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에 대한 양쪽 입장 다르지만 하나는 일치 “민주주의 미래 걸려”
민주당, 국민주권·법 감정 말하나
민심·역사 법정을 우선하는 건 헌법·사법부 부정의 핵심 논리
법원 공격·검사 탄핵하는 민주당… 사법부 독립 실로 위태로워
헌법 수호자들에게 경의 표한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과 참석자들이 ’김건희 윤석열 국정농단 규탄·특검 촉구 제3차 국민행동의 날‘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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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한 11월 15일 판결에 대해, 이 대표와 재판부의 의견은 서로 상치된다. 하지만 한 가지 점에서는 완전히 일치한다. 이 재판에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가 걸렸다는 사실이다. 11월 16일, 이재명 대표는 장외집회에서 “민주주의와 반(反)민주주의의 싸움이 시작됐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재판부 역시 이 대표의 범행이 “선거제도의 기능과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이 훼손될 염려가 있다는 점에서 죄책이 가볍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먼저 국민주권의 문제다. 이 대표는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 아닌 것 같다. 이 나라의 주인은 윤석열·김건희·명태균으로 바뀐 것 같다”고 비판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 역시 “법기술자들이 국민주권을 침해하고 법치를 우롱”한 “국민의 법감정을 벗어난 정치판결”이므로, “민심의 법정에서, 역사의 법정에서 이재명은 무죄”라고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 위에 군림하며 판사와 협잡해 국민주권을 침해한 게 이번 판결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과 판사에 대한 비난은 단순 추정이다. 그런데 국민주권과 국민의 법감정, 민심과 역사의 법정을 우위에 두는 것은 민주주의의 본질에 직결된 문제다. 헌법과 사법부를 부정하는 핵심 논리이기 때문이다. 국민주권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다. 하지만 ‘국민’은 고도로 추상적 개념이다. 이론상 국민은 하나의 존재지만 그런 국민은 현실에 없다. 서로 다른 무수한 국민들만 존재할 뿐이다. 그 간극을 이용해 정치가는 책략을 꾸민다. 누구도 완전한 국민의 뜻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국민을 참칭해 자신의 악을 합리화하거나 야심을 추구하는 것이다.
국민주권이 언제나 민주주의의 수호자인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강력한 흉기가 될 수도 있다. 특히 국민주권의 이름으로 헌법을 예속시키려 할 때 위험하다. 헌법은 국민이 만든다. 그러나 현대민주주의는 법의 지배(rule of law)에 의한 입헌민주주의(constitutional democracy)다. 일단 헌법이 확립되면 국민주권과 대등한 지위를 갖는다. 그 이유는 국가나 통치자의 횡포에서 국민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다른 한편 다수의 독재로부터 자유를 지키려는 것이다. 국민주권이나 민심・역사의 법정이란 다수의 독재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바이마르공화국 때 독일 국민은 이렇게 민주헌법을 파괴하고 나치즘을 선택했다.
공직선거법 재판부가 다음으로 주목한 것은 “선거과정에서의 표현의 자유”다. 이재명 대표는 2018년 경기도지사 후보 토론회에서 ‘친형 강제입원’ 관련 허위발언으로 기소되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정치적 거짓말을 허용한 것이다. 무죄 판결을 주도한 것은 재판거래 의혹을 받는 권순일 대법관이었다.
그런데 이번 공직선거법 재판부는 “허위 사실의 공표로 인해 일반 선거인들이 잘못된 정보를 취득하여 민의가 왜곡될 수 있는 위험성”을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생각했다. 이 대표는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의 용도 변경은 국토교통부의 협박 때문이고,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토건세력 특혜폭탄 설계자’는 국민의힘 전신 정권과 관계자들”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를 대통령 당선을 위한 고의적 거짓말로 보았다. 아울러 “동종 범행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력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정치적 거짓말이 상습적이라는 것이다.
고대 정치사상에서 민주주의는 독재 다음으로 나쁜 정치체제였다. 포퓰리즘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아테네 민주주의도 데마고그의 거짓 선동에 굴복한 다중에 의해 몰락했다.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현대민주주의는 포퓰리즘에 더욱 취약해졌다. 이 대표의 백현동, 대장동 사건 관련 거짓말은 단순한 사실 은폐를 넘어, 무고한 국가기관과 경쟁 정당을 악마화했다. 또한 이 대표는 “국감을 치를 때마다 제 지지율이 오히려 올라갔다. 기회 요인으로 만들 자신이 있다.”고 그 능력을 자랑했다. 재판부가 이 대표의 “범행 내용도 모두 후보자의 능력과 자질에 관한 중요한 사항이라고 할 수 있어, 이 사건 범행의 죄책과 범정이 상당히 무겁다”고 판시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양승태 대법원장 등 100여명의 판사를 사법적폐로 수사했다. 올해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를 수사한 이정섭 검사를 탄핵소추했다. 법왜곡죄, 수사기관무고죄 입법도 추진하고 있다. 사법부 독립이 실로 위태롭다. 민주헌법의 수호자들 역시 힘겹고 외롭다. 법과 양심의 십자가를 홀로 짊어진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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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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