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일 ‘가난한 사람들 병원 가지 말라는게 ‘약자복지’? 의료급여 정률제 개악 철회 촉구 기자회견’ 모습. 빈곤사회연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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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모 | 강원도의 왕진의사
‘기울어져서 안전기준상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집’에 사는 윤호(가명)님은 60년 가까이 흡연을 했다. 천식도 있는 터라 금연을 권했지만 늘 거부했다. 혹시 모르니 건강검진 할 때 폐 시티(CT)를 꼭 찍어보라 권했다. 종합병원에서 검사 결과를 듣고 온 날. 그는 결과를 묻는 내 앞에서 손을 덜덜 떨었다. 폐암이었다. 그날 바로 담배를 끊었다. 그리고 지난 일년간 항암치료를 정말 열심히 받았다. “항암을 받으니까 전에 아프던 게 그냥 좋아졌어. 머리 아프다, 허리 아프다 했던 게 전혀 생각이 안 나. 자연치유 됐어! 하하.” 항암치료 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으나 그 웃음으로 고통을 지울 순 없었다. 항암치료를 받고 퇴원한 날이면 우리는 일부러 그의 집을 찾아가 식사도 못 한 채 누워 있는 그를 위로하고 영양주사를 놓아드렸다.
그의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방바닥에는 검은 부스러기가 있었다. 초코파이 부스러기인 줄 알고 손으로 쓸어내려다 깜짝 놀라 멈췄다. 쥐똥이었다. 그는 “주워 먹으면 큰일 나”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진료를 마치고 그의 집을 나올 때면 반드시 옷을 털어야 했다. 방 안의 진드기가 옷에 옮기 때문이다. 한번은 방문진료 차량에 먼저 탔던 최 간호사님이 갑자기 차 문을 열고 튀어나오면서 풀쩍풀쩍 뛴 적이 있다. 깜짝 놀라 달려가 보니 웃옷에 깨알 같은 검은 점이 보였다. 전날 윤호님의 방 안에 있던 진드기였다.
항암치료로 면역기능이 떨어지면 이런 주거 환경이 좋지 않아 이사를 권했지만 마다했다. ‘긴급 주거지원 서비스라도 알아볼 테니 그때까지만이라도 시내에 있는 지인분 댁에 가 계시라’ 했지만 나라에 더 이상 신세 질 수 없다며 극구 사양했다. 그가 ‘더 이상’이란 말을 쓰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처음 항암치료를 시작할 때는 영양주사를 맞고 싶어도 부담이 되어 맞지 못했다. 간병비가 이미 수십만원이 넘는 상황이라 급여가 안 되는 영양주사를 맞는 건 그림의 떡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 병실에 입원하면서부터 간병비 부담이 사라졌다. 덕분에 입원 중에도 영양주사를 맞을 수 있었다. 그는 그것을 나라 덕분이라 말했다. 나는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하는 걸 하는 거고 어르신은 받아야 하는 걸 받는 거’라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완치되면 뭘 하고 싶으세요?’ 물었을 때 그는 어머니 산소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묘가 산등성이에 있어 산길을 올라가야 하는데 숨이 차서 올라가지 못한다며 건강이 좋아지면 맨 먼저 찾아가고 싶어 했다. 그는 결국 어머니 산소에 가보지 못했다. 항암치료를 받는 중에 돌아가신 것이다.
윤호님과 같은 기초생활 수급자의 치료비를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바꾼다는 소식이 들린다. 항암치료를 위한 입원비가 2만원이 나오지 않는다던 윤호님은 그나마 운이 좋았다. 정률제에서라면 못해도 수십배에 해당하는 입원비를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지난겨울. 그는 자신의 시골집이 아니라 시내 지인 집으로 방문진료를 와달라 했다. 강추위로 그가 홀로 살던 시골집의 수도관이 터졌기 때문이다. “항암치료 받으려면 단백질 보충을 잘해야 한다고 해서 돈 모아둔 거 고기 먹는 데 다 썼어. 그래서 수도관 파열된 거 고쳐야 하는데 공사를 못 하고 있어. 돈이 없어서.” 정액제 아래에서도 그의 삶은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병원비가 아니라 병원에 갈 경비가 부담스러워 병원에 가지 않는 윤호님들도 수없이 봐왔다. 정률제로 바뀐다면 그들은 치료를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할 테지만 그들의 포기는 정부의 통계에 절대 잡히지 않을 것이다.
냉정히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결국 추락한다. 다만, 추락하는 방식을 조금 바꿀 순 있다. 서로가 서로를 붙들며 저 바닥으로 떨어지고 싶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그의 틀니 비용을 지원해준 분도 있었고 씹지 못했던 그를 위해 먹기 편한 음식을 일부러 챙겨서 매주 찾아와준 생협 조합원도 있었다. 하지만 늘 잘되지 못했다. 그래서 이 가을, 한잎 한잎 낙엽이 홀로 떨어지는 모습이 참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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