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퇴진운동본부)가 지난 9일 오후 서울 중구 숭례문 앞과 세종대로 일대에서 ‘윤석열 정권 퇴진 1차 총궐기’(1차 총궐기)를 열어 ‘윤석열은 퇴진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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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정치 상황이 심상치 않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수수 논란과 공천개입 의혹에 이어 명태균이라는 정치 브로커가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등에 업고 선거와 국정에 깊이 관여해왔다는 혐의가 짙어지면서 대통령 지지율은 10%대로 곤두박질쳤다.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고,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집회가 가열되고 있다. 대통령이 임기 도중 퇴진할 만큼 중대한 상황일까? 그리고 그게 가능할까?
퇴진 주장에 대한 동의 여부는 개인들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국민 다수가 퇴진을 요구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하나, 시민과 언론의 자유가 무너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동안 ‘자유’를 수백번 말했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반대 의견을 말하는 시민들을 ‘입틀막’했고, 비판적인 언론사와 기자들을 압수수색했으며, 방송 장악을 집요하게 시도했다. 올해 국경없는기자회의 언론자유도 지수에서 한국은 62위로 평가됐다. 아프리카의 군사독재국가 가봉보다 아래다. 놀라운가? 자유의 박탈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건만, 우리는 거기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둘, 대통령의 독단으로 국정의 합리성이 무너졌다. 대통령은 자기 뜻과 다른 국회 결정을 모두 거부권 행사로 무력화했다. ‘수사해봐서 안다’는 대통령의 지시 한마디로 그해 수능 문제가 좌우됐다.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정책 추진은 결국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의료 대란을 초래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국민이 무서워하는 건 대통령의 힘이 아니다. 진정 두려운 건 무능한 그의 독단으로 의료체계 붕괴나 전쟁 발발 같은 국가적 참화가 일어나는 일이다.
셋, 법의 공정성이 무너졌다. 윤 대통령은 법치와 공정을 내걸었지만 실은 검찰을 사유화하여 ‘법의 지배’ 대신 ‘법을 이용한 지배’를 확립했다. 과거 군사정권이 ‘간첩’을 조작했다면, 지금 검찰정권은 ‘죄인’을 생산한다. 죄 없는 사람을 죄인 만들기, 수사·기소 남발하여 범죄자 이미지 만들기, 정적의 죄만 파헤치고 권력의 죄는 은폐하기 등의 방식이다. 여기서 ‘유죄냐? 무죄냐?’는 사안의 핵심이 아니다. 반대자를 ‘죄’의 프레임이 가두고 자신은 ‘법 밖에’ 두는 큰 구조가 본질이다.
넷, 사인(私人) 지배로 헌정 질서가 무너졌다. 대통령의 부인과 그 지인들이 여론 조작, 공천개입, 정부 인사, 국책사업, 노동 탄압까지 광범위하게 개입해온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국민이 선출한 대표성도, 국가기관의 공적 권위도 없는 순전한 사인들이 나라의 실질적 주인인 것이다. 이런 종류의 후견 체제는 군부나 토호 세력이 실권을 가진 후진적 독재국가에나 있는 것이다.
다섯, 민주주의의 기본인 선거의 정당성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명태균씨는 지난 대선 때 다수의 조작된 여론조사 결과를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에게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와 대통령 부부는 또한 총선, 지방선거, 국민의힘 당내 선거의 공천 과정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다. 만약 이 중 일부라도 사실로 판명된다면, 그것이 우리 체제에 주는 충격은 매우 클 것이다.
이상의 오각형을 이어보면 민주주의, 법치, 거버넌스의 구조물이 허물어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많은 사람은 윤 대통령이 어떻게든 임기를 다하면서 국정을 개선하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이대로 계속 가는 것보다 나쁠 순 없다는 생각을 많은 사람이 하는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사퇴, 탄핵, 개헌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중 무엇이 바람직하며 실현 가능한지에 대한 고민도 깊다. 하지만 여러 조건을 분석해보면 어느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우선 ‘사퇴’는 윤 대통령이 반성하고 물러날 리가 없다는 생각을 많은 사람이 하는데,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퇴 후 사법 처리를 안 한다는 걸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물러나면 감옥 갈지 모르는데 대책 없이 물러날 사람이 있겠는가?
한편 ‘탄핵’도 가능성이 높지 않다. 탄핵 후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당선 가능성이 높은 현시점에서, 국민의힘이 변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소추가 된다 한들, 만약 헌법재판소에서 각하되면 윤석열 정권은 더 큰 정당성을 갖고 폭주할 수 있다.
끝으로 ‘개헌’ 역시 여야가 합의해야 하는데, 대통령 임기가 2년 남짓 남은 상태에서 임기 단축의 의의가 있을 만큼 신속하게 개헌 이후 정치제도의 내용에 합의하는 것은 어렵다. 1987년의 ‘직선제 개헌’ 구호처럼 각 정당의 복잡한 계산을 넘어설 큰 대의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개연성 높은 시나리오는 지루한 ‘교착’의 지속, 또는 국민적 공분의 폭발에 의한 ‘파국’이다. 교착이란 바람직하지 않지만 출구가 없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상태다. 여당은 ‘이재명 대통령’보다 나쁜 대안은 없으니 현상 유지를 원하고, 이재명 대표는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높지만 반대 역시 커서 민심이 확장되지 않는다. 이런 상태로 한국 사회의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급변하는 세계에 어떤 대응도 하지 못한 채 몇년을 보낼 수 있다.
바로 여기에 국민들의 숨 막히는 답답함이 있을 것인데, 만약 이렇게 분노가 축적되다 어떤 촉발 사건으로 점화된다면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파국의 출발일 수 있다. 사퇴, 탄핵, 개헌이 모두 닫힌 상태에서 정권이 강압을 동원하고 우익 세력이 일제히 참호에서 올라온다면 우리 사회는 큰 갈등과 혼돈에 빠질 수 있다.
그 같은 시나리오를 피하고 ‘질서 있는 변화’를 달성할 수 있는 길은 매우 좁아 보인다. 퇴진 후 권력을 둘러싼 ‘불확실한 게임’이 예상되거나, 반대로 ‘확실한 대안’이 있을 때 다이내믹이 개시될 것이다. 지금처럼 ‘윤석열 때리기’와 ‘이재명 때리기’를 주고받는 것으로는 판이 변하지 않는다. 반윤이 커져도 반이 때문에 한계가 있고, 반이가 커져도 반윤 때문에 계속 힘을 받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의 당파적 역학 안에서는 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 한계를 뚫을 힘은 거대한 국민의 명령에서 나올 것인데, 그 분출을 막는 것은 바로 ‘퇴진 이후’에 대한 회의다. 국민들은 탄핵, 촛불, 그 후의 환멸까지 다 겪었다. 이번엔 다를 수 있을지를 묻고 있다. 이재명을 넘어, 민주당을 넘어, 더 큰 희망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때 행동이 시작되고, 변화가 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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