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서울지하철 9호선 선정릉역 승강장에서 강유정 역무원이 관제와 무전 중이다. 나홀로 근무 중 관제에서 객실 내 흉기소지자나 난동자를 확인해달라는 요청이 있을 때면 두렵기만 하다. 공공운수노조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신정임 | 작가·‘우리 같이 노조 해요’ 저자
지난 13일 오후 6시, 사람들로 가득한 서울지하철 9호선 선정릉역 승강장. 급행열차가 들어오자 사람들이 쏟아져 내리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우르르 열차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으로 내려오다가 도착한 열차를 보고선 뛰어든 환승객들까지 모두 탑승하니 강유정(27) 역무원이 양팔로 크게 원을 그리며 초록 불빛 깜박이는 안전봉을 흔들었다. 그제야 열차가 출발했다.
퇴근 시간 계속해서 밀려오는 승객들을 안내하던 중 유정씨가 착신을 돌려놓은 휴대전화로 민원전화를 받는다. 카드 오류로 게이트 통과가 안 된다는 승객의 연락이었다. 그는 “잠깐만 기다리세요”라고 말한 뒤 바로 에스컬레이터를 성큼성큼 걸어 올라가 승차장으로 갔다. 승객에게 처음 탑승한 역을 확인하며 카드 단말기로 정산하고 있는데 캐리어를 들고 온 외국인이 지하철 일회용 교통카드 보증금 환급기 앞에서 두리번거린다. 유정씨는 익숙한 듯 능숙하게 보증금 환급을 돕는다. 다시 무전기에서 ‘띠릭’ 소리와 함께 관제실의 분실물 확인 연락이 들어왔다.
지난 13일 서울지하철 9호선 선정릉역 승강장에서 강유정 역무원이 장애로 꺼진 에스컬레이터를 켜고 있다. 노후화된 에스컬레이터는 하루 두세번씩 멈추기에 자주 순회하며 확인해야 한다. 공공운수노조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공공위탁 전환…현실은 바뀌지 않아
한때 ‘지옥철’로도 불렸던 서울지하철 9호선은 1단계 강서 구간(개화역-신논현역), 2단계 강남 구간(언주역-종합운동장역), 3단계 강동구간(종합운동장역-중앙보훈병원역) 등 단계별로 개통을 해왔다. 그런데 하나의 선로로 연결돼 있는 9호선 1단계와 2·3단계 구간의 역무 관리 및 선로 유지보수운영 업무를 담당하는 업체가 다르다. 1단계 구간은 (주)서울메트로9호선이 맡고 있고, 2·3단계 구간은 2018년부터 민간위탁으로 운영되다가 2023년 10월부터는 공공위탁으로 전환됐다. 서울지하철 1~8호선을 담당하는 서울교통공사가 위탁받아 ‘서울교통공사9호선운영부문’이란 사내기업 형태로 관리되면서 서울교통공사의 운영은 보다 확실해졌다.
서울시는 공공위탁으로 전환하면서 공익성을 추구하겠다고 밝혔지만 1년을 넘긴 지금까지 9호선 2·3단계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유정씨는 “말만 공공위탁이지 위·수탁 계약 당시 정한 인원이 바뀌지 않는 건 똑같다”고 전했다. 서울교통공사에 편입됐지만 사내기업 형태여서 인사, 복리규정 등을 다르게 적용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역무원들은 4개월 전까지 6인 4교대로 돌아가 야간에 무조건 혼자서 근무했다.
“밤엔 주취자가 위협을 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승객이 주먹을 휘두르면서 다가와 경찰을 부른 적도 있지요. 또, 0시 38분에 막차를 보내면 승강장에 남은 승객들을 다 내보내고 각 출구의 문을 잠급니다. 그런데 역이 워낙 넓어서 구석에서 자다가 뒤늦게 나온 승객과 마주치는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겁이 덜컥 나죠.”
밤에 혼자서 근무하다가 “내가 여기서 사라져도 아무도 모르겠구나”란 생각을 한 적도 있다는 유정씨는 2022년에 일어난 신당역 살인사건이 남 일 같지 않아서 야간근무 때 화장실에 되도록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서울지하철 9호선 선정릉역 승강장에서 강유정 역무원이 카드 미처리 승객을 안내하고 있다. 9호선은 환승 시에 따로 태그하기 때문에 환승역사인 선정릉역에서는 하루 50번도 넘게 들어오는 민원이다. 공공운수노조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여전한 1인 근무, 위급상황 대처 못 해
역무원의 근무형태가 지난 7월15일부터 3조2교대로 바뀌었지만 인원이 부족한 건 여전하다. 역마다 6명의 역무원이 2명씩 3조로 나뉘어 주간-주간-야간-야간-비번-휴무를 번갈아 근무해야 하지만 교육, 지정휴무, 연차 등으로 빠지는 직원이 있으면 예비 인력이 없어서 1인 근무가 된다. 한 달이면 열흘 가까이 혼자서 근무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선정릉역은 11월 초, 한 명이 퇴사해 역무원이 5명뿐이다. 결원이 생겨도 정기채용까지 충원은 힘들다. 다음 정기채용은 내년 7월, 한국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수인분당선 환승역까지 있어서 하루 3만 명 가까이 오가는 선정릉역에서 여전히 1인 근무가 이어지고 있다. 선정릉역뿐 아니라 9호선 2·3단계 전체 13개 역 중 3개 역(휴직자 포함)이 내년 7월까지 역무원 충원을 기다려야 한다. 9호선에서는 역무원을 고객안전원으로 부르고 있지만 고객안전이 지켜질 수 있는 구조인지 의심이 든다.
“선정릉역 근처에 시각장애인 쉼터가 있어서 매일 교통약자 안내가 있습니다. 언젠가 시각장애인 할머니를 안내하고 있는데 열차 안전문에 장애가 발생했다는 무전이 들어왔어요.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 승강장까지 뛰어갔다 왔는데 할머니가 안 계신 거예요. 놀라서 역을 막 돌아다녔죠. 다행히 분당선 쪽에 가 계신 걸 찾긴 했는데 그땐 정말 당황했습니다.”
유정씨는 1인 근무 때는 이처럼 동시다발로 일이 일어나면 대처가 힘들다면서 화재나 수해 같은 위급한 상황엔 특히 문제라고 말했다. 불이 날 때 얼마나 아찔할지 간접경험 하기도 했다. 화재경보기가 가끔 오작동하는데 작동하면 전 역사 안에 사이렌이 올리고 안내방송이 나가기 때문에 오작동할 때는 고객안전실(역무실)에서 10~30초 안에 멈춤 버튼을 눌러야만 한다. 한번은 유정씨가 승강장을 순회하는 동안 화재경보기가 잘못 작동해 역사 안에 대피 안내방송이 나간 적이 있다. 급하게 달려와 방송을 끄긴 했지만 “사이렌 소리를 6·25사변 때 듣고 처음 듣는다. 이렇게 울리게 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할머니를 비롯해서 여러 명에게 항의 전화를 받았다. “혼자여서 대응을 제대로 못 했다고 사과를 하면서도 서럽더라고요.”
다른 역에서 지원이 올 때까지 기다리느라 오후 2, 3시에 점심을 먹는 서글픔과 계속 울리는 무전기와 언제 민원전화가 들어올지 모르는 핸드폰을 들고서 화장실에 가야 하는 불편함도 1인 근무자가 자주 겪는 감정이다.
지난 13일 서울지하철 9호선 선정릉역 승강장에서 강유정 역무원이 시설물(선로출입문)을 점검하며 순회하고 있다. 승객들은 무심코 지나치는 역사 곳곳에 노동자들의 손길이 묻어있다. 공공운수노조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인력 부족한 9호선 2·3단계, 구의역 사고 떠올라
3조2교대 근무로 바뀌긴 했지만 오후 4시 50부터 오전 8시 10분까지 이어지는 야간근무를 연속 이틀 하는 건 신체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야간근무일에는 아침 8시 10분에 퇴근해서 그날 오후 4시 50분까지 9시간도 안 돼 다시 출근해야만 한다. 오가는 시간을 빼면 집에 머무는 시간은 7시간도 안 되는 것.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전국에 있는 철도, 지하철 사업장 중 야간근무 이후 9시간 휴게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건 9호선 2·3단계가 유일하다. 1~8호선에선 20여년 전 3조2교대로 운영하다가 현재는 모든 분야의 근무형태를 4조2교대로 바꾼 상태이다. 9호선 2·3단계 역무원들도 교대제 개편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역무뿐 아니라 9호서 2·3단계 전 직렬에서 인력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 기관사들의 경우 휴무로 쉬다가 불려 나와 열차를 타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연차, 병가 등으로 빠진 승무원을 대신하는 대기인력이 극히 적어서 대기기관사가 다 나가면 누군가는 나와서 열차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에만 그렇게 이루어진 충당근무가 150건이 넘었다. 기관사들은 만성적인 초과 근무에 시달리면서 아파도 연차와 병가를 반려당하면서 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기술 직렬은 더 심각하다. 2단계(언주~종합운동장역) 개통 때 인력 그대로 현재 3단계(삼전~중앙보훈병원역) 시설물까지 관리하고 있다. 최근에 승무사업소 공사를 하면서는 건축, 토목 등을 담당하는 시설팀이 부족해 신호팀 직원을 시설팀으로 파견을 보내기도 했다. “학교에 수학 선생님이 없어서 과학 선생님한테 수학을 가르치라는 격”이라면서 유정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시설점검 횟수는 맞춰야 하는데 인원이 부족해 “30초 봐야할 거를 10초 밖에 못 보고 지나가게 된다”면서 그는 “얼마 전엔 한 승강장 위 천장 패널이 갑자기 떨어진 적도 있다”고 9호선 2·3단계의 답답한 현실을 토로했다.
지난 8월, 9호선 2·3단계가 적정인원의 60%도 안 되는 인원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서울교통공사 9호선 2·3단계 구간 적정인력 산정 및 조직진단’ 연구용역에 따르면 현 정원 297명에서 196.89명의 인력 증원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소수점 이하 인원들을 단수 올림 하면 기술직렬 104명, 역무직렬 63명, 승무직렬 28명, 관리파트 10명의 증원이 필요하다고 연구용역 최종보고서는 밝혔다. 현재 기술직렬 정원이 75명인 걸 보면 얼마나 적은 인원으로 9호선 2·3단계가 굴러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19살 청년이 고장 난 스크린도어를 혼자서 수리하다가 열차에 치여 숨진 구의역 사건이 떠오른다.
최종보고서는 ‘이용객의 안전을 확보하고 근로자의 안전한 작업환경을 이루기 위한 최소 인력 역시 지켜지지 않는 상황’으로 ‘9호선 2·3단계 운영부문은 타사와 동일한 수준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보기 매우 어려움’이라고 컨설팅사 제언을 담기도 했다.
지난 13일 서울지하철 9호선 선정릉역 승강장에서 강유정 역무원이 열차 출발 전호하고 있다 기관사실 출입문 감시 모니터에 장애가 발생하면 역무원이 기관사의 눈이 돼주어야 한다. 공공운수노조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동네 슈퍼마켓도 이렇게는 안 할 것”
한편, 같은 서울교통공사 소속으로 같은 업무를 하고 있지만 1~8호선과 급여, 근무형태는 물론 사내복지까지 차별받는 것에 대해 9호선 2·3단계 직원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도 크다. 구내식당에서 똑같은 사원증으로 찍어도 1~8호선은 3천원이 차감되지만 9호선 2·3단계는 외부방문객과 같은 5500원이 차감되는 건 약과다. 근무복도 제때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신입이 10여 명밖에 안 되니까 근무복 업체들이 주문을 잘 안 받아줍니다. 1~8호선은 입사할 때 바로 근무복을 받지만 우리는 겨울옷이 여름에 나오고 여름옷이 겨울에 나와요. 근무복이 나올 때까지 사복을 입거나 퇴사한 선배들이 입던 옷을 입기도 하죠.”
3호선 지축기지의 직원 이름이 쓰인 근무복을 받은 신규직원도 있었다고 유정씨는 말했다. 뿐만 아니라 사내기업이어서 서울교통공사의 전산시스템을 쓸 수 없어 9호선 2·3단계 역무원들은 매일 발매기와 정산기에서 빼내는 현금들을 출납장부에 직접 손으로 적고 있다. “요즘은 동네 슈퍼마켓도 이렇게는 안 할 거”라면서 그는 혀를 찼다.
9호선은 1~8호선과 같은 중전철을 운영하고 영업수익이 높음에도 1~8호선에 비해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정씨는 현재 7급 3호봉인 그를 비롯해서 일부 직급 및 호봉의 직원들이 서울형 생활임금에 미달하는 급여를 받고 있다고 서울시 민원신고 사이트인 응답소에 신고를 하기도 했다. 응답소는 서울시 투자기관인 서울교통공사 9호선운영부문도 생활임금 적용 대상으로 ‘2024년 서울형 생활임금에 미달하는 것으로 판단’한다면서 ‘피신고기관에 시정 권고할 계획’이라고 지난 6일 답변을 주었다.
“같이 쓰고 있는 인트라넷을 통해 차별받고 있는 것을 매일 보면서 1~8호선으로 이직하는 직원이 많다”고 유정씨는 전했다. 인재들은 떠나고 충원되지 않는 인력을 현장에서 돌려막기 하는 상황이 되풀이되면서 9호선 2·3단계 노동자들과 시민의 안전은 위협받고 있다.
지난 13일 서울지하철 9호선 선정릉역 승강장에서 강유정 역무원이 역사를 순회하고 있다. 2인 1조 순회가 원칙이지만 9호선 역무원에게 1인 순회는 일상이다. 공공운수노조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책임 떠넘기는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
2018년 개통 이후 계속된 인력부족 문제가 한계에 부딪히면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메트로9호선지부는 시민과 노동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11월18일부터 준법투쟁에 들어가 11월28일 하루 경고파업을 한 뒤, 12월6일 전면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가 맺은 ‘서울특별시 도시철도 9호선 2·3단계 구간 관리운영사업 위·수탁 협약서’에 따르면 인건비는 위·수탁계약이 만료되는 2028년 7월31일까지 현 정원(297명) 기준으로 산출되어 있어 협약금액 내에서 증원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서울메트로9호선지부가 인원증원 계획을 요청하면 서울시는 ‘수탁기관인 서울교통공사(9호선운영부문)에 문의할 사항’이라고 답변을 미루고, 서울교통공사는 ‘협약금이 증액되지 않으면 불가하다’면서 서울시에 책임을 돌리는 대책 없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택한 고육지책이다.
유정씨는 “사고가 안 나면 슬림화이지만 사고가 나면 참사”라면서 무늬만 ‘공공’인 “위탁구조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당역을 지나다가 쓰러진 승객을 달려와서 보살피는 역무원을 보고선 역무원이 되고 싶었다는 그는 200대 1도 넘는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회사에서 자부심 넘치게 일하고 싶어서 파업에 동참할 예정이라고 했다. 야간근무를 하러 돌아가는 그의 손에 들린 안전봉이 다시 초록 불빛을 깜박였다.
▶▶핫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