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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 (목)

[만물상] "한국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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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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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기 전만 해도 한반도는 희망을 찾기 위해 벗어나야 할 땅이었다. 1900년대 초 이 땅의 청년들은 먹고살 길을 찾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떠났다. 그들이 보내온 사진 한 장으로 맞선을 보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이민선에 오른 여성을 ‘사진 신부’라 했다. 탈(脫)한국은 우리 소설과 영화의 주요 테마이기도 했다.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나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에 나오는 ‘뿌리 뽑힌 한인의 삶’은 불과 반세기 전까지도 우리 모습이었다.

▶지금은 반대다. 지난해 한국행 이민자 증가율이 50.9%로 OECD 기준 세계 2위를 기록했다는 외신 뉴스가 나왔다. 전체 이민자 수는 118만명을 기록한 미국이 압도적 1위지만, 이민자 증가 속도만 보면 52%인 영국과 수위를 다툰다. 외국인 입국자 수가 한국인 출국자 수보다 12만명 많다는 통계도 있다. 한국이 ‘떠나고 싶은 나라’에서 ‘가서 살고 싶은 나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외국에 나가보면 한국을 보는 시선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 있다. 몇 해 전 동남아에 출장 간 한 회사원은 현지인에게서 “한국인이라니 부럽다”는 말을 들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이는 “한국 사람은 시간은 없지만 돈이 많고, 스페인 사람은 시간은 많지만 돈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많은 외국 젊은이가 K팝 아이돌을 꿈꾸며 한국행 비행기를 탄다.

▶소셜미디어에도 한국 상찬이 넘친다. 젊은 여성이 밤늦게 한강변을 거닐며 “여기는 안전한 한국”이란 글을 올리면 엄지 척으로 공감하는 이모티콘이 쏟아진다. 소매치기에 익숙한 유럽인들은 휴대전화를 자리 맡아 두는 용도로 쓰는 한국의 카페 풍경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높은 의료 품질과 편리한 대중교통, 깨끗한 화장실도 찬사를 듣는다. 한 외국인은 “한국은 모든 게 선진국”이라고 했다.

▶지난해 국내 외국인 거주 비율이 4.8%에 다다랐다. 전문가들은 본격적인 개방 국가의 길에 들어섰다는 징표라고 한다. 공공장소에서 히잡 착용 금지를 두고 논란을 빚는 프랑스처럼 전에 없던 갈등도 겪게 될 수 있다. 어떤 경우건 반세기 전만 해도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미래다.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가 흘린 피땀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온통 장밋빛은 아니다.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엔 기회의 문이 닫히며 취업과 결혼, 내 집 마련의 미래를 꿈꾸지 못하고 호주로 떠난 청년들의 좌절이 그려져 있다. 모두가 희망을 꿈꿀 수 있어야 진짜 살고 싶은 한국일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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