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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청소년, 정신건강, 군대, 자살 [똑똑!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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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혜린 | 군인권센터 국방감시팀장



군대에도 사람이 산다. 이 말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와 당면한 이슈,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생활양식, 법칙 등에서 군대 또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우리 일반 사회는 군대와 몹시 닮았고, 반대로도 그러하다. 징병제 국가라는 시스템 속에서 군대와 사회는 기묘하고도 지속적인 피드백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군대, 특히 병영생활상 문제를 진단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군대와 사회는 완전히 괴리된 공간이고, 별도의 엄밀한 접근법이 필요한 특수 집단이라고 단정하는 태도다. 요즘 군대 왜 이러냐는 질문의 답을 찾을 때 먼저 살펴봐야 할 자료는 청소년 관련 통계다. 한국 남자 청소년들은 전기 청소년기는 학교에서, 후기 청소년기는 군대와 대학에서 보낸다. 따라서 군대 문제는 남자 청소년의 생애주기적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통계청 ‘군 사망사고 현황’을 보면 자살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꾸준히 감소 추세였으나, 2018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했고 2021년엔 전년도의 두배 수준으로 크게 뛰었다. 청소년 사망자 추이도 이와 동일하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청소년 통계’를 보면, 청소년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009년 정점을 찍고 2017년까지 감소했으나, 군대와 마찬가지로 2018년부터 다시 증가했다.



청소년 자살률은 청소년의 정신건강 상태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올해 5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2년 정신건강 실태조사(소아·청소년)’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청소년의 정신장애 평생 유병률은 조사 대상의 18%이고, 현재도 병이 지속되고 있는 현재 유병률은 9.5%를 차지했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정신과 진료와 같은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한 비율은 청소년의 경우 4%, 평생 이용 비율은 5.6%였다. 위의 ‘청소년 통계’에서 평상시 스트레스를 대단히 많이 느낀다고 답한 ‘스트레스 인지율’은 2023년 조사 대상자의 37.3%, 우울감 경험률은 26%였다. 거칠게 정리하자면, 실제로 높은 스트레스와 우울감 등 정신건강학적 어려움을 겪고 있어도 병원에 가지 않거나 가지 못한 청소년이 10명 중 3명에 이르고, 병원에서 진단받았다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진료·관리 중인 청소년 비율은 현저하게 낮다는 뜻이다.



상태가 이러니 군대로 오는 20대 청소년들이 건강할 리가 없다. 현재 병역판정 체계에서 병원 진료기록이 없이는 ‘군 복무에 어려움이 있는 병사’로 판정받기가 어렵다. 서류상으로는 멀쩡하니 병사가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는 신체인지, 낯선 곳에서 관계를 맺고 적응할 수 있는 상태인지는 직접 군대와 마주하고 나서야 판별되는 것이다. 입대한 청소년들은 마치 상급 학교에 진학하듯 군대에 가지만, 정작 군대는 신입 병사를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할 구성원 한명이 충원되는 것이라 인식하지, ‘단계에 맞춰 이해해주고 가르치고, 보듬어야 할 대상’으로 보진 않는다. 오자마자 겪게 되는 낯선 공간에서의 스트레스, 폐쇄된 군대에서 고립되었다는 감각, 생애 처음 해보는 임무, 외우고 익혀야 할 수많은 것들은 건강한 상태에서도 부담스럽다.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중도 전역한 현역 부적합 심사 전역자는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총 3만5456명에 이르렀다. 이 중 정신질환·부적응 사유가 전체의 80%를 차지했다.



앞의 현역 부적합 심사자 통계를 공개했던 임병헌 전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당시 “병사 군 복무 기간이 18개월로 단축됐는데 그 안에 심각한 정신질환이 생기고 적응을 못 해 중도 이탈한다는 것이 상식적인가”라며 “군이 민원에 휘둘리지 않고 체계적으로 병력 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일갈한 바 있다. 그러나, 과연 군대가 ‘관심병사’ 민원에 휘둘려서 병사를 조기에 전역시키고 무분별한 병력 부족 사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 사람의 생이란 시기마다 단절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청소년, 정신건강, 군대, 자살. 네 단어가 만나는 선분의 끝을 바라봐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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