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2 (금)

배움·휴식을 동시에…‘워케이션’ 이어 ‘런케이션’ 뜬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국제호텔직업전문학교 학생·교수들이 지난달 17일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 아바이마을에서 이북식 만두를 빚는 체험을 하고 있다. 속초도시재생지원센터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북식 만두는 숙주 대신 콩나물을 넣은 것이 특징입니다. 크기도 어른 주먹만해 국그릇에 만두 1개만 넣고 육수를 부은 뒤 으깨서 국처럼 만들어 먹습니다.”



지난달 17일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 아바이마을에서 심삼옥(59) 위드피스 대표가 사람들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며 말했다. 국제호텔직업전문학교 학생·교수 35명은 커다란 만두피 위에 속 재료를 넣는 등 심 대표의 말을 따라 했다. 이들이 빚어놓은 이북식 만두는 반달 모양부터 주머니, 별, 삼각형까지 다양했다.



실향민 2세대인 심 대표는 이북식 만두를 빚으면서 아바이마을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한국전쟁 때 남쪽으로 피난 왔다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실향민들이 아바이마을을 꾸렸다. 고향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겠다며 38선 이북 수복지구인 속초의 주인 없는 땅인 백사장에 하나둘 모여든 것이다. 당시엔 금방 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70여년이 흘러 1세대들은 대부분 타향에서 눈을 감았다”며 안타까워했다.



학생들은 이날 점심으로 자신들이 만든 이북식 만두를 맛보고 심 대표의 안내를 받으면서 아바이마을을 찬찬히 둘러봤다. 이어 맥주 만들기 동호회에서 시작해 수제맥주 협동조합까지 만든 것으로 유명한 ‘크래프트유니온 협동조합’을 찾아가 창업 과정에 관해 설명을 듣고 수제맥주 제조 과정도 배웠다.



최윤준(21) 학생은 “인스타 유명 맛집과 관광지를 찾아가 인증샷만 남기고 떠나는 겉핥기식 여행이 아니라 직접 주민들을 만나 지역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배우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아바이마을이 실향민 마을이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며 웃음 지었다. 학생들을 인솔한 박선희 국제호텔직업전문학교 부학장도 “학생 상당수가 수도권 출신인데 지역과 친밀하게 소통하는 경험을 통해 지역에 애정이나 친밀감이 생기면, 취업과 정착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소멸위기를 겪는 지역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그림 할망으로 유명한 제주시 조천읍 선흘 지역에서 국민대 대학원생들이 선흘 할망을 주제로 한 작품 활동과 지역 문화현장 조사, 지역의 숨은 장소 탐방 등을 진행하는 런케이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습. 제주시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워케이션 이어 런케이션이 뜬다





코로나19 발병 이후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워케이션’을 통한 생활인구 유치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런케이션’이 주목받고 있다.



워케이션은 일(work)과 휴가·여행(vacation)의 합성어로 집이나 사무실이 아닌 곳에 머물면서 일을 병행하는 ‘지역 체류형’ 근무 제도다. 반면 런케이션은 배움을 뜻하는 러닝(learning)과 휴가·여행(vacation)을 합친 말로 ‘교육관광’을 뜻한다. 배움과 휴식이 공존하는 여행에 대한 선호도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단순 관광을 넘어 해당 지역의 특색 있는 문화·역사 등을 학습하며 여행지를 좀 더 깊게 이해하고 체험하고 싶어 하는 국민들의 욕구를 반영한 새로운 흐름이다. 특히 워케이션은 주로 직장인으로 대상이 한정되지만 런케이션은 직장인뿐 아니라 학생과 퇴직자, 주부, 청소년 등 교육관광에 관심 있는 다양한 계층으로 유치 대상을 확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한겨레

제주도·경희대·제주대가 지난 7일 런케이션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하는 모습. 제주도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흐름에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하는 곳은 제주도다. 2021년부터 추진한 워케이션 사업으로 성과를 거둔 제주도는 최근 런케이션 사업에 눈을 돌렸다. ‘섬으로 떠나는 일과 쉼의 휴양지’라는 제주도 워케이션의 목표를 교육 분야까지 확장하겠다는 취지다.



제주도가 주목하고 있는 대상은 ‘대학생’이다. 제주 지역 대학의 계절학기를 활용해 다른 지역 대학생들에게 학점 취득과 함께 제주의 관광·문화·레저 등을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제주에 대학생들을 유치하는 것이 목표다. 제주도는 지난 7월 중앙대·제주대와 업무협약도 한 데 이어 지난 7일 경희대와도 협약했다. 제주도는 국내 대학생 런케이션 유치 인원을 내년 2천명, 2026년 3천명으로 점차 늘려나갈 포부를 갖고 있다.



런케이션이 활성화되면 제주대는 학생 수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제주도는 타 지역 학생이 지역에 머물게 돼 생활인구 증가에 따른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특히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제주도를 경험한 학생들이 나중에 제주에 취업하거나 이사할 가능성도 있다. 황경선 제주도 청년정책담당관은 “워케이션에 이어 런케이션까지 활성화되면 제주는 관광지를 넘어 젊은 인재들이 배우고 성장하는 교육의 섬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속초시도 워케이션에 이어 런케이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한국관광공사 강원지사와 속초문화관광재단, 속초도시재생지원센터가 협업해 런케이션 사업을 시작했다. 엄기동 속초시 도시재생지원센터장은 “지역의 특성을 잘 살린 교육관광이 활발해지면 생활인구 유입이 활성화돼 지역소멸에 대응할 수 있는 중요한 관광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횡성군과 횡성문화관광재단이 지난 9월 스포츠와 휴식을 결합한 지역 체류형 관광 프로그램인 ‘스포츠 런케이션’을 진행하는 모습. 횡성문화관광재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스포츠·외국인…런케이션은 확장 중





강원도 횡성군은 ‘스포츠’에 특화된 런케이션을 시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횡성에 있는 다양한 스포츠 시설에서 배우고, 나머지 시간에는 지역 관광지를 여행하는 프로그램으로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횡성군은 지난 9월 80명을 대상으로 1명당 5만원만 내면 1박2일 동안 전문 강사에게 수영과 볼링 등 스포츠를 배운 뒤 호수길 도보 여행, 루지, 전통시장 장보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해 인기를 끌었다. 횡성은 이달에는 지역에 있는 한국골프과학기술대학교, 웰리힐리파크 골프장과 함께 개인별 골프 스윙 분석과 맞춤형 교정, 실습을 하고 미니 대회까지 치르는 골프를 주제로 한 런케이션을 진행할 계획이다. 원련경 횡성문화관광재단 관광사업팀장은 “횡성 관광지 순위 상위 10개 가운데 5개가 스포츠 관련 관광지일 정도로 횡성은 수려한 자연환경뿐 아니라 우수한 체육시설 기반이 잘 갖춰져 있다. 관광에도 교육적인 요소가 중요해졌다”고 귀띔했다.



한겨레

한국을 찾은 독일 학생들이 지난 9월 전라북도 전주시 청을전통문화원에서 케이(K)푸드인 비빔밥 만들기를 체험 중인 모습. 한국관광공사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런케이션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경기도 고양시는 지난 9월 중부대 외국인 유학생 50명을 대상으로 행주산성에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배우는 ‘런케이션 투어’를 진행했다. 외국인 유학생들은 전통의상인 한복을 입고 방향 주머니 만들기와 주먹밥 만들기·맛보기 등과 같은 체험을 진행했으며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행주산성의 야경을 즐겼다. 고양시는 지난 5월에는 한국항공대 외국인 유학생 60명을 대상으로 런케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성원 고양시청 관광정책팀장은 “지역을 홍보하자는 취지로 런케이션을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다. 외국인 유학생들은 단순하게 둘러보는 여행이 아니라 현지 문화를 즐기고 경험해보고 싶어 하는 관광 욕구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추진 중인 런케이션 유치 전략이 세계시장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케이(K)팝, 케이드라마, 케이푸드 등이 인기를 끌면서 런케이션을 목적으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 학생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관광공사에 확인해보니 지난 3월9일부터 18일까지 미국 하버드대학교 오케스트라 동호회 학생 95명이 한국을 방문하는 등 11월20일 현재 2천명 이상이 방한했으며 연말까지 1천명 정도가 더 한국을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백지혜 한국관광공사 구미대양주팀장은 “한국을 직접 방문해 문화 전반을 배우려는 젊은층이 급증하면서 제트(Z)세대 학생 단체의 런케이션 목적지로 한국이 급부상하고 있다. 국내 교육기관 및 지역 관광정부와 협업해 우수한 런케이션 콘텐츠를 발굴하고 해외에 홍보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핫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