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유치원생 딸을 홀로 키우던 30대 싱글맘이 사채업자의 불법 추심과 고금리 압박에 시달리던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 여성이 빌린 돈은 수십만원이었지만, 이자는 한 달도 안돼 1000만원 넘게 불었다고 한다. 연이율은 수천%에 달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며 “불법 추심을 뿌리 뽑고, 금융 당국은 서민금융지원 정책을 전면 재점검해 서민이 불법 사채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왜 이 여성은 불법 사채의 덫에 빠지게 된 것일까.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리지 못해 제도권 밖으로 밀려났을 가능성이 크다. 저소득·저신용 취약계층이 1금융권인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나마 희망을 걸어볼 만한 곳이 저축은행·카드·캐피털사 등 2금융권인데, 여기서도 대출이 막히면 손을 내밀 곳은 대부업권, 불법 사금융뿐이다.
문제는 서민 급전 창구인 2금융권 신용대출과 카드론, 현금서비스를 받는 것마저 쉽지 않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 당국은 가계대출 ‘풍선 효과’가 현실화하자 2금융권 대출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금융 당국은 카드론 잔액이 심상치 않게 불어나자 카드사에 연말까지 월별 목표치를 제출하도록 했으며, 캐피털사에도 같은 주문을 했다. 한도 이상의 대출은 취급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제도권 금융의 ‘마지노선’인 대부업권에서 돈을 빌리는 것도 녹록지 않다. 최근 들어 대부업체들이 대출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업체 신용대출은 2022년 9월 10조3453억원에서 올해 9월 8조594억원으로 20% 이상 줄었다. 이 기간 신규 대출을 내준 대부업체 수는 59곳에서 37곳으로 감소했다. 고금리 여파에 자금 조달 비용은 늘어난 반면, 법정 최고 금리(연 20%) 규제로 수익성이 악화하자 대출을 더는 늘리지 않는 것이다.
돈을 빌릴 곳이 사라지자, 저소득·저신용 취약계층은 불법 사금융을 찾고 있다. 서민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대부업체에서 불법 사금융으로 이동한 저신용자(6~10등급)는 최대 9만1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중 77.7%는 불법인지 알면서도 돈을 구할 길이 없어 불법 사금융을 이용했다고 답했다고 한다. 30대 싱글맘 역시 2금융권, 대부업권에서 마저 밀려나 어쩔 수 없이 불법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과제는 ‘가계부채 관리’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세계 30위권 국가 중 상위 5번째면 관리가 필요한 것은 맞다. 그러나 가계부채를 줄이겠다며 무작정 이곳저곳 누르다 보면 결국 풍선은 터진다. 갈 곳을 잃은 이들은 법의 테두리 밖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서민 대출을 조이고, 대부업권에 채찍만 드는 것은 오히려 더 많은 이들을 사채의 덫에 빠지게 만들 수 있다. 30대 싱글맘과 같은 가슴 아픈 사연을 또다시 듣지 않기 위해선 그 어느 때보다 금융 당국의 세심한 정책 설계가 필요할 것이다.
김보연 기자(kby@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