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낮부터 저녁까지 교통마비
시민들, 경찰 붙잡고 “언제 끝나요?”
민주노총과 전국농민회총연맹이 주축이 된 ‘윤석열 정권 퇴진 운동본부’ 등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윤석열 정권 퇴진 2차 총궐기’ 집회를 열고 있다. 이 집회로 평일 오후 서울 도심은 교통 혼잡을 빚었다.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1만명, 경찰 추산 6000명이 참가했다. /장련성 기자 |
민주노총과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등이 주최하는 대규모 반(反)윤석열 대통령 집회가 평일인 20일 서울 도심에서 열리면서 인근 직장인과 시민들이 업무와 출·퇴근길에 불편을 겪었다. 시위대가 이날 오후 1~5시 집회를 신고하면서 오전부터 서울 광화문·시청 일대 교통이 통제됐고, 퇴근 시간엔 시위대가 해산을 거부하고 경찰과 대치하면서 서울역 등 도심 일대 교통이 마비됐다. 여기에 서울지하철 노조 태업이 이틀째를 맞으면서 시민들은 “출·퇴근길이 지옥이 됐다”고 호소했다. 지난 9일에 이어 2차 윤 대통령 퇴진 집회를 연 민노총 등은 다음 달 7일 대규모 3차 집회를 열 계획이다.
민노총이 주도하는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와 전농 등 8개 농민 단체가 모인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 길’은 이날 오후 3시부터 서울 중구 숭례문 앞 편도 전 차로를 점거하고 ‘2차 퇴진 총궐기 대회’를 열었다. 시위대는 “우리가 갑오 농민군이다. 우리가 백남기다. 우리가 전봉준이다. 우리가 하늘이다”라며 “전봉준 정신으로 윤석열을 몰아내자”라는 구호를 외쳤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 얼굴 사진이 걸린 허수아비도 있었다. 김 여사 허수아비엔 명품 ‘디올’ 쇼핑백이 걸려 있었다.
20일 오후 서울 숭례문 앞 도로에서 민주노총과 전국농민회총연맹 등이 속한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가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2차 총궐기 집회를 열고 있다. 일부 참가자들이 소주병을 준비해 술을 마시고 있다. /장련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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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20분쯤 태평로 삼성본관 앞에는 집회 참가자 8명이 둥글게 둘러 앉아 소주 3병과 치킨, 말린 안주, 귤 등을 나눠 먹고 있었다. 일부는 금연 구역으로 지정된 장소에서 흡연한 뒤 담배꽁초를 길가에 버리기도 했다. 한 참가자가 길거리에서 캔맥주를 마시자 경찰은 “여기서 드시면 안 된다”며 제지했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가면을 쓴 사람들이 죄수들이 입는 소복을 입고 함거로 꾸민 트럭 위에 갇힌 채 끌려가는 ‘압송 퍼포먼스’도 펼쳤다. 윤 대통령 가면을 쓴 사람은 소주병을 들고 연신 마시는 시늉을 했다.
이날 양경수 민노총 위원장은 “농민들은 싹수가 노란 종자는 뽑아버리고, 쓸데없어진 논밭은 갈아엎어 버리지 않습니까”라며 “싹수가 노란 대통령 뽑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다. 이어 “농민들은 전봉준 장군의 정신으로 백남기 농민의 뜻을 잇기 위해 윤석열 정권 퇴진 투쟁에 나섭시다”라고 했다. 사물놀이패가 징과 북, 꽹과리 등을 울렸다.
숭례문 앞에서 집회를 마친 시위대는 “용산 대통령실까지 행진하자”며 윤석열 대통령을 규탄하는 의미의 상여 2대를 앞세우고 서울역 방면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남대문경찰서 앞에 시위대가 닿았을 때 집회 신고 시각인 오후 5시가 됐다. 경찰은 “더 시위를 진행하면 불법 집회”라고 했고, 시위대는 “폭력 경찰 물러가라”며 1시간가량 대치했다. 이 과정에서 상여에 불이 붙어 경찰이 소화기로 진화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윤석열 관(棺)이야” 목소리도 들렸다.
인근 직장인과 시민들은 평일 출·퇴근 시간에 영향을 끼치는 이날 불만을 호소했다. 서울 중구 태평로빌딩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방모(52)씨는 “집회 소음 때문에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다”며 “고객과 대화를 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잘 안 들려 소통이 어렵고, 반복되는 악기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다”고 했다. 직장인 홍모(28)씨는 “창문을 닫았는데도 대형 스피커에서 나오는 구호와 꽹과리·북소리가 계속 들려서 너무 힘들다”며 “점심 시간에도 시위대와 경찰 버스가 곳곳에 몰려 불편했는데, 퇴근길엔 지하철 태업까지 겹쳐 암담하다”고 했다. 대학생 박진우(28)씨는 “덕수궁 관람을 마치고 나왔는데 평화로운 궁궐 안과 달리 시위대와 경찰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이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
이날 오후 5시 40분쯤 집회 신고 시각을 초과하고도 해산 명령을 거부한 집회 참가자들로 서울역과 남대문경찰서 일대는 마비가 됐다. 시민들은 경찰을 붙잡고 “대체 언제 끝나요” “정류장이 어디예요”라며 항의했다. 서울역 일대는 시내버스와 경기도 광역버스 등이 모이는 곳으로 평소에도 매우 붐빈다. 서울역 앞 정류장은 경찰 차량 십수 대가 1개 차선을 통제하면서 차량들이 늘어서 도로가 주차장처럼 보였다. 서울시 교통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기준 숭례문~시청역 구간 세종대로 차량 속도는 시속 2km까지 떨어졌다. 일대 버스 정류장이 통제되고 간이 정류장이 설치되면서 한 중년 여성은 “정류장은 대체 어디란 거야”라며 뛰어다니기도 했다. 경찰은 이날 세종대로 일대에 기동대 7000여 명과 교통 경찰 170여 명을 배치해 차량 우회 등 교통 관리에 나섰다.
시위대는 오후 5시 50분쯤 해산을 선언했지만 지하철 태업과 겹치면서 퇴근길까지 후폭풍이 이어졌다. 직장인 이모(29)씨는 “집회에 대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안내를 받았지만 버스, 지하철 어느 하나 정상 운행을 하지 않아 너무 불편하다”며 “4호선 배차 간격은 평소보다 두 배쯤 늦어졌고, 버스를 타지 못하고 지하철역까지 걸어가 평소보다 퇴근 시간이 2배는 걸릴 것 같다”고 했다. 직장인 김모(33)씨는 “용산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서 버스를 타야 하는 건지 몰라 헤매고 있다”며 “20분이면 가는 거리가 한 시간을 걸릴 것 같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 등 야당도 이날 도심에서 별도 집회를 개최했다. 민주당은 오전 11시부터 광화문 광장에서 ‘김건희 여사 특검법 관철을 위한 2차 비상행동’을 열고 시민들에게 특검법 촉구 서명을 요청했다. 집회에는 백혜련·박홍근·정성호 의원 등 10여 명이 참석했다. 조국혁신당은 이날 오전 10시 광화문광장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초안 공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은 크나큰 비극이지만 배가 전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술 취한 선장을 끌어내리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서보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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