무기의 성능을 점검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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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성능이 가장 좋은 슈퍼컴퓨터 세종이 설치돼 있는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의 서버실. 네이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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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00위 안에 9대…네이버 슈퍼컴 40위 최고





한국에선 모두 9대의 슈퍼컴퓨터가 세계 100위 안에 들어 있다.



네이버가 두번째 데이터센터인 ‘각 세종’에 구축한 슈퍼컴퓨터 세종(32.97페타플롭스, 이하 단위 생략)이 40위로 가장 높은 순위에 올라 있다. 세종은 주요 선진국들의 슈퍼컴 투자가 활발해짐에 따라 직전보다 세계 순위가 15단계나 하락했다. 슈퍼컴 순위는 매년 5월과 11월에 발표된다.



이어 △카카오 엔터프라이즈의 카카오클라우드(32, 슈퍼마이크로 제조)가 41위 △삼성전자의 SSC-21(24.38)이 48위 △에스케이텔레콤의 타이탄(19.53)이 63위 △기상청의 구루(18)가 73위 △기상청의 마루(18)가 74위 △카카오 엔터프라이즈의 카카오클라우드(15.94, 에이브레스 시스템즈 제조)가 87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국가 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13.93)이 92위 △엔에이치엔 클라우드의 광주AI(12.84)가 98위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6년을 목표로 최근 이론성능 기준 600페타플롭스(PF)급의 국가 슈퍼컴 6호기 구축 작업에 나섰다. 6호기가 완성되면 2024년 기준으로 한국도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슈퍼컴을 보유하게 된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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