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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방 지명자 “여성, 전투 안 돼”…공화당서도 “명확한 설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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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6년 12월15일, 미국 뉴욕 맨해튼 트럼프 타워 로비에서 에스컬레이터를 기다리며 언론을 바라보는 피트 헤그세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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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전투에 참여시켜선 안된다. 전투를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차기 행정부의 국방장관으로 지명된 피트 헤그세스가 지명 전 팟캐스트에서 한 발언이 그의 성폭행 혐의와 함께 상원에서의 인준을 가를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군대 내 ‘워키즘’(wokeism·지나치게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태도)을 비판하며 한 이 발언을 두고 전·현직 여성 군인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공화당 상원의원들도 ‘설명이 필요하다’며 우려를 표했다. 현재 미군 현역병의 약 17.5%가 여성이다.



지난 8일 공개된 팟캐스트 ‘션 라이언 쇼’ 등에서 헤그세스는 “여성은 의무병이나 헬기 조종사를 맡을 순 있지만 (전투 능력에 관해선) 역사적으로 남성이 더 유능했다. 여성 복무를 장려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 여성군인 때문에 전투에서 사상자가 늘어난다는 취지로도 말했다. 헤그세스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복무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전투에서의 복잡성은 사상자가 더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며 “여성은 생명을 주는 존재이지, 생명을 앗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훌륭하게 복무한 멋진 여성 군인들을 많이 알고 있지만, 그들은 제 보병 대대에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헤그세스는 “군의 사명은 적을 효과적으로 무력화하고 병사를 안전하게 귀환시키는 것”이라며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같은 정치 사회적 이슈가 군대의 핵심 임무를 방해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전투병과 진입 기준을 낮춰 여성을 허용하는 관행이 있다며 “군사 훈련 과정에서의 낮아진 기준을 바로잡아야 한다”라고도 비판했다.



하지만 전·현직 여성 군인들을 중심으로 ‘사실관계부터 모두 엉터리’라는 비판이 거세다. 여성 군인들의 권리 보장을 위한 비영리 기구 ‘여성군인 행동네트워크’에서 근무했던 해군 참전용사 출신 로리 매닝은 독립매체 더나인틴스에 “기준을 낮췄다고 말하지만 사실이 아니다”라며 “기본 체력 테스트는 연령과 성별에 따라 다른 기준을 적용하지만, 직군별 체력 테스트는 성별을 가리지 않고 똑같은 기준을 적용한다. 의도적으로 섞어 쓴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는 “군대의 모든 직군마다 체력 기준이 있고, 이는 성별·연령과 무관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법에 규정돼 있다. 여성 복무자들은 같은 직군에 복무하는 남성과 정확히 같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국방장관 리언 파네타도 에이비시(abc)뉴스 인터뷰에서 “남성과 정확히 같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고 여성에게 요구하고 있다”며 “여성 군인이 그 기준을 충족할 수 없다면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복무하며 세차례 해외 파병을 경험한 현역 미 육군 대령도 엔비시(NBC) 뉴스에 “어떻게 이 혐오감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며 “저는 남성 동료와 동일한 방식으로 훈련받았다. 동일한 선서를 하고, 같은 명령을 실행한다. (미국이 정책을 변경한다면)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책 변경은 우리의 투표권을 빼앗는 것과 같은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상원 군사위원회 소속 공화당 의원들도 우려를 표했다. 참전용사 출신으로 전투 경력을 보유한 최초의 여성 상원의원인 조니 언스트 의원(공화당, 아이오와)은 “헤그세스에게 명확한 설명을 요구하겠다”라며 “심지어 제 직원 중 한 명도 보병 장교다. 강인한 여성이다”라고 말했다. 차기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장인 로저 위커 의원(공화당, 미시시피)도 폴리티코에 “현재 여성들은 군의 거의 모든 영역에 관여하고 있다. 헤그세스의 관점을 정확히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여성 군인들은 1991년과 1993년 미 의회가 각각 전투 항공기와 함정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법을 폐지한 이후 거의 30년 동안 전투 역할에 참여해 왔다. 이후 해군은 2010년 여성의 잠수함 배치를 금지한 정책을 철회했으며, 2013년에는 전투 배제 정책을 폐지해 여성이 지상 전투 부대에서 복무할 수 있도록 했다. 2년여 뒤인 2015년 12월 미군은 여성 군인에게 모든 전투병과를 전면 개방했다.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당시 “국방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재능과 기술을 갖춘 국민의 절반을 제외할 수 없다”며 “기준에 충족되는 모든 사람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때의 결정으로 여성 군인은 특수 작전, 보병, 기갑, 정찰 부대와 같은 이전에는 접근할 수 없었던 약 22만 개의 직책을 맡을 수 있게 됐다. 국방부 자료를 보면 2022년 현재 여성 군인은 전체 현역 병력의 약 17.5%를 차지한다. 트럼프의 인수팀은 여성 참전용사들의 반발에 아직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에서 성별과 미군에 대해 연구하는 카라 딕슨 뷰익은 더나인틴스에 “헤그세스가 말하는 것은 익숙한 레퍼토리”라며 “동성애자 남성과 여성이 공개적으로 복무할 수 있게 허용됐을 때도 그들은 같은 말을 했다. 단순히 성별 때문에 인구의 절반 이상을 배제하면 최적의 군대를 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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